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 대출받아 ''건물을 은행명의로 넘겨놓고'' 보증금과 임대료 챙겨 달아난 집주인

신탁부동산의 함정, 오피스텔에 남겨진 30세대의 절망

2025년 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오피스텔에선 36살 윤씨를 비롯해 30세대가 모두 퇴거 요청 안내문을 받는다. 내용은 충격 그 자체: “수협은행이 신탁한 부동산을 무단 점유 중이니 명도소송을 진행하겠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건물주 김씨는 이미 2018년 오피스텔을 신축하며 수협은행에서 약 115억 원, 실질적으로 120억 원 가까운 대출을 받았다. 건물 자체를 담보로 잡은 게 아니라, 아예 소유권 전체를 은행에 넘기는 ‘신탁’ 방식을 썼다. 하지만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수협은행은 신탁관리자 역할로 경매 절차에 들어갔고, 입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은행 동의 없는 임대차 계약, 보증금과 권리 날려버린 세입자들

신탁 등기를 한 부동산은 실질적 주인(소유자)이 신탁회사, 즉 수협은행이다. 이런 경우 임대인은 반드시 신탁회사의 '동의서'를 받아 임대차 계약을 해야만 법적 효력이 인정된다. 하지만 현장에선 건물주와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무 문제 없다”고 장담하며 세입자와 계약서만 쓰는 관행이 팽배했다. 지방 등기부 등본에 신탁 내용이 적혀 있어도, 법적 효력은 결국 ‘은행 동의’로 갈린다. 동의서를 받지 않고 계약하면, 보증금은 물론 임대차 보호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31세대가 겪은 현실이었다.

조작된 동의서, 피해자만 남긴 관행의 불안

일부 세입자는 건물주에게 신탁회사(수협은행)의 동의서를 받았다고 믿었지만, 수협은행 측은 해당 서류가 ‘조작된 문서’라며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건물주는 “신탁부동산 계약 관행”이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부동산 공인중개사 역시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사기피해자들은 등기부 확인과 신탁부동산 내역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진리만 뒤늦게 깨달았다.

신탁 등기 부동산 임대차, 왜 사기가 반복되는가?

신탁부동산 전세사기는 최근 서울에서만 177건, 피해금액 약 156억 원이라는 공포의 통계가 집계될 만큼(2023~2024년 기준), 악성 사기 방식 중 하나로 악명 높다. 건물주가 대출을 앞세워 은행에 신탁을 맺고도, 신탁회사 동의 없이 세입자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보증금으로 빚을 메꾼 뒤, 경매/공매가 들어가면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식이다. 명백한 범죄로 판정되어도 법적 구제, 보증금 회수가 쉽지 않다.

피해 예방, 반드시 확인해야 할 임대차 절차와 동의

전문가들은 신탁등기 부동산 계약에서 반드시 등기부등본 ‘갑구’에 신탁여부가 기록되어 있는지, 신탁회사(수탁자)의 동의서 원본을 직접 요구해야 함을 강조한다. 신탁회사 인감증명서/동의서는 임대인이 아닌 수탁자가 직접 서명을 한 서류여야 하며, 계약 전 반드시 확보 후 체결해야 법적 보호가 가능하다. 동의서가 사후에 발급되거나 위조되었다면, 임차인은 보호받기 어렵다.

구제 없는 피해와 제도 미비, 계약 원칙에서 시작해야

신탁사기 피해자는 현재로서 명도소송에서 패소 위험, 보증금 반환 소송, 공인중개사 손해배상 청구 등 쉽지 않은 법적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도 법적 구제 사각지대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피해 예방을 위해선 임대차 계약 전 △등기부 신탁여부 확인 △동의서 원본 확인 △은행 직접 문의 △공인중개사의 임대책임 확인 등 원칙적 절차를 지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120억 대출, 신탁 소유권, 은행 동의 없는 계약—현대 부동산 시장의 사각지대는 평범한 세입자의 일상을 한순간에 뒤흔든다.

법적 구제보다 먼저, 임대차의 원칙과 꼼꼼한 확인이 평온한 삶의 최소 조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