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고유가와 공급 부족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견고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차보다 낮은 진입 장벽과 높은 경제성을 바탕으로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현지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8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 4월 미국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한 총 15만9216대를 판매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4만1239대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57.8% 급증했다. 중동 분쟁 여파로 유가가 오르면서 연비 효율이 높은 하이브리드 모델에 수요가 집중된 결과다.

현대차 투싼 하이브리드현대차는 제네시스를 포함해 8만6513대를 판매했으며 기아는 7만2703대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전체 판매는 소폭 줄었으나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친환경차 비중이 전체의 30.4%까지 올라오며 수익성을 방어했다. 특히 하이브리드차는 매장에 입고된 후 판매되기까지 59일이 걸려 가솔린차 75일이나 전기차 114일보다 훨씬 빠른 회전율을 보였다.
시장 조사 기관 카탈리스트 IQ에 따르면 하이브리드차는 현재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의 16.3%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점유율인 8.6%보다 약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연료비 부담을 느낀 미국 소비자들이 전기차의 불편함 대신 하이브리드의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은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현지 생산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조지아주 소재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애초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기획됐으나 최근 하이브리드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었다. 기아 또한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에서 '올 뉴 텔루라이드' 하이브리드 양산을 시작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런 전략은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1분기 미국 시장에서 관세 비용으로만 총 1조6150억원을 지출했다. 현대차가 8600억원, 기아가 7550억원을 부담하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0.8%, 26.7%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

기아 텔루라이드 하이브리드수익성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단가가 높고 수요가 확실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실적 방어의 핵심 축으로 세웠다. 실제로 지난달 현대차 하이브리드 판매는 2만1713대로 47.7% 늘었고 기아는 1만9526대로 70% 폭증했다. 관세 부담 속에서도 고부가가치 차량인 하이브리드 판매가 늘어난 점은 고무적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차종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지난달 기아의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1만9305대로 전년 대비 12.6% 증가했지만 현대차는 1만5560대에 그치며 12.7% 감소했다. 현대차는 하반기 출시 예정인 '더 뉴 그랜저' 하이브리드 등 신차 효과를 통해 내수 시장 반등을 노리고 있다.
미국 현지 딜러망의 재고 수준도 하이브리드 차량을 중심으로 타이트하게 유지되고 있다. 5월 미국 신차 인벤토리는 285만대로 줄어들었으며 하이브리드 모델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전기차 전환이 상대적으로 더딘 시장"이라며 "연료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하이브리드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팰리세이드와 텔루라이드 등 현지 인기 SUV 모델의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지속해서 강화할 방침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구간을 하이브리드라는 징검다리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지 소비자 니즈에 맞춘 맞춤형 라인업을 확대해 관세 파고를 넘겠다"고 밝혔다.
/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현대차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