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보려고 하는 게임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간 애니메이션을 접할 일이 통 없었는데,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손쉽게 시청이 가능해지면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파이 패밀리'또한 이런 기회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한 작품입니다. 스파이와 암살자, 그리고 초능력을 가진 소녀가 위장 가족을 꾸리고 살아간다는 콘셉트가 퍽 마음에 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장에 단행본이 한두 권씩 꽂히기 시작했죠.
원작이나 애니메이션을 접한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테지만, 주인공 '아냐'의 귀여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도 그렇지만, 성우(타네자키 아츠미)의 목소리 또한 그 귀여움을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6월 27일, 한국어로 정식 발매된 게임, '스파이 패밀리 오퍼레이션 다이어리'는 이 '아냐의 귀여움'을 전면에 내세운 잔잔한 힐링 어드벤처 타이틀입니다. 아냐의 팬에게는 그 귀여움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크게 어필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장르명: 어드벤처
출시일: 2024. 6. 27.
리뷰판: 출시 빌드개발사: Groove Box Japan
서비스: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C, PS, Switch
플레이: Switch
'위장 가족' 포저 일가, 추억 남기기 대작전!
'스파이 패밀리 오퍼레이션 다이어리'는 전반적인 게임플레이는 제목만큼이나 정직한 한 줄로 요약이 됩니다. 원작 만화의 스파이 액션 보다는, 천진난만한 '아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느긋하고, 평화로운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스토리 전개도 크게 거창하지 않습니다. 아냐가 그림일기 완성에 열의를 나타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차남(다미안 데스몬드)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죠. 넷플릭스 같은 OTT에서 애니메이션을 본 분들이라면, 아냐가 그림일기 숙제에 적극적인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귀족 자제인 다미안은 서민의 그림일기가 특별해 봐야 얼마나 특별하겠느냐며 아냐를 도발합니다. 그리고 아냐는 그 말에 '긁'히고 말고요. 그렇게 평범(하려고 노력하는)한 가족의 특별한 그림일기를 위한 작전이 시작됩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게임을 원작의 외전격이라고도 해석할 여지가 있겠으나, 사실 아냐가 그림일기 소재를 모으는 것 외에는 굵직한 스토리 전개가 이뤄지지는 않는 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스파이 패밀리'의 스파이 액션으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긴장감 있는 부분은 빼고, 아냐가 등장하는 귀여운 장면만 가득하다는 것이 게임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습니다. 스파이 같은 건 모르겠고, 아냐가 귀여워서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고요? 어쩌면 이 게임은 당신을 위한 것일지도?
그림 일기의 꽃은 역시 '작고 사소한 일상'
일기를 한 번쯤 써봤다면 모두들 공감하겠지만, 사실 '특별한 소재'로만 그림 일기를 완성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제 초등학교 방학 숙제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로 '일상 속 작은 발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대부분 마찬가지일 테죠.
그리고 이것은 국제 스파이 아버지, 암살자 어머니를 둔 아냐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나 봅니다. 이 수상한 가족은 '그림 일기'를 목표로 나들이를 떠나게 되지만, 그 속에서 찾는 것은 주로 매우 일상적인 사물 또는 사건입니다.
신경쓰이는 물건을 확인하기로 결정하면, 게임 화면은 아냐의 특정한 순간을 담아내는 카메라로 변합니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 안에서, 아냐의 그림 일기에 걸맞는 모습을 포착해야 하죠. 앵글, 아냐의 동작, 초점...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사진을 찍었을 때 비로소 별 세 개 까지 순간을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행동력' 게이지가 한 가지 요소입니다. 아냐는 하루만에 나들이 지역에 있는 모든 물건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게임을 진행하며 필연적으로 같은 나들이 지역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는 상점에서 판매하는 지역마다 사용 가능한 물건입니다. 이것을 구매 해야만, 특정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는 소재가 해금됩니다. 예를 들어, 공원 분수대에서 비눗방울을 부는 아냐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비눗방울 키트를 사고 난 뒤 공원에 나들이를 가야 하는 식이죠.
그럼, 상점에서 물건은 어떻게 구매하냐고요? 여기서 바로 다음에 소개할 '미니게임'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그림 일기엔 언제나 과장이 섞이는 법!(?)
게임은 약 15종류의 미니게임을 지원하며, 각각의 미니 게임은 원작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요르 포저의 밤일(?)을 모티브로 한 미니게임부터, 로이드 포저의 스파이 콘셉에 맞는 잠입 액션도 있고, 이든 칼리지 체육 시간에 벌어지는 피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미니게임들이야말로 '오퍼레이션 다이어리'에서 액션성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지만, 그 깊이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은 줍니다. 물론 열 다섯 개의 미니게임 모두 반복 플레이 시 난이도를 높일 수 있는 요소가 제공되긴 하지만, 미니 게임 자체의 깊이를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림 일기 소재를 둘러싼 일련의 사이클. 즉, 나들이 가서 물건을 찾고, 사진을 찍어 얻은 영감을 활용해 미니 게임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얻은 재화로 더 많은 물건을 사는 과정은 '오퍼레이션 다이어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구조입니다. 반복적인 플레이를 강요하는 구조인 만큼, 일부 플레이어에게는 금방 싫증이 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미니 게임들이 주인공 아냐의 초능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소소한 웃음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카드 게임에서 다음 패를 미리 보거나, 피구에서 초능력을 이용해 자동으로 회피하는 기능 등은 아냐 특유의 표정 연출과 합해지며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또, 이런 초능력은 매 판 사용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기에 밸런스 측면도 고려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아주 실망할지도?
의상 대부분은 게임플 플레이하며 해금되는 여러 나들이 장소와 마찬가지로, 상점에서 서서히 해금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의상들은 도전 과제를 수행해 얻는 티켓을 이용해 뽑는 것도 있죠. 이제는 흔하디 흔한 확률형 아이템 방식이지만, 그 티켓을 인게임 과제를 수행해 얻는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합니다.
게다가 의상 아이템은 단순히 자기만족 수단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일부 의상들은 약간의 버프 효과를 가지고 있기도 해서, 각종 활동에서 얻는 재화를 좀 더 많이 얻을 수도 있습니다. 버프 효과를 위해 원하지 않는 선글라스나 모자를 써야만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만,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는 경우는 없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원작 '스파이 패밀리'를 좋아해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에게는 꽤나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작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데는 모르긴 몰라도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아냐'의 역할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냐'는 이 게임을 구성하는 알파이자, 오메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뭔가 더 심오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실망이 클 것입니다. 아냐의 나들이, 그리고 그림일기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어른들의 사정이 들어간 스파이 스릴러 측면의 이야기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쟁 게임이나 박진감 넘치는 전투 위주 게임에서 잠시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평온한 순간을 보내길 바라는 게이머라면, 그 중에 최근에 스파이 패밀리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작품에서 얼마동안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꽤나 반복적인 게임플레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