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마일짜리 싱커를 깨끗한 좌전안타로
주말 라이벌전이다. 다저스의 샌디에이고 원정 첫 경기다(한국시간 5일). 3회 홈 팀의 선두타자가 타석에 나온다. 관중석이 뜨거워진다. ‘어썸 킴’을 연호하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하지만 카운트는 투수 편이다. 어느 틈에 1-2이다.
4구째. 보비 밀러의 하드 싱커가 존을 통과한다. 무려 100.5마일(161.7㎞)짜리의 속도다. 보통이라면 꼼짝 못 한다. 변화구도 염두에 둘 카운트 아닌가. 아차 하면 끝이다. 루킹 삼진이 십상이다. 기껏해야 커트(파울)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웬걸. 타자의 반응이 놀랍다. 완벽한 타이밍을 잡는다. 그것도 풀 스윙이다. 빨랫줄 하나가 좌익수 앞으로 널렸다. 출구 속도가 무려 102.2마일(164.5㎞)짜리 타구다. 깨끗한 좌전 안타다. 1루에 도달해 심드렁한 표정이다. ‘뭐, 이 정도쯤이야.’
다저스 중계석에서 감탄이 쏟아진다. 가뜩이나 타자에 대한 칭찬을 이어가던 순간이다. “김하성은 6월부터 공격적으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뜨거운 감각으로 강한 타구를 만들어 낸다. 리그 정상급 생산력을 보여준다.” (오렐 허샤이저)
캐스터(조 데이비스)도 입이 마른다. “갑자기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완벽한 선수가 됐다. 베이스볼레퍼런스 WAR을 보면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상당히 놀라운 얘기다. 지금 이것이 (101마일을 안타로 만든 것이) 그의 가장 큰 성장이다. 빠른 볼을 제대로 쳐내느냐가 큰 의문이었는데, 제대로 잡아당겨 안타를 뽑아 낸다.”

암울했던 첫해의 에피소드
얼마 전 업로드된 유튜브 에피소드다. ‘메이저리거, 슬러거들의 수다’라는 제목이다. 채널 주인 강정호가 김하성, 최지만과 토크를 나눈다. 과거 팀 동료 토미 팸에 관한 얘기 중이다. 김하성이 썰 하나를 제공한다.
김하성 “저도 진짜 많이 치거든요. (배팅) 케이지에서. 그래서 애들이 저를 TP(토미 팸)라고 그래요.”
강정호 “왜?”
김하성 “TP가 엄청 많이 쳐요. 케이지에서. 근데 제가 첫 해 때도 그렇고, 거의 케이지에서 살았어요. 어차피 야구도 못하는데, 빠따(배트)라도 치자. 막 이러면서. 맨날 기계 볼 막 160에 맞춰 놓고. 계속 쳤어요. (손바닥) 여기 이렇게 붓고 막.”
최지만 “맞아. 나도 그랬어. 막 그렇게 쳐야 돼.”
이 대목이다. 귀가 솔깃한 얘기가 이어진다.
김하성 “지금은 이제 폼 볼이라고, 그걸 많이 치죠.”
최지만 “있어요. 탱탱볼 같은 거.”
강정호 “아, 그래. 애들 그거 많이 치더라.”
최지만 “나는 그거 별론데.”
김하성 “저는 그걸로 효과 많이 봤어요. 야구공 치면 (오른쪽 엄지 가리키며) 여기 아파 가지고 못 치거든요. 그런데 그걸 많이 보고 타석에 들어가면 투수 공이 편해요. 직구가, 확실히. 스핀도 잘 보이고.”
최지만 “나는 반대인 게. 안 아프잖아요. 그럼 내가 (감각을) 모르는 거야. ‘아, 늦었다’ 이런 걸 모르니까, 아픔이 있어야 ‘아, 이게 맞는구나’ 그렇게 되죠.”
강정호 “(최지만을 가리키며) 너는 전형적인 옛날 시대의 훈련 스타일이야.”
모두 빵 터진다. ㅋㅋㅋㅋ

