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피할 순 없어도 늦출 수는 있다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가을은 '탈모의 계절'이다. 사람의 머리카락에는 생장 주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기(3~5년)-퇴행기(1개월)-휴지기(3개월)를 반복한다. 이 생장 주기에 따라 사람도 동물처럼 특정 계절에 '털갈이'하는 양상을 띤다. 동물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겨울철에 가장 많은 털이 나지만, 사람의 머리카락은 강한 자외선을 막기 위해 봄철부터 많아지다가 가을철부터 줄어든다.
성장기가 점점 짧아져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특정 부위의 모발이 빠지는 것이 탈모다. 빗질할 때나 머리 감을 때 머리카락이 가을 낙엽처럼 수북이 빠지면 심리적 고통이 크다. 혼자 고민한다고 탈모는 해결되지 않는다.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탈모가 악화될 뿐이다. 의료인의 도움을 받는 편이 현명하다. 탈모를 피할 방법은 없지만 원인을 밝혀 약물·시술 등으로 진행을 늦출 수는 있다. 권오상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탈모는 하나의 노화 현상이다. 노화를 멈출 수 없듯 탈모도 완벽히 치료하기 어렵다. 다만 일찍 관리하면 개선할 수 있다. 모발이 가늘어지고 많이 빠진다고 느끼면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머리카락은 매일 100가닥 미만으로 빠진다. 그 이상이라면 탈모를 의심해야 한다. 앞머리나 정수리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앞머리 헤어라인이 점점 올라가는 것도 탈모 초기 증상이다. 또 모낭은 작아지고 피지샘이 커지면서 기름기가 늘어나는데, 머리가 평소보다 부드러워져 빗질이 손쉬워지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생기면 피부과를 찾을 필요가 있다. 권오상 교수는 "병원에서는 모발 확대경으로 두피 상태와 모발의 밀도·굵기 등을 살피면서 탈모를 진단한다. 또 50~60가닥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당겼을 때 5개(10%) 이상 빠지는지도 살펴본다. 두피 조직검사를 통해 모낭의 상태도 확인한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약물치료, 심하면 모발이식
탈모 원인별로 치료법이 다르다. 원인에 따라 탈모는 4가지(유전성 탈모증·휴지기 탈모증·원형 탈모증·흉터형성 탈모증)로 구분한다. 전체 탈모의 85~90%는 유전성 탈모증이다. 유전자·노화·남성호르몬(DHT 호르몬)이 주요 원인이다. 서구화된 식습관, 무리한 다이어트, 흡연 등 환경적 요인도 있다. 비만도 탈모와 관련이 있는데, 지방층에서 분비되는 염증 유발 물질이 탈모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상 교수는 "유전성 탈모증은 완치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탈모 속도와 정도를 늦추는 경구용 치료제(피나스테리드 등)가 있다. DHT 호르몬 생성에 필요한 효소(5-알파 환원효소)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탈모가 조금 더 진행된 상태라면 바르는 약(미녹시딜 등)으로 치료한다. 모낭을 자극해 모발의 성장기 진입을 촉진하는 방법이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이런 약물치료는 약 6개월간 지속해야 유의미한 효과를 느낄 수 있고, 평생 치료해야 그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탈모가 다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들 의약품에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의사와 상담 후 사용해야 한다. 피나스테리드는 성욕 감퇴, 성기능 저하, 전립선암 위험 등의 부작용이 있다. 특히 이 약품은 피부로 흡수돼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치므로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미녹시딜은 가려움증, 얼굴과 손에 발모 현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많이 진행된 탈모는 자가 모발이식으로 치료한다. 뒤쪽 머리카락을 채취해 앞머리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뒤쪽 두피는 이마나 정수리보다 상대적으로 남성호르몬 수용체 발현이 적어 탈모가 심해도 모발이 잘 유지된다. 모발이식 후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남은 모발을 보호하는 것이 최선이다.
