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지역공동체 활성화 프로젝트-1] 파편화된 마을 주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생겼다
'185, 136, 127, 93, 100.' 최근 5년간 하동군에서 한 해 태어난 아이 숫자다. 지난해 다소 늘긴 했으나 출생아는 해마다 줄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었다. 65세 이상 고령자는 40%다. 심각한 저출생과 고령화로 하동군 인구(올해 5월 현재 4만 1229명)는 10년 만에 1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마을협력가' 파견 사업은 하동군이 지역 소멸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고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수년간 마을협력가 파견 사업을 수행해오는 등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온 하동지역 주민공정여행사 놀루와(협)와 지역 공동체 활성화 강화 사업을 공동 기획했다. 이번 기획은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동체 활성화 필요성·방법 등을 교육하고, 어떤 사업을 정하고 추진하는지 그 과정을 조명할 계획이다.
하동군은 익히 알려진 대로 지역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지역 소멸은 지역 공동체 붕괴를 의미한다. 이에 하동군은 마을협력가를 파견해 공동체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일정한 기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마을협력가가 마을에 들어가 활력을 잃은 마을을 활성화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해 9월 하동지역 6개 마을에 파견된 마을협력가는 각 마을 특성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펼쳐 조금씩 성과를 내며 정착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사업 추진에 앞서 그 첫 번째로 마을협력가가 파견된 마을의 전후 모습을 살펴본다.
◇화합의 마을로 변화한 화개면 상덕마을 =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하동군 화개면 상덕마을. 잘 조성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조선시대 성리학자 일두 정여창 선생이 잠시 기거하며 그의 제자들과 학문을 논했던 악양정은 상덕마을을 대표하는 자랑거리다. 김해 김씨 집성촌이었던 마을은 20년 전만 하더라도 200명 넘는 주민이 살았지만 이제는 67가구 105명으로 줄었다. 대부분 주민은 녹차·고사리·밤·매실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데, 청년층이 거의 없다 보니 농번기에 일할 사람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여느 농촌처럼 이곳도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10년이 넘었다. 마을 주민이 줄어든 빈자리는 귀농·귀촌인이 대신했다. 주민 40% 정도가 귀농·귀촌인이다. 하지만,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간 교류는 거의 없었다. 원주민이 사는 곳과 떨어진 곳에 정착한 귀농·귀촌인들은 그들끼리만 교류했고 여러 가지 문제로 원주민과 갈등도 빚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10년째인 김양언(64) 이장은 "군에서 원주민들이 이용할 상수도를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했는데, 상수도가 지나가는 땅의 주인이 반대해서 원주민과 갈등이 벌어졌다. 또 마을에 들어선 펜션의 정화조 냄새 문제로 원주민과 마찰이 생겨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마을에 변화가 시작된 건 마을협력가가 오면서다. 김 이장과 마을협력가 노력으로 조금씩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간 벌어졌던 틈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마을 회의에 전혀 관심 없었던 귀농·귀촌인들이 회의에 참여했고 마을 주민 회식 때도 참여하며 원주민과 어울렸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라서 그동안 할 수 없었던 마을 공동 사업도 추진할 수 있게 되는 등 서서히 마을이 활력을 띠었다.
마을협력가 김신영(42) 씨는 "마을이 건강하게 공동체가 형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노인 복지 사업의 하나로 된장·간장 만들기와 두부 만들기 사업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했다. 고령자가 많아 마을 인구의 35% 정도만 일할 수 있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어서 공동 사업을 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많은 주민이 참여했다. 주민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게 일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는 주민들의 마음과 뜻을 한데 모으기 위한 사업으로 마을 역사와 문화 등을 담은 우리 동네 가이드북 <상덕>을 마을 주민과 함께 만들 예정이다.
◇외형에서 마을 중심으로 탈바꿈한 북천면 직전마을 = 북천면 직전마을은 너른 들판에 심은 봄과 가을을 대표하는 양귀비꽃과 코스모스·메밀꽃이 장관을 이뤄 해마다 전국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봄에는 양귀비꽃 축제가, 가을에는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화려한 꽃으로 뒤덮은 축제 시기를 제외하면 활기를 잃은 마을 분위기가 일상이다. 직전마을 주민은 68가구에 90명 정도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주민 숫자가 300명을 훌쩍 넘었다. 마을 주민 평균 연령은 73세로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다. 60대가 청년이라고 할 정도로 청년은 거의 없다. 주민들이 아이 울음을 들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농사를 짓기 어려운 환경 탓에 귀농·귀촌도 극소수다. 이 때문에 농사를 포기하고 18년 전 너른 들판에 꽃을 심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꽃축제로 알려진 마을의 외형적인 화려함은 오히려 마을에 독이 됐다.
대학교수 출신 문현태(64) 이장은 "축제 때문에 외형적으로 화려한 성장은 있었지만 모든 시선이 축제에만 몰려서 마을은 소외됐다. 진정한 주민 소통과 화합은 소홀히 될 수밖에 없었다. 축제 기간이 지나면 마을의 활력이 매우 떨어졌다. 더욱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며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느꼈던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조정인(53) 마을협력가가 파견된 이후 문 이장은 마을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주민이 주체가 돼 마을을 활성화하는 활동에 전념했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리더회의를 매월 정기적으로 열었다. 마을 주변에 널린 돌을 이용해 주민이 직접 쌓는 돌담 만들기 행사에 이어 돌담 거닐기, 돌담사진 전시회 등을 열며 축제로 소외된 마을을 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
문 이장은 "우리 마을에 돌담이 많다는 걸 알았지만 마을협력가 제안이 있었기에 제대로 활용하게 됐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도 마을협력가가 있어서 추진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보다 철저하게 사람 마음을 담은 작업과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주민들도 스스로 마을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주민 소통 중심의 진교면 중평 삼구마을 = 진교면 소재지에 있는 중평 삼구마을은 90가구에 180명 주민이 산다. 면 소재지 중심에 있으면서도 개발에서 제외된 마을이다. 오랜 기간 개발에서 소외되다 보니 마을 풍경은 '달동네' 같은 모습이다. 주민은 원주민과 50년 전 진교면 수해로 이주해온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낮은 산을 사이에 두고 원주민과 이주민 공간이 분리돼 있어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주민 교류는 활발하지 않았다. 특히 주민 대부분이 장사 또는 사업을 하거나 직장인이어서 오히려 농촌보다 주민 간 교류는 더 어려웠다.
강충구(66) 이장은 마을협력가가 온 후 주민 간 교류 등 유대 관계 형성과 함께 마을을 밝게 꾸미는 데 주력했다.
강 이장은 "우리 마을은 사람 모으기가 어렵다. 행사를 하면 겨우 30여 명이 참석할 정도다. 특히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주민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다. 마을협력가가 온 후에는 주민 간 유대 관계가 활발해졌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 이상의 결과를 가져와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 이장과 마을협력가 김규나(56) 씨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마을을 밝게 꾸미는 벽화 그리기 등 막곡희망길 조성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숙원사업인 마을 공동묘지 이전과 진교공원 확장을 중장기 계획으로 세웠다.
/허귀용 기자
※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