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타고 떠나는 북한산 나들이, 명소 가득한 1020번 풀코스
기생충 촬영지부터 미술관·시장까지…북한산 일대 숨은 명소 곳곳이 정류장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 도심 구석구석을 갈 수 있는 대중교통 나들이 수요가 늘고 있다. 교통체증과 주차난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가득한 대중교통 노선을 따라 나들이할 때 느낄 수 있는 낭만은 덤이다. 북한산 일대를 운행하는 1020번 버스는 ‘kt광화문지사’ 정류장에서 시작해 ‘정릉북한산공원입구’가 종점으로 서울 강북에 위치한 나들이 명소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
1000만 돌파한 영화 촬영지부터 흥선대원군 탐낸 정원까지
1020번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 정류장에 하차하면 ▲윤동주 문학관 ▲영화 기생충 촬영지 ▲석파랑 서울 미술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윤동주 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서 오랜 시간 방치됐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이곳은 3개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으며 해설 강의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이름과 작품 모두 익숙한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아는 정보가 없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광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제3전시실의 경우 물탱크 시설을 거의 개조하지 않은 상태로 윤동주 시인이 눈을 감았던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가운 감방을 연상케 한다.
전영인 씨(51·여)는 “이름과 작품 모두 익숙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몰랐던 사실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며 “규모는 작지만 알차게 구경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10분 정도 이동하면 1000만 관중을 모으는데 성공한 기생충의 촬영지인 다리 계단을 방문할 수 있다. 다리 계단은 박 사장네서 파티를 즐기고 있던 기택네 가족이 캠프에서 일찍 돌아온 가족들을 피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긴 계단을 통해 상류층인 박사장네과 하류층인 기택이네 빈부격차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리 계단 맞은 편 도로에는 영화 포스터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마련해둔 것이 눈길을 끈다. 다리 계단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서울 미술관은 방송에 종종 등장해 유명한 석파정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조선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흥선대원군이 다른 이의 소유지였던 이곳을 권력으로 뺏을 정도로 예로부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현재 서울미술관은 상설전시가 진행 중이다. 방문객들은 서울미술관 대신 석파정만 보기 위해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다만 결혼식과 돌잔치 장소로도 인기가 있는 만큼 홈페이지에서 방문을 희망하는 날 개관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수정 씨(31·여)는 “석파정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미술관 입장권을 구매하는 기분”이라며 “석파정을 구경하다보면 탁 트인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어 미술관보다 더 마음을 뺏긴 것 같다”고 말했다.
식당 A는 도쿄 출신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일본 가정식 식당으로 대부분의 음식이 1만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자하문 터널 끝 쪽 부암동 주민센터 맞은편에 있어 윤동주 문학관, 기생충 촬영지, 서울미술관 중간에 위치한다.
내부 규모는 20명 정도 수용 가능할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지만, 매장 내부에는 5명이 넘는 손님들이 이른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카레와 밥 등 기본적인 메뉴는 리필이 가능하다는 점과 주문 시 ‘양 많이’도 요청할 수 있어 손님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이성은 씨(29·여)는 “부암동을 검색했을 때 가장 상단에서 볼 수 있어서 한 번 방문해봤는데 1만원 대라는 저렴한 가격대임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밥과 카레 등 리필이 된다는 점도 좋아서 다음에 또 방문할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식당 A 근처에는 담쟁이가 가득한 카페 A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1990년 부암동이 청와대 뒤 작은 동네일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곳이다. 평균적인 커피 가격이 6000원대로 다소 비싼 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손님들이 방문하고 있다.
가게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로스팅된 원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두, 커피 용품, 드립백 등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으며 한쪽에는 11가지 원두가 진열돼 있어 취향에 맞는 원두를 구매할 수 있다.
학생들 추억 가득한 곳부터 주민들만 아는 비밀 장소까지
‘서울예술고등학교, 평창동 주민센터’ 정류장에선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삼세영 갤러리 등을 방문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관한 곳으로 현대 미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는 국공립 최초의 아카이브 미술관이다. 이곳은 도서관, 기록관, 미술관의 역할을 하는 3개의 전시관이 준비돼 있으며 시민들에게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소 다른 전시에서는 작품을 가만히 보기만 해야 하지만 이곳은 작품을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전시에 비해 사람들이 더 즐겁게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청각을 활용해 즐길 수 있는 전시가 많아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있었다.