유전성 탈모의 원인 가운데 유전자와 노화는 어쩔 도리가 없지만 DHT 호르몬을 조금이나마 억제할 방법은 있다. 여러 연구를 통해 그 호르몬을 억제하는 성분들이 밝혀졌는데 그중 하나가 라이코펜이다. 이 성분은 토마토·당근·망고·수박 등에 풍부하다. 토마토는 날것보다 조리한 것이 라이코펜 흡수에 더 효과적이다. 아몬드·땅콩·피칸·호두 등 견과류에도 DHT 호르몬을 억제하는 물질(L-라이신)이 있다. 아연도 이 호르몬을 억제하는데, 케일과 시금치 같은 푸른잎채소에 풍부하다. 녹차의 항산화 성분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DHT 호르몬으로 전환하는 것을 억제하거나 더디게 만든다. 가공된 녹차 음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녹차잎을 통째로 우려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홍차나 커피의 카페인 성분은 DHT 호르몬을 줄인다. 그러나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호르몬 불균형과 탈수증을 유발해 머리카락 성장을 방해하는 역효과가 난다.
휴지기 탈모증에는 원인 해소가 우선
이처럼 DHT 호르몬을 억제하는 음식을 먹거나 마실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설탕이나 인공감미료를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분은 탈모에 좋은 성분의 효과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또 당분은 염증을 유발하며 DHT 호르몬 양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단맛이 많이 나지 않더라도 설탕이 많은 가공식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탈모 중에 휴지기 탈모증은 한마디로 일시적인 현상이다. 모낭이 휴식하는 휴지기에 스트레스·영양 결핍·출산 등의 원인으로 탈모가 진행된다. 여성의 경우는 임신 기간에 증가했던 여성호르몬이 분만 후 감소하면서 탈모가 생길 수 있다. 이런 탈모는 12개월쯤 지나면 거의 회복된다. 이처럼 휴지기 탈모증은 원인만 제거하면 수개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따라서 해당 원인을 찾는 것이 휴지기 탈모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도 영구적이지 않다. 스트레스를 낮추면 머리카락도 정상으로 자란다. 명상·요가·산책 등으로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선 일기 쓰기도 좋은 방법이다.
원형 탈모증은 자가면역질환이 원인이다. 면역체계가 모낭을 공격해 탈모가 진행된다. 따라서 탈모 자체보다 자가면역질환 치료가 우선 필요하다. 자가면역질환은 국소 스테로이드나 면역 요법을 통해 치료한다. 흉터형성 탈모증은 외상·화상·감염 등의 원인으로 생긴다. 모낭까지 영구적으로 파괴되므로 모발 재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가 모발이식이 주요 치료법이다.
평소 탈모를 악화시키는 요인을 피하면 탈모증을 완화할 수 있다. 핵심은 머리카락과 두피에 자극을 주는 행동을 피하는 생활습관이다. 가령 헤어드라이어와 고데기 사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 모발을 이루는 단백질은 열에 약한데, 고열을 가하면 머리카락이 잘 끊어지고 약해져 탈모의 원인이 된다. 이런 기구를 사용하다 자칫 두피에 화상을 입으면 모낭이 영구적으로 손상되기도 한다. 탈모 방지를 위해서는 머리카락을 자연 건조시키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머리 너무 꽉 묵어도 탈모 진행
파마와 염색은 화학적으로 머리카락 내부 구조까지 변형시킨다. 머리카락이 약해지고 건조해지고 잘 끊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탈모가 진행된다. 특히 염색은 4~6주 간격보다 더 자주 하면 좋지 않다. 염색한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리고 파마까지 하면서 탈모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머리를 감을 때 사용하는 샴푸는 순한 것이 좋다. 순한 샴푸에는 주로 이세치오네이트·글루코시드 성분이 들어있다.
두피에 자극을 주는 행동은 머리를 꽉 묶는 습관이다. 머리 땋기나 포니테일 등을 할 때 고무줄이나 머리핀으로 머리카락을 너무 세게 묶으면 두피에 상당한 자극이 발생한다. 머리카락을 너무 세게 당겨 묶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생긴 탈모를 견인성 탈모라고 한다. 견인성 탈모는 원인이 확실하므로 100% 예방할 수 있다. 또 머리카락을 꼬거나 세계 문지르거나 잡아당기는 행동도 두피를 상하게 한다. 머리를 너무 세게 빗는 행동도 피할 습관 중 하나다.
적정 체중 관리도 건강한 모발과 두피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비만과 급격한 체중감량(다이어트) 모두 탈모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또 수면이 부족하거나 불규칙하면 휴지기 탈모증이 발생하므로 충분하고 규칙적인 수면 습관이 필요하다. 모근의 25%는 수분이므로 하루 2리터 정도 물을 마시는 습관은 모근에 수분을 공급해 탈모 예방에 좋다. 권오상 교수는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생활습관, 금연, 스트레스 관리 등을 꾸준히 실천하면 탈모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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