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nside The Park] KBSN Sports 권성욱 캐스터

조회수 2023. 12. 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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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매개체

사람마다 순간을 기억하는 매개체는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그 순간의 공기를, 누군가는 향기를, 누군가는 색깔을 통해 제각각의 기억을 만든다. 하지만 순간의 강렬했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기억들에 자리를 내주고, 어느새 머릿속에는 작게 쪼개진 몇몇 조각만이 남는다. 하지만 작은 조각만이 남았을지라도, 매개체가 있기에 기억의 가장 소중한 부분은 그 형태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매년 생겨나는 백 마흔네 번의 기억. 그걸 모두 머릿속에 남기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기억이 탄생하는 순간에 귀를 울리는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추억을 선물한다. 또한 그 목소리는 오래도록 그 기억을 소중한 형태로 남길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Mingyu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한테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11월 13일 인터뷰)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SN 야구 캐스터 권성욱입니다. 한 10년 전? 그쯤에 인터뷰한 기억이 나는데, 다시 기회가 와서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14호(2012년 5월 호) 이후로 무려 11년 만의 인터뷰예요.
이미 한 번 했기 때문에 또 불러주실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커요. 또 그때랑 상황이 다른 것도 있고, 캐스터로서의 생각이나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겼으니까 11년 전에 한 얘기와 오늘 드릴 얘기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주 재밌는 인터뷰가 될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스스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까요?
2013시즌 중에 다른 부서로 간 적이 있어요. 중간에 종종 중계를 맡은 적이 있긴 했지만, 2019년에 돌아오기까지 6년 정도는 완전히 다른 업무를 맡았어요.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다른 부서로 가기 전보다는 더 나이가 든 상태에서 캐스터를 맡았거든요.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예전과는 다른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젠 젊은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요새도 부담감을 느끼곤 해요

11년 전 인터뷰에서 방송 외적으로 본인이 “차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는데, 이 답변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마찬가지죠. 지금도 그리 재밌는 사람은 아니에요.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MBTI가 ‘인프제(INFJ)’거든요. 내향적이면서도 계획적이고, 감성적이기도 한 사람인데, 되게 재미없는 사람이고 낯도 많이 가려요. 대신 INFJ의 특징 중 하나가 친한 사람이랑 있을 때 자신의 것을 보여주는 편이라, 지인이랑 있을 땐 소주도 한잔하고 재밌는 얘기도 하고 그래요.

