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에 익숙해진 시대에 경종 울리는 '어프렌티스'[노컷 리뷰]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4. 10. 2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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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외화 '어프렌티스'(감독 알리 아바시)
외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누리픽쳐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사회는 양극단으로로 분열됐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졌다. 미국을 지금처럼 퇴보시킨 원인으로 지목받는 도널드 트럼프는 어떻게 지금의 '괴물'이 됐을까. 트럼프가 '쓰레기'라 부른 영화 '어프렌티스'는 괴물의 기원을 추적하며 현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세입자들에게 밀린 집세를 받으러 다니는 뉴욕 부동산 업자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세바스찬 스탠)는 어느 날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변호하며 정치 브로커로 활동하는 변호사 로이 콘(제레미 스트롱)을 만나게 된다.

성공을 향한 강한 야망을 품은 도널드 트럼프는 불법 수사와 협박, 사기, 선동으로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 불리는 로이 콘을 스승으로 삼고 더욱 악랄한 괴물로 거듭난다.

영화 '어프렌티스'는 이란 출신 덴마크 감독이자 '경계선'과 '성스러운 거미'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알리 아바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우리에게 트럼프라는 인물은 피격 직후 미국의 상징인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들어 올리며 "싸우자"라고 외치는 모습이나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던 모습으로 익숙할지 모른다.

외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누리픽쳐스 제공


전 미국 대통령이자 현 미국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5월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직후 트럼프 측으로부터 "불태워야 할 쓰레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단지 성형수술, 첫 번째 부인 이바나 트럼프 강간, 로이 콘과의 관계를 그려서만이 아니다. 바로 패배를 모르는 성공 가도의 신화가 아닌 '괴물의 탄생'이라는 감추고 싶은 진실이 담겼기 때문이다.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영화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필름 영화의 화면을 구현하고 핸드헬드를 사용하며 시대 분위기와 현실감을 부여하며 관객들을 영화로 이끈다.

'어프렌티스'는 '수습생' 또는 '도제'라는 의미처럼 악마는 어떤 모습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또 다른 악마를 만드는지에 관한 이야기한다.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로이 콘은 트럼프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법칙을 전수해 '제2의 로이 콘'으로 빚어낸다.

로이 콘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공격, 공격, 또 공격하라.'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모든 것을 부인하라.' '절대로 패배를 인정하지 마라'. 트럼프는 로이 콘의 법칙을 받아들여 자신의 DNA에 융합하고 진화시켜 자신만의 법칙으로 내재화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의 탄생이 바로 여기 있었다.

외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누리픽쳐스 제공


로이 콘과 트럼프의 만남부터 배움의 모든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미국이 가리고 싶은 그림자다. 차별과 혐오, 배제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는 모습은 어떻게 미국이 이들을 거쳐 트럼프에 이르러 최악으로 분열하게 됐는지 보여준다. 특히 트럼프가 2016년 대선 출마 당시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뒤에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공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던, 어느 정도는 인간적인 면을 남겨놨던 트럼프는 로이 콘을 만나 그의 손바닥 위에서 조련을 받으며 점차 '현재'의 트럼프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트럼프가 로이 콘의 도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트럼프 안에 로이 콘과 같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로이 콘은 그 가능성을 꽃 피웠을 뿐이다.

그렇게 온갖 불법과 차별, 위선 속에서 트럼프는 실패를 모르는, 정확히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제2의 로이 콘'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대로 트럼프는 결국 로이 콘의 손바닥을 뒤집고 '도널드 트럼프'라는 '괴물'로 재탄생한다.

사실 '어프렌티스'는 트럼프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익히 알려진 트럼프의 모습과 그의 과거를 영화적으로 재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렇기에 익숙해진 위협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데 이 영화의 의미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의 엔딩은 여러모로 유의미한 동시에 섬뜩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눈동자에 담긴 미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우리는 이미 목도했기 때문이다. 엔딩에 이르른 '어프렌티스'는 트럼프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익숙해진 분열을 그 시작점부터 다시금 되새기며 경계하라고 경종을 울린다. 그렇기에 미국을 떠나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영화다.

외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누리픽쳐스 제공


다만 아쉬운 건, 빤한 전기 영화의 스타일에서 벗어났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전기 영화처럼 전개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이점을 살리며 트럼프를 아는 관객은 물론 모르는 관객도 쉽게 빠져들어 볼 수 있도록 영리하게 연출했다.

또한 '이란 출신 덴마크 감독'이라는 알리 아바시 감독의 위치는 조금 더 객관적이면서도 과감하게 트럼프의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세바스찬 스탠과 제레미 스트롱의 열연은 '어프렌티스'를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배우는 단순히 트럼프와 로이 콘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두 괴물이 가진 본질적인 모습을 포착해 냈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 스크린 속 두 배우가 아닌 트럼프와 로이 콘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프렌티스'를 본 이후 로이 콘이 왜 '악마의 변호사'라 불리는지 그의 실체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로이 콘-악마의 변호사'(감독 맷 타이노어)를 추천한다.

122분 상영, 10월 23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외화 '어프렌티스' 메인 포스터. ㈜누리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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