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글로벌 미술시장, 2년 만에 매출 41% 급감… 아트페어는 취소, 갤러리는 폐업
팬데믹 기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글로벌 미술시장이 혹한기에 들어섰다. 고금리와 지정학적 불안에 큰손 컬렉터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뉴욕 유명 갤러리들마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는가 하면, 주요 아트페어는 올해 행사를 취소했다.
10일 세계 최대 미술 경매 데이터를 보유한 아트넷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순수미술 경매 매출은 47억2000만달러(약 6조5500억원)를 기록했다. 시장이 정점이던 2022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40.9% 급감한 수치다.

경매 부진은 일시적인 흔들림이 아니다. 연간 집계로 지난해부터 글로벌 미술시장은 규모가 뚜렷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미술업계에서 사실상 벤치마크(기준점)로 취급하는 아트바젤과 UB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미술시장 총매출은 575억 달러(약 79조원)로 직전해보다 12% 감소했다. 특히 값 비싼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거래되는 경매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다. 2024년 공공 경매 매출은 25% 급감했다. 1000만 달러(약 138억원)를 넘는 초고가 작품 거래는 45% 쪼그라들어 거의 반토막 났다. 7000만 달러짜리 자코메티 조각상은 유찰됐고, 3000만 달러짜리 앤디 워홀 작품은 경매 직전 출품이 철회됐다.
미술 시장에서 모세혈관 같은 역할을 하는 미국 뉴욕의 유명 갤러리들은 줄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미술시장 거래액 43%를 차지한다. 세계적인 수집가와 관련 자문·언론·금융이 한데 몰려 있어 작품 가격과 유행이 가장 먼저 형성된다.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 유명 작가들이 거쳐간 뉴욕 유명 갤러리 ‘비너스 오버 맨해튼’은 지난 7월 주요 갤러리 가운데 가장 먼저 폐쇄를 공지했다. 이후 신진 작가 발굴로 명성을 얻었던 ‘클리어링’이 지난달 7일 문을 닫았다. 파급력 있는 굵직한 갤러리 가운데 한 곳이었던 ‘카스민’ 역시 올 가을까지만 영업하기로 했다. 클리어링 같은 경우 아트바젤 본 전시에 입성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지만, 월 15만 달러(약 2억원)에 달하는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을 선택했다. 바뱅 대표는 아트넷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가 서 있던 구멍이 너무 깊었다”고 토로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미국화랑협회(ADAA) ‘더 아트 쇼’마저 올해 행사를 취소했다.

미술시장이 얼어 붙은 표면적인 이유는 인플레이션 같은 거시 경제 불확실성에 미술품을 사모으는 부유층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은 경기에 따라 움직이는 동행지표 성격이 짙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미술시장 매출은 한 해 만에 36% 급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아트 서비스 부문 대표 드루 왓슨은 인터뷰에서 “팬데믹 이후 주식 시장과 함께 미술시장도 과열됐었다”며 “저금리가 유동성을 미술품으로 이끌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다.
팬데믹 시기 ‘단타(flipping)’를 노리고 시장에 들어왔던 투기성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도 미술시장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예술 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는 “팬데믹 시기 미술품을 사는 것이 좋은 거래, 투자가 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그 서사가 끝났다”고 전했다. 당시 과열된 수요에 맞춰 갤러리들은 작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렸다. 미국 출신 작가 샤라 휴스 작품은 2년 전까지 갤러리에서 최고 50만달러에 팔렸다. 이 작가의 올해 최고 경매가는 31만달러다. 미술시장에서는 갤러리를 1차 시장, 경매를 2차 시장으로 본다. 갤러리에서 마음에 드는 작가 작품을 사서 보유하다, 작가 인지도와 작품 가치가 오르면 경매에서 파는 구조다. 그러나 갤러리 판매가가 지나치게 뛰면서 경매가가 갤러리 판매가에 못 미치는 가격 역전 현상이 올해 빈번해졌다.
수집가들의 소비 행태 변화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수십 년간 시장을 이끌어온 핵심 수집가 층은 점차 고령화하고 있다. 반면 젊은 세대는 미술품 같은 ‘소유’보다 ‘경험’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경향이 짙다. 50년 동안 1만점 이상 작품을 모은 유명 수집가 베스 루딘 드우디는 아트넷에 “그동안 미술 시장이 가격 면에서 조금 미쳐 있었다”며 “당분간 수집 활동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유명 수집가 스테파니 샴페인은 “너무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며 작품 시장 과포화 때문에 당분간 구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미술은 주식처럼 즉시 팔 수 없는 비유동 자산이다. 작품 가격이 오르내리는 폭도 크고,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가격에 미치는 힘이 큰 만큼 업계 네트워크가 여전히 가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시기 급격히 오른 가격에 대한 불신이 현재 가격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랜드와 희소성, 인맥이 여전히 작품 가치를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벨기에 미술 전문가 알랭 세르베는 올해 업계 리포트에서 “미술시장 침체는 단순히 주기적인 흐름에 따른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했다. 그는 “너무 많은 갤러리, 작가, 행사로 비대해진 인프라가 축소되어야 한다”며 “미술시장이 새로운 균형을 찾기 전까지 거리에는 피가 흐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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