#새 바람이 불어온

바쁘게 달려온 2023시즌도 끝이 다가왔네요. 시즌이 끝난 후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지금 포스트 시즌이 진행 중인데, 케이블에서 진행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빼면 나머지는 다 지상파에서 생중계를 진행해요. 하지만 실시간은 아니더라도 녹화 중계는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회사원이다 보니 경기가 없는 날은 여러 가지 사무 업무도 진행하고요, 중계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리 못 한 일을 처리하거나 시즌 중에 나온 각종 기록도 정리해요. 그 외에도 당장 이번 주부터 여자 농구 시즌이 시작되거든요. 물론 메인으로 중계하는 후배가 있지만, 저도 함께 중계를 맡다 보니 바쁘게 개막을 준비 중이에요. 지금이 야구와 농구 시즌이 교환되고 맞물리는 시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캐스터의 시선에서 바라본 올해 야구는 어땠나요?
진짜 대단한 시즌이었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우승을 차지한 LG 트윈스도 그렇고,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KT 위즈도 마찬가지예요. 돌이켜보면 두 팀 모두 기대치에 비하면 시즌 출발이 썩 좋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까지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것 자체도 두 감독님을 포함해서 선수들, 프런트 직원분들, 그리고 팬들까지 대단한 1년을 보냈다고 말하고 싶어요. 거기다 NC 다이노스의 선전도 인상적이었어요. 개막 전에 NC를 5강권으로 예측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해설위원 중에서도 그나마 장성호 위원 정도를 제외하면 다들 NC의 호성적을 예측하지 못했는데, 그 예상을 깨고 NC가 보여준 경기력은 놀라웠어요. 그것도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만든 성과라는 게 더 대단했고요. 어떻게 보면 2023년은 한국 야구의 세대가 바뀌어 간다는 인상을 받은 한 해였어요. 젊은 선수들을 필두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야구의 흐름이나 유행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고 느꼈어요. 팬들 역시 젊은 층의 유입이 증가했고요. 그래서 올해가 한국 야구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중계를 들을 때마다 여전한 딕션과 샤우팅이 인상적입니다. 변함없이 기량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캐스터이자 방송하는 사람의 의무죠. 기량을 유지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본분이고, 오히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잘해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그냥 유지할 순 없겠죠. 공부하는 것밖엔 없겠더라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캐스터들도 등장하고, 그중에서도 개성 있고 좋은 캐릭터를 가진 후배들도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저와는 또 다른 시각에서 중계하는 게 느껴져요. 비슷한 상황을 설명하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단어에서 차이가 나타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요즘 젊은 팬들은 어떤 중계를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예전과 달라진 야구의 트렌드에 대해서도 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아요.
방송인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매 순간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지금 만난 20대 팬들과 30대 팬들은 세월이 지나 40대가 되고, 50대가 되겠지만, 그때도 여전히 20대 팬들과 30대 팬들은 존재할 거예요. 저 역시 처음 중계를 시작했을 때와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전 연령대의 시청자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한다는 거죠. 그건 방송하는 사람이 갖는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최대한 전 연령대의 사람들이 고루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그게 저희의 숙제이면서도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중계 합을 맞추는 해설위원마다 스타일이 다 다른데, 올해 KBSN 해설위원들과의 호흡은 어땠다고 느끼나요?
총 일곱 분의 해설위원님이 있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좋은 해설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소위 ‘케미’를 만드는 건 전적으로 캐스터의 역할이라고 봐요. 누군가와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걸 떠나서 모든 해설위원이 편안한 환경에서 양질의 해설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건 옆에 있는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가장 합이 잘 맞는다고 느끼는 베스트 멤버가 있긴 해요. 그렇지만 중요한 건 각 해설위원님의 특징과 개성, 또 그분들의 철학이 드러날 수 있도록 옆에서 받쳐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던 대로 잠깐 마이크를 내려놓고 편성팀으로 간 적이 있었죠. 당시 캐스터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팬분들도 있었는데, 그때 팀을 옮긴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회사에서 제게 원하는 바가 있었어요. 당시에 편성팀도 스포츠 채널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부서에 있는 편성팀으로 가서 팀장도 하고 국장까지 했어요. 그때 회사 측에서는 기존의 스포츠 캐스터의 역할 말고도, 드라마 채널이나 예능 채널 쪽에서의 간부로서 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주길 원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승진한 거였죠. 그리고 아나운서팀을 떠나 완전히 다른 부서에서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재충전 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10년 넘게 잡은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변 선배들한테 조언도 구하러 다녔고요. 개인적으로 캐스터라는 직업이 천직이라고 느꼈지만, 조직에서 추구하는 업무 방향성이 워낙 명확했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했어요. 승진하고 간부도 되고, 임원이 되는 것도 좋지만, 방송 일을 하는 게 저한테는 더 중요했으니까요. 거기다 편성팀에서 얼마나 있을지 기간도 정하지 않은 상황이라, 언제 아나운서팀으로 돌아올지도 몰랐거든요. 근데 선배들이 “방송을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나중에 다시 방송 일을 하게 되더라도 분명 도움이 될 거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지금 일을 그만두는 게 아쉬울 수도 있지만, 언젠가 그 경험이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는 조언이었죠. 그래서 고민 끝에 회사의 제안을 수락했어요.

그러다 2019시즌을 앞두고 캐스터로서의 전격 복귀를 알렸어요. 그 계기가 뭐였나요?
쉽게 말해서 편성팀에서 맡은 역할이 끝났어요. 방송사 조직이 일반 회사처럼 차장, 부장, 과장 순으로 차례대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특정한 직책을 그때그때 주는 시스템이거든요. 이를테면 어느 부서 국장을 하더라도 그 직위가 평생 지속되는 게 아니고, 한 3년 정도 업무를 수행하면 그 자리에서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다시 다른 일을 맡을 기회가 주어지는 거죠. 제 경우엔 기존 업무를 지속하는 게 의미가 없겠다는 판단도 들었고, 회사에서도 충분히 할 만큼 했으니 하고 싶은 일을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연히 예전에 했던 캐스터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정했고, 그렇게 복귀하게 된 거죠.

