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중동의 작은 거인’ 카타르의 외교력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에 예사롭지 않은 나라가 하나 있다. ‘중동의 중재자’로 불리는 카타르다. 지정학적 불안을 정교한 외교전략으로 극복한 나라, 분쟁의 무대마다 중재자로 등장하는 나라가 바로 카타르다. 특히 가자전쟁에서 보여준 카타르의 중재력은 이 나라가 분쟁의 조정자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외교국가로 도약했음을 보여준다.
◆작은 나라의 큰 외교
카타르는 인구 300만명, 면적은 경기도보다 조금 크다. 카타르 국적을 가진 본토인은 약 30만명으로,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0% 이상은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작은 나라이지만 중동 외교의 심장을 쥐고 있는 나라다. 이슬람 세력과 서방 사이의 미묘한 회색지대를 오가며 ‘균형 외교’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최근 가자지구 휴전과 인질 교환 협상에서도 카타르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수도 도하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사무소가 있어 관련 협상은 도하에서 열릴 수밖에 없었다. 하마스와 대화하고, 워싱턴과도 협력하는 이런 ‘이중 구조’야말로 카타르 외교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카타르의 중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카타르는 갈등의 틈새를 기회로 바꾸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미국과 이란이 맞붙을 때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대립할 때마다 카타르는 그 사이에서 외교의 실타래를 풀어왔다. 지난 2020년 미국과 탈레반 간 미군 철군 합의 역시 카타르의 중재를 거쳐 성사됐다.
◆카타르 외교의 세 가지 축
카타르의 외교적 존재감은 단순한 부국(富國)의 여유가 아니다. 균형 감각, 경제·정보력, 그리고 지정학적 숙명, 이 세 가지 축이 카타르 외교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첫째는 균형 감각이다. 카타르는 수니파가 주류로,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이다. 하지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도 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타르는 튀르키예, 하마스, 탈레반, 헤즈볼라, 그리고 각국의 비정부조직(NGO)과도 연결망을 갖고 있다.
게다가 카타르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이기도 하다. 도하 외곽에는 알 우데이드 미 공군기지가 있다. 중동 최대 미군기지다. 이 곳에는 1만명 이상의 미군 및 영국 호주 등 연합군 병력이 공동 주둔하고 있다. 이 기지는 카타르 정부가 직접 지은 시설이다. 1996년 카타르가 약 10억달러를 들여 완공했고,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이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카타르는 이념과 진영, 종파와 체제를 초월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외교 허브다. 수니와 시아, 서방과 이슬람, 국가와 비국가 세력 사이를 잇는 유연한 네트워크 덕분에 카타르는 ‘중동의 외교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둘째는 경제력과 정보력이다. 카타르는 천연가스와 석유의 왕국이다. 특히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3위를 자랑한다.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1위 국가로, 전 세계 시장의 약 20%를 공급하고 있다.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만달러를 웃돈다. 카타르 국부펀드(QIA)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대형 국부펀드다.
돈은 곧 외교력이다. 카타르는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정교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이후 카타르 정부가 미국의 로비스트, 컨설턴트, 홍보 전문가에게 지출한 비용은 공식적으로 1200만달러(약 171억원)를 넘는다. 로비스트 중에는 팸 본디 미국 법무장관도 포함돼 있다. ‘돈으로 움직이는 외교’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카타르는 아랍권 최대 언론 ‘알 자지라’(Al Jazeera)를 통해 중동 여론을 실시간으로 주도하고 있다. 서방 언론과는 다른 시각에서 중동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알 자지라는 카타르의 중요한 외교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돈과 정보, 이 두 가지 힘을 동시에 쥔 나라는 중동에서 카타르가 유일하다. 자본은 외교의 연료가 되고, 정보는 전략의 무기가 되어 카타르를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로 만들었다.
셋째는 지정학이다. 카타르 외교는 지정학적 숙명에서 출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두 패권국 사이에 끼인 이 나라는 안보적으로는 늘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갈등의 경계선 위에 서 있기 때문에, 평화를 지키는 것이 곧 생존이다. 그래서 카타르는 언제나 분쟁의 완충지대이자 조정자를 자임했다. ‘모두와 친구가 되고,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는다’는 신념이 카타르 외교의 핵심이다.
◆한국이 걸어가야 할 외교의 길
강대국 사이에서 스스로의 생존 공간을 만들어낸 카타르의 외교는 ‘작은 나라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군사력이 아닌 외교의 언어로 국제 질서를 조율하며, 어느 편에도 완전히 기울지 않는 절묘한 균형 감각으로 중동의 핵심 중재자가 됐다. 중동이라는 복잡한 장기판에서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나라’라는 독보적 위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 한국 역시 미·중·일·러가 맞물린 복잡한 외교 지형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카타르의 사례처럼, 이념보다 실리, 감정보다 균형을 중시하는 전략적 외교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격동의 세계 질서 속에서 흔들림 없이 걸어가야 할 길일 것이다.
박영서 기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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