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세입자 실종 사태
‘빌라왕 전세 사기’ 이후 문의조차 사라졌을 정도로 빌라 전세 시장이 충격을 받고 있다.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빌라 임대차 시장을 점검했다.
◇빌라 거래 위축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의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전세 거래는 1만4962건으로, 작년 1분기(2만2386건)와 비교해 33.1% 급감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의 전세 거래량이 3.2% 감소하는 데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빌라 전세 거래량이 위축된 것은 최근 잇따른 전세 사기 사건으로 세입자들이 빌라 전세를 꺼리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 사기 피해가 집중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등은 ‘세입자 실종’ 상태다. 화곡동에서 전용면적 29㎡ 빌라를 임대하는 김모(68)씨는 작년 12월 전세 만기로 세입자가 나간 뒤 4개월째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셋값을 이전보다 4000만원 낮춰 지난달 겨우 세입자를 찾고 계약서까지 작성했지만 취소당했다.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 동네 모든 전셋집이 전세 사기에 연루된 집인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라며 “전세 손님이 끊겨 선량한 임대인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빌라는 과거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 집값 급등 때 2030 세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매매 및 전·월세 시세가 급격히 치솟았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급락하고 전세사기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충격을 크게 받고 있다.
◇보증금 집단 미반환 우려

요즘 세입자들은 웬만하면 빌라는 피하자는 분위기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를 보면 서울 은평구에서 방 2개짜리 빌라를 임대하고 있는 김모(64)씨는 계약 기간이 한 달 남짓 남은 세입자의 보증금 2억2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작년 10월 새 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집을 내놨지만, 계약은 커녕 집을 보러 오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김씨는 당장 나가겠다는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없어서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빌라 가격이 워낙 떨어진 탓에 주택담보대출마저 거절당했다. 김씨는 “빌라를 팔려고 해도 워낙 헐값이라 그마저 어렵다”며 “괜히 투자 잘못했다가 큰 고통만 지게 생겼다”고 했다.
보증금을 낮추거나 인테리어를 교체해도 세입자가 안 구해진다는 집주인들의 사연도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한 임대인은 “500만원짜리 최신‘빌트인 가전’을 설치해 주겠다는 옵션까지 내걸었는데,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현 세입자로부터 ‘사기꾼’ 의심을 받는 느낌마저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범한 집주인’마저도 어쩔 수 없이 불량 집주인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빌라 전셋값이 정점을 찍은 2021년 하반기에 계약한 거래 만기가 차례로 돌아오고 있어서, 올 하반기 대규모 보증금 부실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빌라 전세 거래 절벽’이 오래가면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부동산 시장 한 전문가는 “빌라 세입자는 물론 집주인 역시 생계를 위해 임대 사업을 하는 서민층이 대부분”이라며 “세입자를 끝내 못 구하면 집주인은 파산하고, 빌라가 경매로 헐값에 팔려 세입자도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전세 사기를 피하려면 세입자 스스로 주변 시세를 확인하는 등 발품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이나 인근 다른 중개사무소를 통해 주변의 전세 시세를 따져보고,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임대인의 신원이 불확실하다면 계약을 피하는 것이다. 가급적 전세보다는 보증금이 작은 반전세나 월세로 하는 게 좋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 계약 전 주변 시세나 권리 관계를 꼼꼼히 따져보고 불안한 부분이 있으면 보증금을 낮추거나 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게 좋다”고 했다.
/박유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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