선배들의 조언대로 새로운 부서에서의 경험이 아나운서팀 복귀 후에 도움이 됐나요?
큰 도움이 됐죠. 캐스터의 일과를 보면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커요. 여름엔 야구 시즌을 치르고, 겨울엔 회사원으로서의 업무를 보거나 겨울 스포츠 중계를 맡고, 다시 여름이 오면 또 야구 시즌을 치르고. 이렇게 다를 게 없는 일과를 보내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한정적으로 변할 수 있고,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한다 해도 자신의 시야를 넓히기가 쉽지 않아요. 근데 편성팀으로 떠나 있던 6년 동안 시각이 꽤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원래 3년 정도 있을 줄 알았던 거에 비하면 좀 길어지긴 했는데요, (웃음) 굉장히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친한 해설위원님들이랑 종종 이런 얘기를 하곤 해요. “야구 중계 시청자가 야구만 보는 사람들은 아니다”라는 거예요. 드라마도 보고, 코미디도 보고, 다른 문화생활도 즐기는 사람들이 야구도 본다는 얘기죠. 그 사람들은 유행하는 게 무엇인지를 다 아는데, 정작 해설하는 사람들이 그 흐름을 놓쳐선 안 되잖아요. 캐스터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꼭 야구가 아니어도 최근에 읽은 책이나 영화, 드라마, 예능 모든 게 해설로 녹아들 수가 있겠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중계 자체에 몰두하는 현장에서 잠시 떠나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중계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늘의 참견은 무엇입니까

21시즌부터 야구 토크 프로그램 ‘야구의 참견(이하 야참)’의 진행도 맡고 있죠. 경기를 중계할 때랑은 다른 느낌일 듯한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다른가요?
어떻게 흘러갈지 구성이 정해진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죠. 중계는 기본적인 구성이라는 게 없잖아요. 경기 흐름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순도 100% 애드리브로 이끌어가야 하지만, 야참은 어느 정도 계획된 부분이 있죠. 매회 주제가 있고, 어느 대목에서 어떤 토크가 나올지 순서도 정해져 있으니까요. 물론 그 구성대로 프로그램이 온전히 흘러가진 않아요. 원래 ‘시나리오 A’대로 진행하려 했지만 정작 녹화 땐 ‘시나리오 B’대로 흘러갈 때도 있고, 그러다 다시 ‘시나리오 A’ 쪽으로 바뀌는 경우도 잦아요. 이럴 때 원활하게 진행하는 게 MC로서 역량이 필요한 순간이죠. 큰 틀에선 대본이 있지만, 각 패널의 생각이 늘 다르고, 예측이 힘들어요. 그래서 제 질문에 온전히 원하는 방향으로 답변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아요. 실제로 그런 적이 없기도 하고요. 그리고 너무 무난하게 진행된다는 건 그만큼 뻔한 질문을 던졌다는 의미니까, 오히려 지양하는 편이기도 해요. 어쨌든 중계만큼이나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프로그램의 구성이 존재하는 만큼 오히려 진행에 100% 자유도가 있진 않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더 어렵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녹화하면서 유독 ‘오늘 쉽지 않다’ 싶었던 회차가 있나요?
매번 그래요. 녹화하다 보면 60% 정도는 예상대로 가지만, 40%는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가 힘들어요. 어려웠던 회차를 뽑아보자면 올해 골든글러브랑 수비상 수상자를 예측해보는 에피소드인데, 재밌게도 이 주제는 너무 변수가 없어서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골든글러브는 한두 개 포지션 정도를 제외하면 답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수비상도요. MLB의 골드글러브 상(매년 각 포지션별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건데, 명확한 산정 근거가 있는 MLB에 비하면 KBO리그는 아직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뚜렷하게 없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서 진행해봤는데, 아직 다른 영역에 비해 수비 관련 지표는 발달이 덜 된 상황이라 기준치를 정하기가 어려웠어요.

평소에 제일 학구열이 높다고 느껴지는 패널은 누구인가요?
다들 높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데, 야참의 기획 의도가 해설위원분들의 시각이나 철학을 시청자들에게 노출해보자는 거였어요. 중계 때 위원님들의 철학을 드러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잖아요. 경기 중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에 맞는 이야기만을 하는 과정에서 멘트가 다소 제한적으로 나오게 돼요.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보니, 깊은 공부가 없으면 양질의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겠죠. 그래서 다들 준비 정말 열심히 하세요.

