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적은 그저 나쁜 도적일까[꼬다리]
2022. 9. 28. 08:03
어린 시절 책장의 위쪽 첫 자리엔 늘 〈삼국지〉가 꽂혀 있었다. 10권짜리 〈이문열 삼국지〉는 물론, 일본 만화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만화 전략 삼국지〉 60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해적판 요약본을 시시때때로 읽었다. 컴퓨터가 생긴 뒤에는 일본 게임 회사 ‘코에이’에서 나온 삼국지 시리즈를 플레이했다. 좋아하는 오락실 게임은 ‘천지를 먹다’, 롤플레잉 영걸전, 공명전, 조조전의 엔딩을 여러 번 봤다.
책이건 게임이건, 시작은 대개 ‘황건적의 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 한나라 말기 ‘태평도’라는 종교집단이 일으킨 봉기로, 으레 비장한 BGM과 함께 게임의 배경 설명차 등장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읽지 않고 넘겼던 것 같다. 천하통일까지 갈 길은 멀고, 황건적은 초반 퀘스트(과업)로 나타나는 토벌 대상일 뿐이었다. 게임 속 선택지는 그들의 정체 파악보다 적을 어떻게 무찌를 것인지에 국한돼 있었다.
황건적을 다시 본 건 대학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당면한 정치 현상을 잘 분석하려면 역사적 사건부터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었다. 가까운 과거는 가해자 처벌 등 형사 책임과 배·보상에 영향을 주고, 먼 과거를 분석하는 능력은 현재를 바라보는 눈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익숙한 사례를 새삼 고민해보라며 이렇게 질문했다. “황건적의 난은 동학농민운동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요.”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동안 황건적을 재평가하는 이가 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기근과 약탈에 시달린 백성들이 ‘못살겠다’며 봉기했다는 분석이다. 소설가 장정일은 21세기 초엽 발간한 〈장정일 삼국지〉에서 ‘황건군’이라는 단어를 썼고, 중국의 일부 역사가는 농민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여겨 황건 ‘기의’(의로운 마음으로 떨쳐 일어나다)라는 표현을 책에 담았다.
반대로 동학농민운동을 이전엔 ‘동학란’이라며 낮잡아 불렀다는 사실도 접했다. 어쩌면 황건적도 도적보다는 왜 들고일어났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민중과 가깝지 않은가 의문이 생겼다. 수많은 역사 해석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 또한 사태의 전말을 모두 담은 분석은 아닐 것이나, 황건적을 단순히 나쁜 도적으로 몰아가는 것 역시 옳지 않다는 감각이 생겼다.
지난 9월 15일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을 “황건적 보호법”이란 말로 비유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법으로, 권 원내대표는 노조를 무찔러야 할 도적으로 묘사한 셈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국민을 도적떼로 취급했다”며 권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노조의 현실을 모르는, ‘저 아래 사람들’의 삶에 무감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무감함은 황건적 비유 이전에, 황건적이 나쁜 도적에 불과하다는 확신에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실은 ‘황건적은 곧 악당’이라고 별 고민 없이 단순화하는 사람이기에 노조가 도적이라고도 잘라 말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비록 가설이지만, 기각하기엔 입법자인 그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황건적을 주인공 삼은 게임도 몇년 전 시장에 나왔다는데, 그의 책장에도 유비·관우·장비 주연의 〈삼국지〉와 다른 해석이 함께 꽂힌 모습을 보고 싶다.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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