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타고 퍼지는 '치명률 최대 50%' 한타바이러스

한타바이러스, 남미서 확산…크루즈선 집단감염까지
12일 외신과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질병예방통제예방센터(ECDC) 발표를 종합하면 남미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아르헨티나 보건부에 따르면 2025년 6월 이후 현재까지 감염자는 101명으로, 직전 같은 기간(2024년 6월~2025년 5월·57명)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사망자는 32명으로 2018년 이후 최다다. WHO는 5월 6일 기준 아메리카 대륙 8개국에서 299건의 확진과 59명의 사망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가 옮기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감염된 쥐의 소변·분변·타액에서 생긴 에어로졸을 흡입할 때 감염된다. 최근 남미를 중심으로 한타바이러스의 변종인 안데스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중으로 치명률이 최대 50%(WHO 기준)에 달한다. 현재까지 승인된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안데스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 중 사람 간 전파가 보고된 유일한 변종이다. 다만 전파는 동거 가족·간병인 등 장시간 밀접 접촉 시에만 이뤄진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역사적으로 파타고니아 중심의 풍토병 수준이었으나, 최근 중부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만 42건이 집중되는 등 비풍토 지역으로의 확산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에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슈아이아를 출발한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에서도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배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에 기항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반복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테네리페 주민들에게 직접 서한을 공개하며 "이건 코로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케임브리지대 보건안보·감염병 전문가 샬럿 해머 교수도 미국 CNN을 통해 "전파력이 코로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감염자 옆을 지나가는 것만으로 감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WHO는 이번 사태의 위험도를 크루즈선 관련 '중간', 전 세계적으로는 '낮음' 수준으로 평가했다.
한국에서 처음 발견…국내형 바이러스는 치명도 낮아



국내 바이러스는 남미형과 성격이 다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는 폐·심장을 공격하는 안데스바이러스와 달리 신장과 혈관에 손상을 입히는 신증후군출혈열을 일으킨다. 치명률은 현재 5% 미만으로 1960년대 이전 5~15% 수준에서 의료 수준 향상으로 크게 낮아졌다. 국내형에는 예방백신이 존재하고 고위험군인 군인·농부·야외 작업자를 대상으로 접종이 권고된다. 사람 간 전파도 극히 드물다.

"이상기후·서식지 파괴가 확산 이끌어"
감염자가 늘고 발생지역이 넓어진 배경에 기후위기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아르헨티나 보건부는 최근 감염자 급증 배경에 대해 "야생 환경과의 접촉 증가, 서식지 파괴, 농촌 지역 소규모 도시화, 기후변화(기후위기)의 복합작용이 역사적 풍토병 지역 밖에서의 사례 출현에 기여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타바이러스와 기후 요인의 연관성은 과거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학술지 Emerging Infectious Diseases에 2018년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1991~1992년 엘니뇨로 포코너스 지역(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콜로라도·뉴멕시코·유타 4개 주 접경)에 강수량이 늘고 봄철 식생이 풍부해지면서 1993년 사슴쥐 개체수가 전년 대비 10배까지 폭증했다.
그해 봄, 해당 지역에서 건강한 젊은이들이 독감 증상으로 시작해 급격히 폐부종·심혈관 부전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조사 결과 아시아·유럽에서만 알려졌던 한타바이러스가 아메리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고, 이것이 한타바이러스 심폐증후군(HCPS·안데스바이러스)이 공식 질환으로 규명된 계기가 됐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2021년 발표한 연구는 생태계 복원이 한타바이러스 위험을 낮출 수 있음을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IUCN 산림·초지팀 수석 프로그램 조정관 파울라 프리스트가 이끈 연구에 따르면, 열대림을 전면 복원할 경우 주요 숙주 설치류 1종의 개체수를 최대 89%, 다른 1종을 최대 46%까지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취약 지역 거주 280만 명의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파울라 프리스트는 "산림 복원은 기후변화 완화와 생물다양성 회복 수단으로만 인식되어 왔지만, 인간 건강을 보호하는 공중보건 개입으로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WHO 역시 한타바이러스 대응에서 인간·설치류·환경의 연결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원헬스(One Health)' 접근법을 공식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