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타고 퍼지는 '치명률 최대 50%' 한타바이러스

정도영 기자 2026. 5. 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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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률이 최대 50%에 이르는 한타바이러스 감염자가 해외에서 급증하고 있다. 크루즈선 집단감염까지 발생해 팬데믹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매년 수백 명의 환자가 발생하지만 국내형 바이러스는 백신이 있고 치명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기온상승과 극단적 기상현상이 바이러스 숙주 개체수와 서식범위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한타바이러스의 숙주 역할을 할 수 있는 설치류 종 중 하나인 Necromys Lasiurus (사진 Paula Prist/IUCN)

한타바이러스, 남미서 확산…크루즈선 집단감염까지

12일 외신과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질병예방통제예방센터(ECDC) 발표를 종합하면 남미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아르헨티나 보건부에 따르면 2025년 6월 이후 현재까지 감염자는 101명으로, 직전 같은 기간(2024년 6월~2025년 5월·57명)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사망자는 32명으로 2018년 이후 최다다. WHO는 5월 6일 기준 아메리카 대륙 8개국에서 299건의 확진과 59명의 사망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가 옮기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감염된 쥐의 소변·분변·타액에서 생긴 에어로졸을 흡입할 때 감염된다. 최근 남미를 중심으로 한타바이러스의 변종인 안데스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중으로 치명률이 최대 50%(WHO 기준)에 달한다. 현재까지 승인된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안데스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 중 사람 간 전파가 보고된 유일한 변종이다. 다만 전파는 동거 가족·간병인 등 장시간 밀접 접촉 시에만 이뤄진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역사적으로 파타고니아 중심의 풍토병 수준이었으나, 최근 중부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만 42건이 집중되는 등 비풍토 지역으로의 확산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에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슈아이아를 출발한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에서도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WHO가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크루즈선 내 확진자 8명 중 3명이 사망했다. 승객들은 승선 전 아르헨티나 각지를 여행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최초 감염은 아르헨티나 체류 중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 집단감염이 발생한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 (사진 Cruisemapper)
10일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가 테네리페에 도착해 승객들이 하선했다. (자료 Cruisemapper 캡처)

배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에 기항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반복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테네리페 주민들에게 직접 서한을 공개하며 "이건 코로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케임브리지대 보건안보·감염병 전문가 샬럿 해머 교수도 미국 CNN을 통해 "전파력이 코로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감염자 옆을 지나가는 것만으로 감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WHO는 이번 사태의 위험도를 크루즈선 관련 '중간', 전 세계적으로는 '낮음' 수준으로 평가했다. 

한국에서 처음 발견…국내형 바이러스는 치명도 낮아

한타바이러스는 한국에서 처음 발견됐다. 1951~1953년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약 3200명이 집단 발병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76년 이호왕 고려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국내 연구진이 등줄쥐 폐조직에서 원인 바이러스를 처음 분리했고, 발견 장소인 한탄강의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라 명명했다.
故 이호왕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과 교수 (사진 호암재단)
한국은 현재도 아시아형 한타바이러스인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 출혈열)의 풍토병 지역이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매년 400~500명 안팎으로 환자가 발생해왔으며 2024년에는 373명이 신고됐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연도별로는 2016년 57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 270명까지 감소했다가 2023년 452명으로 다시 늘었다. 2024년 지역별 발생 분포는 전남(74명), 충남(56명), 전북(52명), 경남(50명), 경기(39명) 순이었으며 농촌과 도농복합 지역에 집중됐다.
신증후군출혈열 연도별 발생 현황 (자료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2024년 신증후군출혈열 지역별 발생 분포 (자료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국내 바이러스는 남미형과 성격이 다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는 폐·심장을 공격하는 안데스바이러스와 달리 신장과 혈관에 손상을 입히는 신증후군출혈열을 일으킨다. 치명률은 현재 5% 미만으로 1960년대 이전 5~15% 수준에서 의료 수준 향상으로 크게 낮아졌다. 국내형에는 예방백신이 존재하고 고위험군인 군인·농부·야외 작업자를 대상으로 접종이 권고된다. 사람 간 전파도 극히 드물다.

질병관리청은 8일 "국내에는 한타바이러스 심폐증후군(안데스바이러스)을 매개하는 설치류가 서식하지 않고, 해외 유입 사례도 보고된 바 없어 공중보건학적 위험도는 낮다"고 평가했다.
국내형 바이러스(한탄바이러스·서울바이러스)의 질환인 신증후군출혈열의 전파경로 (자료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이상기후·서식지 파괴가 확산 이끌어"

감염자가 늘고 발생지역이 넓어진 배경에 기후위기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아르헨티나 보건부는 최근 감염자 급증 배경에 대해 "야생 환경과의 접촉 증가, 서식지 파괴, 농촌 지역 소규모 도시화, 기후변화(기후위기)의 복합작용이 역사적 풍토병 지역 밖에서의 사례 출현에 기여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10일 CNN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감염병 전문가 에두아르도 로페스는 "기온상승이 장꼬리쥐(long-tailed mouse) 서식 환경을 바꾸고 있으며, 이 설치류들이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 사례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틴아메리카 백신학회 부회장 로베르토 데바흐는 "산불로 인해 인간과 야생동물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것이 감염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 대서양림의 벌채된 숲. IUCN은 삼림 벌채가 질병 발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 Paula Prist/IUCN)

한타바이러스와 기후 요인의 연관성은 과거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학술지 Emerging Infectious Diseases에 2018년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1991~1992년 엘니뇨로 포코너스 지역(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콜로라도·뉴멕시코·유타 4개 주 접경)에 강수량이 늘고 봄철 식생이 풍부해지면서 1993년 사슴쥐 개체수가 전년 대비 10배까지 폭증했다. 

그해 봄, 해당 지역에서 건강한 젊은이들이 독감 증상으로 시작해 급격히 폐부종·심혈관 부전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조사 결과 아시아·유럽에서만 알려졌던 한타바이러스가 아메리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고, 이것이 한타바이러스 심폐증후군(HCPS·안데스바이러스)이 공식 질환으로 규명된 계기가 됐다. 

기후위기가 ENSO(엘니뇨-남방진동) 현상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면 이 같은 패턴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강수 증가뿐 아니라 가뭄도 위험 요인이다. 건조한 환경에서 먹이가 줄어든 설치류가 인간 거주지로 유입되고, 건조한 먼지 환경이 바이러스 에어로졸 흡입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삼림 복원이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설치류 개체수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이미지 (자료 Prist et al. 2021/IUCN)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2021년 발표한 연구는 생태계 복원이 한타바이러스 위험을 낮출 수 있음을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IUCN 산림·초지팀 수석 프로그램 조정관 파울라 프리스트가 이끈 연구에 따르면, 열대림을 전면 복원할 경우 주요 숙주 설치류 1종의 개체수를 최대 89%, 다른 1종을 최대 46%까지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취약 지역 거주 280만 명의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파울라 프리스트는 "산림 복원은 기후변화 완화와 생물다양성 회복 수단으로만 인식되어 왔지만, 인간 건강을 보호하는 공중보건 개입으로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WHO 역시 한타바이러스 대응에서 인간·설치류·환경의 연결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원헬스(One Health)' 접근법을 공식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