패널 중에 해설위원, 기자 등 다양한 보직의 사람들이 있는데, 녹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패널마다 야구를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는 편인가요?
아무래도 차이가 느껴지죠. 당초 패널을 그렇게 구상한 이유도 한 주제를 바라보더라도 야구인이 보는 시각과 기자가 보는 시각이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어요. 저희 해설위원분들은 야구에서의 숫자나 통계에 꽤 정통한 편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기자들이 가진 숫자에 대한 분석 능력과 세이버메트릭스에 접근하는 통찰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죠. 당장 김도환 기자의 경우는 그쪽 분야에 더 민감하고 센 편이에요.

#오프닝 멘트 장인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오프닝 멘트 얘기를 빼놓을 수 없죠. 인상적인 오프닝 멘트를 만드는 비결이 있을까요?
리그를 향한 관심 덕분인 것 같아요. 캐스터, 그중에서도 야구 캐스터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는 야구가 가진 역사성과 서사성을 잃지 않는 거예요. 저처럼 오래 일한 사람이 그런 서사성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지금까지의 경력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야구는 전 세대가 좋아하는 스포츠잖아요. 10대부터 거의 70대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야구팬이 되게 많아요. 70대 팬이 10년 전, 20년 전에 본 야구가 남긴 서사는 지금 10대, 20대 친구들이 즐기는 야구에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걸 기억하고 보존하는 게 제 몫이라고 봐요. 그러려면 지금의 팀이 옛날엔 어떤 과거를 겪었고, 그 이후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이런 서사성을 잃지 않아야겠죠. 그렇게 서사성을 강조하면서 중계를 준비하다 보니 그런 오프닝까지 만들게 됐어요. 막 거창한 과정에서 시작됐다기보단 야구와 리그에 대한 제 관심이 조금 표현된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최근에 유독 심혈을 기울인 멘트가 있었나요?
올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7월 6일 LG와 KT의 경기에서 했던 오프닝이요. 그때 오지환 선수와 김상수 선수의 서사를 넣어서 준비했는데, 준비 과정도 재밌었고 그 문구들이 경기 상황이랑도 잘 맞아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올해 만족스러운 오프닝 중 하나였어요.

2021년 10월 7일 NC와 삼성의 경기에서의 오프닝이 화제였어요. 당시 경기가 공교롭게도 수능을 한 달 앞둔 상황이라, 수험생에게 전하는 문구는 아닐까 하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 부분도 고려한 건 맞아요. 근데 이 멘트가 화제가 된 게 ‘미미미누’라는 유명한 유튜버분이 있는데, 그분이 공부하는 학생들을 찾아가는 콘텐츠를 찍곤 해요. 거기서 회계사 자격증 공부하시는 분이 본인이 공부에 대한 의욕이 떨어질 때 보는 영상이라고 하면서 제 오프닝이 들어간 영상을 소개해주는 거예요. 저도 그 영상을 후배가 보내줘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영상을 계기로 유명해졌고 하더라고요. (그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무슨 기분이었나요?) 부끄러웠죠.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긴 했지만 그렇게 막 잘 쓴 글은 아니거든요. 전문적으로 글 쓰는 분이 보면 약간 민망할 정도의 글인데, 그런 식으로 화제가 돼서 창피한 것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 구절로 힘을 얻을 분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혹시 오늘의 인터뷰를 소개하는 짧은 멘트를 살짝 부탁해도 될까요?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자리. 난 1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일 거로 생각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과연 난 10년 후에 다시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남은 4이닝, 그리고 10년 후

캐스터님이 생각하는 스포츠 캐스터의 최대 매력은 뭔가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DM을 보낸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수행평가를 하는데, 캐스터에 대해 탐구하는 과제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여러 질문을 보내주셨는데, 그때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어요. 사실 야구 캐스터가 힘든 직업이에요. 되기도 힘들지만, 된다 해도 잘하기 힘든 일이거든요. 물론 진짜로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 만족도 또한 높겠죠. 어떻게 보면 야구라는 종목과 그 결이 비슷해요. 야구가 주는 짜릿함도 있지만, 그만큼 상처도 크잖아요. 캐스터도 마찬가지예요. 때론 상처도 받지만, 반대로 승부의 끝에서 만족도도 크고 재미도 있고. 그런 매력이 있어요.

