취향대로 골라먹는 편의점 김밥 8

안녕! 매주 김밥을 챙겨 먹는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인기 토핑, 남다른 디테일, 흥미로운 신상품이라는 관점으로 ‘편의점 김밥’을 골라 따로 시식해 봤다. 최근 김밥값이 크게 올랐다. 요즘 번화가 김밥집에서 말이 김밥 한 줄 먹으려면 최소 4,000원이다. 예전에는 5,000원을 쥐고 참기름 냄새가 솔솔 풍기는 단골가게 문을 열면, 속이 꽉 찬 김밥을 최소 두 줄은 들고나왔는데 말이다. 김밥집 창업도 가성비 여러 줄보다 맛있는 한 줄을 추구하는 프리미엄 김밥집이 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런 곳도 좋지만,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찾게 된다.

이런 변화를 공략하기라도 하듯, 편의점 김밥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브랜드마다 경쟁적으로 신상품을 출시하며 김밥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편의점에서 파는 김밥을 요리라는 관점에서 평가하면 전문 김밥집의 오더메이드 김밥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공산품이라는 관점에서 지켜보면, 전체적인 퀄리티가 높아지고 있다. 선택의 폭과 맛 수준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나아지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 ‘김밥’이 대유행이다. 일본식 후토마키가 아니다. 김밥이 유행한다. 김밥은 한국에서 자라 한국의 음식문화를 흡수했다. 편의점 김밥은 21세기 한국 음식문화를 반영한다. 우리는 현지인으로서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 친구에게 특별한 식도락을 알려줄 수 있다. “한국 편의점에 가면 김밥이 참 다양하다고.” “트레이더 조에서 파는 냉동김밥보다 맛있다고.” “네가 틱톡이나 릴스에서 봤던 김밥은 바로 이것이라고.” 새해에는 사랑하는 이웃을 당당하게 편의점으로 안내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응원하며! 2024 편의점 김밥 리뷰를 시작한다.



CU 뉴보성녹돈돈까스김밥

돈까스의, 돈까스에 의한, 돈까스를 위한 김밥. 2020년 출시제품으로 전라남도 보성군의 특산물, 녹돈(녹차 먹고 자란 돼지)의 등심을 사용한다. 밥알이 비교적 적으며, 돈까스가 속재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편의점에서 출시된 돈까스 김밥은 고기보다 밀가루 튀김옷이 많아서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고기 함량을 크게 높인 돈까스 김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기주장이 확실한 주재료로 개성을 확보하는 김밥이다. 아주 적게 첨가된 양배추와 단무지는 느끼함을 잡아준다. 경양식집에서 샐러드와 곁들여 먹던 돈까스 정식을 연상케 하는 맛이다.

추천: 돈까스에 단무지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븐일레븐 의성마늘프랑크김밥

햄을 만드는 회사와 편의점을 운영하는 회사가 합작했다. 한국 세븐일레븐의 모기업은 롯데그룹이다. 의성마늘햄은 한국에서 육가공 공장을 오랜 세월 운영한 롯데푸드가 생산한다. 롯데푸드는 예로부터 김밥용 햄을 생산했던 회사. 업력이 오래된 형제회사가 손을 잡아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 낸 사례.

마늘 향이 옅게 감도는 쫄깃한 통소시지가 짭조름한 맛을 낸다. 밥과 어우러지며 약간의 고소함까지 느껴진다. 어쭙잖은 속재료가 애매하게 들어간 김밥보다 낫다. 편의점 김밥의 약점은 속재료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양이 적고 종류도 많아야 서너 가지 재료를 쓴다. 오더메이드 김밥처럼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하기 힘들다면, 프랑크 소시지처럼 강력한 식재료 하나를 밀어주는 편이 더 나은 맛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추천 : 밥 한술에 프랑크 소시지 하나 올려 먹을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



CU 계란김밥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키토제닉 식단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김밥의 경우,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위해 밥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계란을 채운다. 최근 김밥 한 줄에 5,000원 이상을 매긴 프리미엄 김밥집에서 계란을 활용한 키토김밥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편의점 계란김밥도 그런 트렌드를 반영하는 듯하다. 밥을 줄이고 내용물을 실하게 채웠다. 주재료인 계란의 식감은 촉촉하다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의 퀄리티다.

아쉬움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계란 그 자체 대한 아쉬움이다. 계란에서 맛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식 계란말이처럼 단맛을 세게 연출하거나 계란 본연의 맛을 강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계란을 적게 쓴 인상이다. 편의점 브랜드가 요즘 제일 잘하는 건 특정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본떠 식품공장에 이식하는 것이다. 한국의 맛있는 키토김밥 레시피가 무사히 이식되길 기대한다.

추천 : 오운완을 마치고 급속영양보급에 나서는 다이어터



세븐일레븐 스팸마요계란김밥

앞서 소개한 계란김밥이 불만스러운 사람에게 추천하는 선택지다. 스팸과 계란이 들어간 김밥을 소개한다. 두 음식은 현대 한국인이 가정에서 즐겨 먹는 대표 밑반찬이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먼저 밥알이 참기름을 바른 밥처럼 누리끼리하다. 달착지근한 데리야끼 소스를 버무린 영향이다. 마요네즈 소스와 섞이며 흡사 간장계란밥을 먹는 듯한 느낌이다. 속재료 구성이 몹시 간편하다. 굵은 스팸과 에그 스크럼블을 주연으로 더블 캐스팅. 단무지가 식감을 풍성하게 만들 조연으로 맹활약한다. 집밥을 직접 해 먹다 보면, 냉장고와 밥솥에 저장해둔 찬거리가 애매하게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사서 먹으면 딱 좋았다. 아주 적은 양의 김치 혹은 밑반찬. 조금 짜다 싶으면 밥 한술. 이렇게 먹을 때 가장 맛있게 먹었다.

