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퇴직금 반을 시댁에 보냈는데.." 10년 뒤 시아버지 유언장에 적힌 내 이름

남편의 퇴직금은 부부가 평생 함께 일군 노후의 마지막 버팀목입니다. 그 돈의 절반을 시댁에 보낸다는 것은 며느리에게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그 결정 뒤에는 수많은 망설임과 서운함이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올해 예순다섯 살인 장미숙 씨는 10년 전 남편의 퇴직금 절반을 시댁에 보냈습니다. 시동생들은 그 돈에 대해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공개된 유언장에서, 미숙 씨는 뜻밖에도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장남에게 시집온 며느리

미숙 씨는 스물다섯에 4형제 중 장남인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시댁은 충남 논산의 농가였습니다. 시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엄한 분이었고, 시어머니는 미숙 씨가 시집온 지 5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때부터 미숙 씨는 사실상 시댁의 안주인 노릇을 했습니다. 명절이면 20인분이 넘는 음식을 혼자 장만했고, 시동생들의 결혼 준비도 미숙 씨의 몫이었습니다. 남편은 서울의 철도 회사에 다녀 주말에만 시골에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시아버지는 그런 미숙 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밥상을 받으면 묵묵히 수저를 들 뿐이었습니다. 미숙 씨는 서운했지만 원래 그런 분이려니 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한번은 미숙 씨가 몸살로 앓아누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시아버지가 서툰 손으로 죽을 끓이고 계셨습니다. 시아버지는 죽 그릇을 미숙 씨 머리맡에 놓고 말없이 나가셨습니다. 미숙 씨는 그날 처음으로 시아버지의 투박한 마음을 엿본 것 같았습니다.

10년 전의 결정

10년 전 남편이 30년 다닌 회사를 퇴직하며 퇴직금 2억 원을 받았습니다. 부부는 그 돈으로 작은 상가를 사서 노후를 준비하자고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시골에 큰 수해가 났습니다. 시아버지의 집과 논이 물에 잠겨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시동생들은 모두 형편이 어렵다며 손을 놓았습니다. 둘째는 사업이 어렵다고 했고, 셋째와 막내는 아이들 학비 때문에 여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다 미숙 씨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여보, 퇴직금 절반을 아버지 집 다시 짓는 데 쓰면 안 되겠소?"미숙 씨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돈은 부부의 노후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물에 잠긴 집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시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미숙 씨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1억 원이 시아버지의 새집을 짓는 데 들어갔습니다.돈을 보내던 날 미숙 씨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1억 원이 빠져나간 통장은 갑자기 너무 가벼워 보였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손을 잡고 "내가 평생 갚을게" 하고 말했습니다. 미숙 씨는 남편의 손을 마주 잡으며 애써 웃었습니다. "갚긴 뭘 갚아요. 아버님 집인데."

고맙다는 말 없는 시동생들

새집이 완공되던 날 시동생들도 모두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형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둘째 시동생은 "형님이 장남인데 당연히 하셔야죠"라며 웃었습니다. 미숙 씨는 그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그 뒤로 미숙 씨 부부는 상가 대신 작은 아파트에서 연금으로 빠듯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습니다. 미숙 씨는 괜찮다며 웃었지만 가끔은 그날의 결정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시아버지는 새집에서 10년을 더 사셨습니다. 그동안 미숙 씨는 한 달에 두 번씩 시골에 내려가 시아버지의 반찬을 챙기고 빨래를 했습니다. 시동생들은 명절에나 잠깐 얼굴을 비쳤습니다. 시아버지는 여전히 고맙다는 말이 없었습니다.한번은 친구들 모임에서 누군가 퇴직금으로 상가를 샀다며 자랑했습니다. 미숙 씨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그 상가를 살 수 있었던 돈이 지금은 시골의 새집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미숙 씨는 시아버지가 따뜻한 집에서 지내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시아버지의 마지막

지난달 시아버지가 아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 4형제가 시골집에 모였습니다. 둘째 시동생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 집이랑 남은 논은 4형제가 똑같이 나누는 걸로 하죠. 요즘은 장남이라고 더 받는 시대가 아니잖아요."셋째와 막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미숙 씨는 부엌에서 그 말을 들으며 손이 떨려 왔습니다. 10년 전 그 집을 지은 돈이 누구 돈이었는지 시동생들은 이미 잊은 듯했습니다.그때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마을 이장인 어르신이 낡은 봉투 하나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자네 아버지가 생전에 나한테 맡겨 둔 거네. 장례 끝나고 형제들 모였을 때 열어 보라고 했지."막내 시동생의 아내는 미숙 씨를 힐끗 보며 덧붙였습니다. "형님네가 그동안 아버님 반찬 챙기신 건 고맙지만, 그건 장남 며느리니까 당연한 거잖아요." 미숙 씨는 들고 있던 행주를 꽉 쥐었습니다. 30년 동안의 수고가 한마디로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유언장에 적힌 이름

봉투 안에는 시아버지가 직접 쓰고 도장을 찍은 유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장 어르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유언장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 집과 집터는 큰며느리 장미숙에게 준다. 이 집은 큰며느리가 남편 퇴직금을 털어 지어 준 집이다. 내 자식들 중 누구도 이 집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시동생들의 얼굴이 하나둘 붉어졌습니다. 이장 어르신은 유언장의 다음 줄을 읽었습니다. "남은 논은 넷이 똑같이 나눠라. 다만 큰며느리가 30년 동안 이 집 안주인으로 고생한 것을 너희는 평생 잊지 마라. 나는 끝내 고맙다는 말을 못 하고 간다. 미숙아, 고맙다."미숙 씨는 부엌 문턱에 선 채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30년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고맙다는 말이 유언장 마지막 줄에 적혀 있었습니다. 시아버지는 말이 없었을 뿐, 며느리의 수고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셨던 것입니다.유언장 맨 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습니다. 10년 전, 새집이 완공되던 바로 그달이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새집에 들어가던 그때 이미 이 유언장을 써 두셨던 것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한 채 10년 동안 그 마음을 봉투 속에 담아 두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고개 숙인 시동생들

한참 뒤 둘째 시동생이 형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습니다. "형수님, 죄송합니다. 그때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저희가 너무했습니다." 셋째와 막내도 차례로 형수에게 사과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미숙 씨는 시아버지가 남긴 그 집을 팔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명절마다 4형제 가족이 모두 모이는 집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시동생들도 그 뜻에 기꺼이 따랐습니다. 이번 추석, 그 집 마당에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온 가족의 웃음소리가 가득했습니다.미숙 씨는 시아버지의 유언장을 액자에 넣어 거실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그 앞에 서서 혼잣말을 합니다. "아버님, 그 말씀 한마디 들으려고 30년을 기다렸나 봐요."얼마 뒤 둘째 시동생은 형님 부부에게 작은 봉투를 건넸습니다. 10년 전 형수가 보낸 퇴직금의 일부라도 형제들이 나눠 갚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미숙 씨는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시동생들의 진심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돈으로 미숙 씨 부부는 결혼 후 처음으로 둘만의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말이 없는 어른의 마음은 생전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숙 씨의 시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며느리의 30년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유언장에 남긴 채 떠난 시아버지의 마음은 시동생들의 무심함까지 바로잡아 주었습니다.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묵묵히 집안을 지켜 온 사람의 수고가 당연한 것으로 잊히지 않도록, 가족 모두가 한 번쯤 그 자리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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