아이들 장난감에서 개발된 연습구
폼 볼(Foam Ball)은 본래 아이들 용이다. 부드럽고 말랑한 재질로 만들어, 딱딱한 공 대신 즐길 수 있다. 요즘은 이걸 일반용으로 개발했다. 야구 외에도 골프 등에서 연습용으로 쓴다. 김하성의 말처럼 손(가락)에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MLB에서도 한창 보급 중이다. 원조로 꼽히는 것이 내야수 토미 라 스텔라(현재 SF)다. 그는 오클랜드 시절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개조한 배팅 머신을 주문 제작해 효험을 봤다. 이후 팀 동료 JJ 블리데이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오스틴 헤이스 같은 타자들이 사용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자이언츠는 내야 펑고, 포수 블로킹 훈련에도 이용한다.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었던 미국 첫 해
첫해는 절망적이었다. 스스로 말처럼 완전히 망가졌다.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출전 기회도 적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패스트볼에 더 큰 벽이 느껴졌다. 상대는 뻔히 안다. 집중적인 공략이 들어온다.
이듬해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 올해.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6월 이후 상승세는 여기에 기인한다. 90마일 후반대 투구도 크게 어렵지 않다. 종종 담장 너머로 날려버린다.
아래 표에서도 나타난다. 베이스볼 서번트가 집계한 투구별 상대 기록이다. 패스트볼에 대한 타율이 매년 올라간다. 0.231→0.262→ 0.271로 높아졌다. 홈런도 3개→6개→9개로 늘었다. 올해는 아직도 50게임 남짓 남았다.
참고로 패스트볼은 포심, 투심, 커터, 싱커가 포함됐다. 브레이킹(볼)은 슬라이더, 커브, 스위퍼 등을 말한다. 체인지업, 스플리터, 포크볼은 오프 스피드로 분류됐다.

얼마나 통증이 컸으면 폼 볼을 생각했을까
김하성의 얘기를 다시 떠올려보자. “저는 그걸(폼 볼)로 효과 많이 봤어요. 야구공 치면 (오른쪽 엄지 가리키며) 여기 아파가지고 못 치거든요. 그런데 그 공을 많이 보고 타석에 들어가면 투수 공이 편해요. 직구가, 확실히. 스핀도 잘 보이고.”
두 가지 해석이 필요하다. 폼 볼 훈련이 효과적이라는 경험이다. 탐구하는 자세,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이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왜 그걸 시도했냐 하는 동기다. “첫해부터 거의 (배팅) 케이지에서 살았어요. 어차피 야구도 못하는데, 빠따(배트)라도 치자. 막 이러면서. 맨날 기계 볼을 160에 맞춰 놓고. 계속 쳤어요. (손바닥) 여기 이렇게 붓고 막.”
기계 볼 160㎞. 말이 그렇지, 이거 장난 아니다. 사람이 던지는 공보다 훨씬 어렵다. 타이밍 잡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제대로 맞을 리 없다. 늦고, 빗맞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손이 울리고, 엄지 부근이 퉁퉁 붓는다. 타자들이 겪는 만성 질환이다.
그걸 매일, 거기서 살다시피 하면서. 그랬다 치자. 그 고통이 오죽하겠나. 그러다 보니 자연히 폼 볼을 찾게 됐을 것이다. 훨씬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닭장(배팅 케이지)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많은 땀을 흘렸다는 뜻이다.
야구인들 하는 말이 있다. 연습장 불을 누가 가장 먼저 켜는지, 가장 늦게 끄는지. 그걸 보면 대충 싹이 보인다는 얘기다. 파드리스 동료들이 놀랄 정도다. 그렇게 지독하게 기계 볼과 씨름했다. 그 절실함이 드디어 활짝 피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