지세준 씨(28·남)는 “평소 전시회하면 가만히 그림을 구경하는 것만 생각해서 따분한 느낌이 드는데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만져보고, 들어보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다른 전시에 비해 즐겁게 구경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주변에는 다양한 소규모 갤러리가 있다. A, B전시실로 운영되고 있는 삼세영 갤러리는 오래된 고미술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와 차이점을 보인다.
A 전시실은 갤러리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분청사기와 고려청자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B 전시실의 경우 매달 다른 작가의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삼세영 갤러리 인근에는 서울예술고등학교(서울예고)가 위치하고 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평창동 주민센터’ 정류장 바로 앞에 위치한 식당 B는 서울예고 학생들에겐 학창시절 추억이 가득한 식당이다.
10년 전 서울예고를 졸업한 김소희 씨(30·여)는 “과거 친구들이랑 학교 마치고 가던 식당인데, 떡볶이가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며 “저렴한 가격에 양도 많아 자주 갔는데, 매장 벽 어딘가에 내가 한 낙서가 아직 남아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게 안에는 서울예고 학생들이 해놓은 것으로 보이는 낙서가 가득했으며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만큼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식당 B에서 길을 건너면 갈 수 있는 식당 C는 어두운 골목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눈에 띄는 간판도 발걸음을 사로잡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없다. 실제로 동네 주민들만 알음알음 방문하는 곳으로 그날그날 사장님이 잡은 해산물을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 삼촌카세가 유명하다. 단골 위주로 장사를 하다 보니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하기 어려울 정도다.
심재영 씨(48·남)는 “이 자리로 옮기기 전에는 나름 대로변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간판이 없어졌다”며 “지금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하기 어렵고 예전부터 유명한 연예인들도 종종 방문했던 곳이다”고 말했다.
식당 C 인근에 위치한 카페 B는 지난 2022년 제과 제빵 명인에 선정된 제빵사가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오래된 골목 속에 위치해 있다. 좌석이 3개 정도 준비된 그리 크지 않은 매장 내부에는 마들렌, 휘낭시에 등 구움과자가 가득했다. 대부분 가격대가 4000원을 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다양한 디저트를 즐기기에 적합해 보였다.
어떤 디저트를 먹을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 손님에게 가게 주인은 손님이 좋아하는 맛에 대해 물어본 뒤 취향에 맞는 디저트를 추천해주고 있었다.
추억 가득한 ‘정릉시장’…하천 따라 한옥 펍·카페 가득
‘정릉3동주민센터앞’ 정류장엔 정릉시장을 가볼만 하다. 정릉3동주민센터앞 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정릉시장을 방문할 수 있다. 이곳은 지난 2010년에 문을 연 상설시장으로 서울 시내에 위치한 다른 시장들에 비해 오래된 곳은 아니지만 북적북적한 시장의 모습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정릉시장 주변에는 국민대학교, 서경대학교가 위치해 있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시장 거리는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으며, 시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하천을 따라 많은 가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골목에는 과거부터 있었던 순댓국, 삼겹살 가게 등 다양한 식당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시장에 있는 모든 가게가 다 맛집이기 때문에 원하는 음식에 따라 식당을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 특히 골목 안쪽에 있는 식당들이 맛있는 경우가 많으니, 여유롭게 골목을 구경하며 방문하는 것을 추천했다.
골목골목을 다니다 보면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한옥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한옥이 카페나 펍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옥의 정취를 즐기며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게마다 가득하다.
식당 D는 한옥에서 독일식 정통 수제 소시지와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잠봉뵈르, 코젤 맥주 등은 한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는 아니지만, 막상 먹다 보면 한옥과도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함께 온 일행들도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혜슬 씨(21·여)는 “골목골목 다니다보면 한옥에 가게를 차려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곳도 그런 곳들 중 하나”라며 “학교에서 가까워서 자주 방문하는데, 올 때 마다 실망시키지 않는 맛과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고 같이 온 사람들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장소”라고 말했다.
정릉시장을 가로지르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카페 C도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다.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한 이곳은 언뜻 보면 한옥과 잘 안 어울리는 듯 하지만 막상 방문한 사람들은 만족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페가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하천 끝에 위치한 만큼 산책을 마무리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특히 개방된 천정을 볼 수 있는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대부분 편한 복장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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