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돌아가신 건 새벽녘이었다. 며칠째 병원 복도에서 쪽잠을 자며 곁을 지켰는데,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드릴 틈도 없이 끝나버렸다. 울 겨를도 없이 장례식장부터 정해야 했고, 그 와중에 시댁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결혼하고 오 년 동안 시댁과 크게 부딪힌 적은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나서도 방금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 정리되지 않았다.

장례식 날 시댁은 여행을 떠났다
시어머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미 예약한 유럽 여행이라 취소가 안 된다고 했다. 남편도 같이 간다고 했다. 시아버지도 가시느냐고 묻자, 평생 소원이던 여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를 끊고 병원 로비 의자에 주저앉았다. 결혼할 때 내 부모님도 친부모처럼 모시겠다던 남편의 약속이 떠올랐다.
장례는 혼자 치렀다. 엄마는 평생 아끼며 살았고 사귄 사람도 많지 않아서, 조문객은 이웃 몇 분과 반찬가게 단골들이 전부였다. 첫날 밤 영정 앞에 앉아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에펠탑 앞에서 시댁 식구들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시어머니는 잘 놀다 올 테니 너무 상심 말고 힘내라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발인 날 아침, 양복 입은 남자가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엄마가 생전에 준비해 둔 서류가 있다며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반찬가게 하나로 사신 분이 무슨 일로 변호사를 찾았을까 싶었다.

유산 얘기에 시댁이 달라졌다
장례를 마치고 빈집에서 봉투를 열었다. 등기부와 건물 열쇠, 그리고 엄마 글씨로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강남역 근처 15층 건물이 엄마 이름으로 되어 있었고, 편지에는 너에게 물려줄 게 있어서 평생 아끼며 살았다고 적혀 있었다. 마지막 줄은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었다. 건물은 천억 원쯤 된다고 했다. 다만 이 년 동안 팔지 말 것, 세입자를 보호할 것, 수익의 삼 할은 진심으로 사회에 쓸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 얘기가 시댁에 전해지자 사람들이 달라졌다. 유럽 여행지에서 화상통화를 걸어온 시어머니는 갑자기 다정해졌고, 시아버지와 시동생은 서로 관리를 돕겠다고 나섰다. 정작 장례식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귀국한 뒤에는 조건이 낡았다며 소송으로 없애자고 재촉했고,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우편물에서 개발사의 매입 제안서를 발견했다. 이천억 원에 사겠다는 내용이었고, 계약서 하단에는 중개 수수료 백억 원을 받을 사람으로 남편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남편은 숨기지 않았다. 죽은 사람 말보다 산 사람이 먼저 아니냐고 했다. 내가 거절하자 개발사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고, 남편은 법정에서 내가 충격으로 정신이 불안정하다고 진술했다.

세입자들이 법정에서 증언했다
재판을 앞두고 건물을 한 층씩 돌아봤다. 3층 소아과 원장님은 코로나 때 엄마가 여섯 달 동안 월세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7층 벤처회사 대표는 보증금을 깎아 주고 투자자까지 소개받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엄마의 책상 서랍에는 세입자들의 안부와 기쁜 일이 빼곡히 적힌 공책이 있었다. 엄마에게 이 건물은 돈벌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꿈을 지키는 자리였다.
재판에서 세입자들이 스스로 증인석에 섰다. 엄마가 어떻게 이십 년 동안 건물을 지켰는지 하나씩 이야기했고, 그 공책도 증거로 제출됐다. 판사는 개발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유언은 재산을 나누는 문서이기 전에 삶의 방식을 전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겼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했다.

이 년이 지나 매각 제한이 풀렸을 때 건물값은 삼천억 원까지 올라 있었다. 매일 매입 제안이 왔지만 팔지 않았다. 1층에는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무료 키즈카페를 열었고, 옥상에서는 세입자들과 텃밭을 가꾼다. 언론에 이름이 나가자 시댁 식구들이 하나둘 찾아와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전남편은 다시 시작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용서는 하겠지만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답했다. 저녁이면 엄마가 쓰던 15층 사무실에서 창마다 켜지는 불빛을 내려다본다. 휴대전화에는 에펠탑 앞에서 웃던 그날의 사진이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