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1년, 책만 팔아서 월세를 낼 수 있는 서점이 되었습니다 [사유와 자유의 시간]

지난 2월 ‘책을 팔아서 월세를 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썼었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의 비율이 4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점점 더 읽지 않고, 사지 않는 시대에, 동네서점은 인터넷 서점과 비교하여 경제적인 우위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배송의 편리함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15평 남짓한 작은 서점이 책만 판매한다는 전략은 시대착오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초보 사장의 결연한 의지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 물정 모르는 객기로 보일 수도 있는 ‘책만 팔아서 월세를 내겠다’라는 선택은 현재 어떤 결과가 되었을까?

사진 출처 : 크레타 인스타그램

한 달 매출 300만원에서 2,000만원이 되기까지

1월 242권 3,419,460원 / 2월 347권 5,331,481원 / 3월 392권 5,588,534원 / 4월 708권 11,213,090원 / 5월 747권 11,033,996원 / 6월 1,352권 21,679,009원

상반기(1~6월)에 책만 팔아서 올린 매출의 결과다. 크레타를 한 달 동안 운영하기 위한 고정비는 월세와 관리비 등을 포함하면 약 150만원이 필요하다. 도서 판매 마진율(약 25%)을 기준으로 하면 도서 판매 매출이 600만원 정도 발생했을 때 해당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2024년 기준 최저월급은 주휴수당을 포함해서 약 206만원으로 확정되었는데, 다른 부업 없이 책방지기로만 살아가면서 최저월급을 챙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1,400만원의 도서 판매 매출이 필요하다.

‘책만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서점을 목표로 한다면 많이 부족하지만, ‘월세’라는 기준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런 큰 폭의 매출 상승을 끌어낼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니 크게 두 가지가 떠올랐다.

<아침에 듣는 경남 CEO 북클럽> 문요한 작가 초청 북토크 (사진 출처 : 크레타)

첫 번째. 서점은 책을 파는 곳 ‘장사가 우선이다.’

작년에는 서점 운영과 동시에 크고 작은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서점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었다. 지원사업도, 서점 운영도 내세울 만한 성과를 만들어 내진 못한 것이다.

올해라고 크게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연초에는 다양한 지원사업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지원사업 없이 지속이 불가능하다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올해는 지원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장 1월부터 보조금 통장이 아니라 법인 통장에서 내야 하는 월세가 큰 부담이 되었고, 창업 초기 3년까지 상대적으로 합격이 쉬운 지원사업이 많은 만큼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과 크레타에 조금 더 당당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처럼 골목 상권을 살리겠다며 어설프게 로컬 크리에이터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책’이 핵심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들만 기획하고, 책을 판매하는 ‘영업장’으로서 크레타를 제대로 가꾸기로 했다.

믿을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계획된 다른 사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충동적이라면 충동적일 수도 있다. 내심 속은 후련했지만, 두세 달 뒤에 몰래 지원사업을 기웃거리고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배수의 진’을 친 것 같은 기세가 통한 것인지 다양한 곳에서 협업 요청이 이어졌다. 대기업과 함께 사내 독서모임을 런칭했고, 여러 기관과 독서모임 리더 양성 아카데미를 운영했으며, 지역 대학 산학협력단과 함께 경남권 CEO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찬 북클럽을 기획해서 운영 중이다. 지원사업과 병행했다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일들이다.

크레타 입고 도서 (사진 출처 : 크레타)

두 번째. ‘책 잘 파는 서점인척하기’

우연히 개그맨 이경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갓경규’에 출연한 ‘피식대학’편을 시청하게 되었다. ‘피식대학은 웬 영어를 그렇게 해?’라는 이경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매우 인상 깊었다.

우연히 전 세계에 있는 유튜버들이 교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외국인이면 자신들을 모를 거니 월드 스타인 척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이 정말 자신들을 월드 스타로 믿고 대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김에 월드 클래스(월클)인 척을 하는 콘텐츠를 기획했고, 자꾸 월드 스타, 월드 스타 하니 진짜 월드 스타가 출연을 하는 콘텐츠로 성장을 했다고 전했다.

나는 그 말을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책을 잘 파는 서점’처럼 보이려고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장 많이 팔 수는 없으니 책을 많이 사들였다. 책이 매일 입고 되고, 많이 사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면 ‘많이 파는 서점’처럼 보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다행히도 책은 유통기한이 있는 상품이 아니라 공간의 여유만 있다면 얼마든지 재고로 쌓아둘 수 있었다. 매일 몇 종, 몇 권의 책이 입고되었는지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쌓여만 가는 재고를 보면서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3개월은 그렇게 해보자 다짐했다.

새롭게 추가 된 큐레이션 코너 (사진 출처 : 크레타)

쌓여 가던 재고는 다행히도 비어있던 책장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던 홀 공간에는 테이블을 놓으면서 그림책과 시리즈물에 대한 코너도 추가했다. 재방문한 손님들에게도 이런 변화가 눈에 띄었는지 ‘이젠 진짜 책으로 가득 채워졌네요. 새로운 책이 많아져서 또 방문한 이유가 생겼어요.’라며 처음 온 서점인 것처럼 긴 시간 책을 살펴보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책을 사는 이가 늘어났다. 재방문했을 때 읽을만한 새로운 책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단골을 만드는 조건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 잘 파는 서점인 척’을 했더니 정말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관계를 맺고 싶은 출판사들과 직거래를 하기 시작했더니 ‘크레타는 책 잘 파는 곳’이라는 소문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게다가 방문하는 손님들이 판매기록 경신을 이번 달에도 이어가야 한다며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열심히 담아 두었던 책을 크레타로 주문하거나, ‘여기가 책 추천도 잘 해주고, 책도 많이 판다면서요?’라며 부산여행 중에 들린 손님이 작년보다 배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많이 팔려서 많이 팔리는 ‘베스트 셀러의 작동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모습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은유 작가 초청 <해방의 밤> 북토크 (사진 출처 : 크레타)

지난 6개월 동안 작가와의 만남을 18회 진행하고, 14개의 독서모임을 운영한 노력도 컸다. 김영하 작가, 손웅정 감독의 사인회 같은 빅 이벤트도 연이어 개최되었으며, 6월에는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 납품 입찰에 선정되는 운도 크게 이바지했다. 당장 7월 매출은 6월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월세는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올해가 끝나기 전, 책만 팔아서 월세뿐만 아니라 책방지기의 인건비까지 만들어 내는 서점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려면 여기서 무엇을 더해야 할까? 상반기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한 기분 좋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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