스포츠 캐스터가 역사 속의 증인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함께 한 현장 중에 가장 뭉클하게 남은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동안 뭉클하다고 느낀 적이 꽤 있는데, 유독 올 시즌 장면들이 생각나네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기억에 남아요. 경기 자체가 짜릿한 면도 있었지만, 뭉클한 감정도 올라온 경기였어요. 우선 두산은 한 경기 만에 포스트 시즌을 마치긴 했지만, 힘든 시즌을 겪으면서 가을야구까지 올라온 저력이 인상적이었고, NC는 서호철 선수가 부상을 딛고 나와서 활약한 게 강렬했어요. 복귀가 쉽지 않겠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부상도 심했는데, 돌아와서 그런 중요한 경기에서 한 방을 날리는 장면은 진짜 짜릿했어요. 거기다 서호철 선수는 2군 생활도 오래 했을뿐더러, 인터뷰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올해 NC가 만든 젊은 선수들의 육성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 더 뭉클했어요.

여러 상황을 중계했을 텐데, 아직 보지 못한 기록 중에서 꼭 중계해보고 싶은 게 있을까요?
퍼펙트게임이죠. 올해도 퍼펙트게임에 도전한 선수가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6회까지 퍼펙트가 유지됐을 거예요. 그때 박용택 위원님이랑 함께 중계했을 텐데, “잘하면 퍼펙트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마지막에 깨지더라고요. 아마 그런 대기록이 나오는 경기를 중계하는 건 모든 캐스터의 꿈이 아닐까 해요. 또 그거 말고도 한 가지는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의 우승 장면이요. 올해는 LG가 그 숙원을 풀었는데, 그런 경기 역시 캐스터라면 누구나 중계해보고 싶은 경기예요.

올해 미국, 일본, 대만에 이어 한국에서도 20년 이상 우승하지 못한 팀의 숙원이 이뤄졌는데, 그 현장을 전달하는 증인이 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요?
그 감정을 직접 느끼진 않았지만, 저도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 뭉클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 팬들이 얼마나 기다려왔고, 또 ‘결국 이렇게 올라설 거였는데 그동안 어떻게 이렇게 오랜 길을 돌아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 것 같아요. 캐스터인 저조차도 이런데, 선수들이나 팬분들은 더하시겠죠.

지금까지 캐스터 일을 해오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팬분들이 좋아해 주실 때가 보람차죠. 경기 재밌게 봤다거나 중계 잘 들었다고 하실 때가 있고요, 또 야참에 대해서도 댓글에서 ‘다른 시각에서 야구를 볼 수 있게 돼서 좋았다’라거나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시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반응이 보이면 뿌듯해요.

본인을 보고 캐스터를 꿈꾸는 젊은 사람들이 생긴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기분이 좋으면서도 쉽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는 생각에 측은한 감정도 들 것 같습니다. (그런 후배들에게 조언이나 응원의 한마디를 보내본다면요?) 요즘 SNS를 보면 성공에 관한 구절이나 얘기가 많아요. 그중에서 제일 공감된 건 “그냥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해봐라”라는 거였어요. 만약 본인이 진짜 재능이 있다고 믿고,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면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고 최소 10년은 꾸준히 해보길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10년을 해서 뭔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한 10년 동안은 꼭 야구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목에 걸쳐서 후회 없이, 꾸준히 해봤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인생을 야구 경기에 비유해봤을 때, 지금 몇 회 정도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 5회가 지나고 클리닝 타임이 끝난 정도 아닐까요? (경기 상황은 어떤가요?) (고민) 팽팽한 투수전? (남은 4이닝은 어떻게 전개가 될 것으로 보이나요?) 저희 팀 불펜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불펜은 준비가 잘 되고 있나요?) 지금 불펜 투수들이 열심히 몸 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캐스터님을 응원하는 팬분들한테 인사하면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10년 만에 다시 인터뷰하게 돼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절 인터뷰하겠다고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지난 10년 동안 ‘내가 야구 캐스터로서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기분도 들고요, 앞으로 또 10년 후에 다시 <더그아웃 매거진>과 인터뷰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스포츠 캐스터로서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52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52호 (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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