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긴긴밤

9월 22일은 '세계 코뿔소의 날'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코뿔소를 기억하고 보호를 촉구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이날은 코뿔소 뿔에 치유 효과가 있다는 미신과 같은 인간의 욕심과 오해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코뿔소를 기억하고 보호를 촉구하는 날이기도 하다.
현재 북부흰코뿔소는 단 두 마리, 암컷만 남아 있다. 더 이상 번식이 불가능한 이 상황은, 우리가 자연에 얼마나 무관심하고 파괴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동화 '긴긴밤'은 마지막 흰바위코뿔소였던 코뿔소 노든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다. '긴긴밤'을 살아가는 생명은 노든과 치쿠만이 아니다.
'긴긴밤'은 단순한 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동물원의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알에서 혼자 깨어난 펭귄이 만나 서로를 통해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노든은 코뿔소임에도 어린 시절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다. 그는 코끼리들에게 보호받으며 성장했지만, 언젠가 자신만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결국 야생에서 아내를 만나 딸을 낳고 가족을 이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 사냥꾼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는다. 가족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맞선 그의 용기는 슬픔이 되고, 그는 세상에 자신만 남았음을 깨닫는다. 그런 노든에게 동물원 친구들과 앙가부, 치쿠, 윔보 등은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북돋아준다.
동물원에 들어온 펭귄 알 하나, 거기서 태어난 펭귄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채, 다름을 품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노든과의 펭귄의 만남은 이들에게 서로 유일한 가족이자 '우리'라는 이름을 선물한다.
둘은 바다를 찾아 긴 밤을 걷는다. 주인과 종, 생김새도 성격도 달랐던 두 존재는 연대의 힘으로 고난을 견딘다. 작품에선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다"는 할머니 코끼리의 말처럼, 아기 펭귄 또한 "노든처럼 나도 흰바위코뿔소로 살게요"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긍정을 얻는다. 그 말에 노든 역시 이미 훌륭한 코뿔소이니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다며 펭귄을 응원한다. 서로를 북돋는 위로처럼 말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긴긴밤이 떠오른다. 관계의 단절, 삶의 실패, 의미를 잃은 시간들. 그런 밤을 통과할 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손, 혹은 동물과의 눈맞춤, 작은 생명의 체온 하나가 그 어둠을 견디게 한다.
동화는 아이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생명의 존엄, 서로 다른 존재 간의 공감, 기다림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한다. 교육 현장에서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면, 멸종 위기의 동물뿐 아니라 사회의 소수자, 외로운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연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
긴긴밤을 살아가는 건 야생의 동물들만이 아니다. 오늘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 반려묘도, 또 각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밤을 걷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생명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충분한 돌봄과 존중을 실천하고 있을까? 거리의 고양이, 도시의 새들, 숲의 야생동물들 역시 우리 곁에서 살아간다. 생명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 곁을 지켜줄 때 더 오래, 더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다.
아기 펭귄은 바다에 닿았을까? 노든도 펭귄과 함께 바다까지 동행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둘은 긴긴밤을 걷고 있을까? 혹 자라난 아기 펭귄이 하마나 개미핥기와 함께 그들의 여행에 동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을 데리고 사막으로 늪으로 긴 여행 중인 건 아닐까?
다가오는 세계 코뿔소의 날, '긴긴밤'을 다시 펼쳐보자. 어떤 생명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더 많은 생명들이 자신의 밤을 온전히 건너,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작은 연대를 시작해본다.
Copyright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