추천 : 야채 없는 김밥을 좋아하는 사람



GS25 전주비빔김밥

한국인은 쌀밥을 먹고 자랐다. 현대 한국인은 거기에 고추장과 기름을 버무린 맛을 더했다. 양념이 골고루 비벼진 밥알의 짠맛은 늘 감동적이다. 하지만 쌀밥에 양념을 비비는 건 수고로운 노동이다. 밥은 사람보다 기계가 더 잘 비빈다. 그래서 비빔밥 레시피를 활용한 김밥만큼은 편의점이 독보적이다. 비빔밥의 재해석은 한국 편의점 브랜드가 앞다퉈 경쟁 중인 주제다.

국내 편의점 브랜드를 모두 경험해 본 결과, GS25의 스테디셀러 전주비빔김밥을 추천하게 된다. 비빔밥에 들어갔을 때 매력적인 속재료가 잘 배치됐기 때문이다. 나물과 잘게 갈린 불고기가 속을 꽉 채운다. 밥알에 온기가 살짝 감돌 때 가장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자레인지에서 딱 40초 정도 가열하는 것을 권한다. 이때 편의점김밥이 베테랑 김밥집 사장님의 손길이 닿은 수제김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추천 : 평소에 나물이 들어간 한정식을 즐기는 사람



세븐일레븐 불닭치즈소시지김밥

‘정도껏’을 모르는 한국인은 종종 불닭소스 같은 걸 만든다.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불닭소스는 21세기 한국인이 만들어낸 가장 과격한 양념소스.”라고. 극한의 매운맛과 여기에 단짠까지 이면에 도사린다. 밥알 하나로 맛을 제어할 수 없다. 불닭소스를 굳이 밥알과 합체시켜야겠다면, 소스에 내재된 극단적인 향미를 제압해야 한다. 김밥을 말아야 한다면 적절한 토핑을 투입해 소스맛의 세기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불닭김밥을 설계한 사람들은 매콤한 떡볶이를 다루는 프랜차이즈(ex: 신전떡볶이)의 모짜렐라 치즈 김밥에서 레시피를 찾아낸 듯하다. 불닭소스를 버무린 편의점 김밥에는 대부분 담백한 치즈가 들어간다. 편의점마다 최적의 부재료를 추가로 배합하는 가운데, 가장 괜찮았다고 느꼈던 게 세븐일레븐의 해석이다. 콘치즈와 소시지가 김밥 정중앙에 배치된다. 전자레인지에서 가열하면 내용물의 기름진 맛이 강해지는데, 이것이 밥알이 머금은 불닭 소스의 맛을 효과적으로 다스린다.

추천 : 떡튀순에 김밥까지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CU 리춘시장 화끈마라유부삼겹김밥

GS25가 이색 협업을 즐긴다면, CU는 전문가 협업을 즐긴다. CU는 2015년부터 백종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CU 역사상 가장 긴 협업이며, 이제 CU 식품코너에서 백종원 얼굴이 없는 게 허전할 지경이다. 2023년 4분기, 백종원의 중식 주점 브랜드 ‘리춘시장’을 주제로 인상적인 김밥이 출시됐다. 메인 소스는 ‘마라’. 마라 향이 강하지만 실제로 맛보면 그리 맵지 않다. 오히려 짭조름한 맛이 매력으로 잘 만든 중식에서 드러나는 향미다. 잘게 갈린 삼겹살과 유부 그리고 계란이 빵빵하게 들어차 있다. 여태까지 맛본 CU 김밥 중, 가장 백종원 프랜차이즈 실전요리에 가까웠던 제품이다.

개인적으로 백종원 표 CU 김밥의 매력은 ‘소스’와 ‘고기 토핑’이 두드러지는 메뉴에서 극대화됐다. 성공작은 백종원 프랜차이즈에서 맛본 고기 감칠맛이 드러난다. 반면 실패작은 찬밥에 조미료와 양념장을 애매하게 버무린 느낌이다. 이번 리춘시장 협업은 성공작이다. 이 제품만큼은 단종 없이 스테디셀러로 이어지길 바란다.

추천 : 백종원 프랜차이즈의 볶음 고기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GS25 혜자로운)참치마요

“편의점에서 발주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김밥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대학 동기이자 현직 편의점 매니저 L에게 물었다. 그는 직접 관리 중인 서울 도심 내 점포 기준으로 응답했다. “김밥 베스트셀러는 크기 불문 ‘참치마요 토핑’이다.” 과연 참치김밥이다.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1등 김밥 레시피!

L은 GS25 소속이다. 그에게 솔직한 평가를 부탁했다. 판촉용 홍보자료나 보도기사에 적힌 정보는 식상하다. 내가 궁금한 건 매일 점주와 재고물량을 놓고 씨름하는 본사 영업직원의 진심이다. 그는 ‘참치 강화’를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점주도 좋아한다고 말한다. 참치마요 토핑이 30% 늘었다고 적혀있는데 기본제품과 비교시식하면 실감이 난다는 거다. 밥도 현미밥이고 당근, 우엉, 햄, 계란 같은 기타 부속물도 충실하게 담겼다는 것도 강점. L은 참치마요 중에서도 ‘혜자’라인업을 추천한다. 토핑양을 늘린 라인업 중에서도 내용물 밸런스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추천 : 김밥집에서 무조건 ‘참치김밥’을 시키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