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개막

25일 함평 챌린저스필드에서 진행된 홈 개막전 행사에서 KIA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도열했다. /김여울 기자

시즌이 시작된다.

벌써 개막이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지난 가을,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사람들은 야구가 없는 길고 긴 겨울을 걱정했을 것이다.

야구 없는 계절은 길지만 돌아보면 짧다. 늘 개막을 앞두고 하는 생각은 “벌써 개막이다”이니까.

퓨처스리그는 이미 시작됐다.

울산 웨일즈가 새로 가세했고, 월요일 경기도 편성이 되는 등 새로운 변화 속에 퓨처스리그는 지난 20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NC 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로 시즌을 연 KIA 퓨처스 선수단은 25일 함평 챌린저스필드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홈 개막전을 열었다.

새로운 출발에 맞춰 구단은 타이거즈 미래들을 응원하기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KIA가 25일 함평챌린저스필드에서 열린 퓨처스홈 개막전을 찾은 팬들에게 선물한 스페셜 티켓. /김여울 기자

KIA는 경기장을 찾을 팬들을 위해 선수들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개막전 티켓과 응원 도구 등을 선물로 준비했다.

챔피언스필드와 챌린저스필드를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영했다.

덕분에 평일에도 많은 팬들이 야구장 나들이에 나섰고, 선수들은 ‘응원의 힘’을 경험했다.

서한국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이 퓨처스 경기장에서 응원전을 펼쳤고, 팬들은 뜨거운 목소리로 선수들을 격려했다.

KIA는 아쉽게 승리로 응원에 화답은 하지 못했다.

원정 경기에서 3연승을 거두고 왔던 KIA는 홈에서의 첫 경기에서 마지막 9회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상기된 표정으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공 하나하나에 나오는 탄성에 선수들은 ‘프로 선수’처럼 경기를 했다.

물론 이런 이벤트가 아니라도 기꺼이 퓨처스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있다.

응원도 한다. 하지만 팬보다 선수가 더 많은 공간에서의 응원이 쑥스러워서 소심한 응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응원단이 나서서 함께 하니 마음껏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홍세완 타격 코치 눈에는 앞선 경기와는 달랐던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평소의 퓨처스리그 경기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말 그대로 신나서 경기를 하는 선수도 있었고, 긴장감에 제 기량을 못 보여준 선수도 있었다.

잘하고 싶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들떠있던 선수들.

이날 선발라인업에 외야수 김민규, 내야수 박종혁과 한준희 3명의 ‘고졸 루키’가 있었다.

올 시즌 신인 선수 중에서도 가장 차분하게 인터뷰를 잘하는 김민규는 역시 달랐다.

“재미있었다”는 김민규는 “내일도 해요?”라면서 응원을 즐겼다. 아쉽게도 김민규의 바람과 달리 내일은 없었다.

박종혁은 준비한 게 잘 나오지 않아서 타석에서 마음은 급했지만, 팬들의 응원 덕분에 즐겁게 홈에서의 개막전을 치렀다. 프로에서의 첫 홈 경기.

경기 전부터 들뜬 표정으로 경기장을 오가던 한준희는 경기장에서도 날아다녔다. 경기 결과를 말하는 게 아니라 경기장에서의 모습을 말한다.

홍세완 코치가 “준희는 혼자 날뛰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한준희는 들뜬 하루를 보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이 선수들에게는 첫 프로, 첫 응원전 속에 치른 경기였을 테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지난 14일 KT와의 시범경기가 열린 챔피언스필드를 찾은 팬들이 서한국 응원 단장과 응원을 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선수들은 팬들의 사랑으로 성장한다. 없던 힘도 나오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종종 이유를 알 수 없는 구속 증가를 경험하는 투수들이 있다.

아직 팬들의 함성과 눈부신 조명이 어색한 선수들에게 발생하는 일이다.

야구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은 마운드에 있는 투수에게 쏠린다.

그런 시선을 처음 경험하는 선수들의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순간, 스피드도 폭발한다.

아무 준비 없이 스피드가 느는 것은 아니다.

퓨처스 리그에서 차근차근 프로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고 또 힘을 키우다가 ‘1군의 긴장감’이 더해지면서 껍데기를 깨는 경우가 있다. 한 단계 도약하는 순간이다.

10번 타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다. KIA 선수들이 말하는 ‘팬부심’도 그냥 립서비스로 하는 게 아니다.

나름 많은 경기를 뛰었던 선수라고 해도 종종 팬들의 응원에 놀랐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만원 잠실에서 첫 경기를 해본 선수들의 반응은 경이로움이다. 그라운드가 울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발끝의 진동 그리고 귀를 파고드는 함성. 그런 응원전을 즐기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베테랑일 것이다.

신인들은 만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의 주인공이 되곤한다.

처음 프로 선수로 그라운드에 서는 순간, 빛나는 조명과 만원 관중의 함성으로 가득 찬 경기장은 진공상태가 된다.

만화처럼 바로 눈앞에 빛만 보이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고 난 뒤 이상한 나라의 폴의 모험이 끝난 듯 갑자기 시간과 공간이 움직인다. 빛과 소리가 한 번에 쏟아진다.

프로 데뷔전을 치른 대부분 선수의 공통된 설명이다..

물론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충 어떤 느낌일지 상상은 된다.

심장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긴장감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이들.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하는 행복한 직업이자 한편으로는 매일을 외줄 타는 느낌으로 살아야 하는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개막’은 설레는 단어다.

오래 떨어져 있던 반가운 이를 만나러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올 시즌을 맞는 선수들의 마음에는 ‘설렘’이 더해졌을 것 같다.

이범호 감독의 표현대로 한적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KIA는 밥만 먹고 훈련을 했다.

지난 시즌 실패를 곱씹으면서 열심히 했다.

누군가가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는 섭섭함이자 동기부여였다.

쉽게 찾아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예 선수들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노력했다.

후배들의 성장세에 선배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라운드는 계급장 떼고 붙어야 하는 냉정한 곳이다.

절대 주전도 없고 절대 후보도 없는 곳에서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 본 사람은 안다.

그 결과를 확인하게 될 순간의 설렘을. 노력이 부족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이 아닌 잘 준비된 자들의 설렘.

26일 챔피언스필드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KIA 선수단. /김여울 기자

남다른 각오로 새 시즌을 기다려온 김도영도 설레는 마음으로 결승선을 궁금해하고 있다.

김도영은 지난해 부상으로 많은 시간을 팀에서 벗어나 있었다.

새로 맞는 올 시즌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최형우도 박찬호도 위즈덤도 없다.

또 지난 시즌 KIA와 김도영을 보던 시선이 아니다.

사람들은 지난 시즌과는 다른 시선으로 KIA와 김도영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김도영은 궁금하다.

김도영은 “우리팀이 제대로 했을 때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2026시즌을 위한 마지막 심호흡을 하고 있다.

김도영의 성적은 KIA의 성적이기도 할 것이다.

선수들도 팬들도 준비는 끝났다. 열심히 뛰고, 최선을 다해 외칠 준비는 끝났다.

개막이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