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반짝이는 원판 모양의 반도체 웨이퍼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웨이퍼는 원통형으로 만든 고순도 실리콘 덩어리(주괴)를 얇게 잘라 제작됩니다.

따라서 반도체 공정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작업은 이 실리콘 주괴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반도체의 원료는 모래입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보는 모래가 아니라 고순도의 순수한 실리콘이 필요합니다.

이 고순도 실리콘을 만드는 일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실리콘 원석을 특별히 순수한 도가니에 넣어 녹이고, 이를 단결정 실리콘으로 뽑아내는 과정이 일반적인 쵸크랄스키 공정입니다.

이 말은, 순수한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려면 먼저 순수한 도가니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리콘 주괴의 원료가 되는 모래는 전 세계에 널려 있지만, 이 도가니를 만드는 데 필요한 초고순도 석영은 세계에서 단 한 곳,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 파인 지역의 광산에서만 생산됩니다. 이곳에서 채굴된 석영은 순도와 품질 면에서 독보적이며,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석영은 이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스프루스 파인 광산에서 채굴한 석영으로 만든 도가니만이 고순도 실리콘 주괴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도가니는 소모품이라 반도체를 생산할수록 계속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석영의 생산이 사실상 독점 상태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2008년 이 지역의 석영 정제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큰 차질이 생긴 적도 있습니다.

한국은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이와 관련된 현실이 아쉽습니다. 석영 도가니를 만드는 기술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한국은 이 도가니의 99%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독자적인 석영 도가니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 석영이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생산된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의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이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넓은 중국 영토에서 미국 스프루스 파인 광산급의 순수한 석영을 찾으려 애쓰고 있지만, 현재까지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