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업부 내부 문건…“원전 독자 수출, 판결 전 명확한 판단 어려워”

옥기원 기자 2024. 10. 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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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원전’인 에이피알(APR)1400 노형이 첫 적용된 울산 울주군의 신고리 3·4호기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식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한국형 원전’(APR1400)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과거 내부 검토에서 “기술자립 논란이 있어 독자 수출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전력공사(한전)·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한국형 원전이 “기술자립을 이뤄 독자 수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정부는 이를 유보적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폴란드·체코 원전 입찰 과정에서 지식재산권을 주장하며 한국 쪽을 대상으로 소송·진정 등을 제기한 상태다.

6일 한겨레 입수 문건과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산업부는 2017년 말 ‘에이피알1400 노형의 독자 수출 가능성 검토’라는 제목의 비공개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한전·한수원은 원자로냉각재펌프(RCP)·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원전설계핵심코드 등 그간 국산화 못했던 3대 ‘미자립’ 핵심기술을 확보한 덕에 앞으로 독자적인 원전 수출이 가능하다 주장했는데,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미국 원천기술과 동일해 기술자립이라 볼 수 없고 독자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에 산업부가 한국형 원전 수출 관련 법적 쟁점을 검토하기 위해 양쪽 의견을 모두 들어 이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형 원전인 에이피알1400이 컨버스천엔지니어링(CE, 웨스팅하우스가 2000년에 인수) 기술을 토대로 개발했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에이피알1400 개발경과’를 보면, 컨버스천엔지니어링 원전기술의 이전을 통해 1995년에 오피알(OPR)1000(APR1400 전신)을 개발한 뒤, 2001년엔 컨버스천엔지니어링 원자로 설계를 참조해 에이피알1400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또 국내에서 냉각재펌프(2010), 원전계측제어시스템(2013), 설계핵심코드(2017) 등 “2010년 이후 3대 미자립 핵심기술이 개발”됐다는 사실도 짚었다.

이어 이것이 ‘기술 미자립’일 경우 “미국의 원천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미국 원자력법 및 연방규정(10CFR810)에 의해 (에이피알1400 독자 수출에) 미국의 허가가 필요”할 것이고, ‘기술 자립’에 해당한다면 “미국의 수출통제 없이 모든 국가에 수출 가능”할 것이라 정리했다. 산업부는 이 과정에서 수출 사업자인 한전과 한수원, 수출 규제기관인 원자력통제기술원 등의 찬반 입장을 모두 청취했다.

최종 ‘검토 의견’으론 “에이피알1400이 미국 원천기술과 설계특성이 동일해 기술자립 논란이 있고 국제적 분쟁이 있을 경우 판결 전까지 (독자 수출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어렵다”고 밝혔다. 논란 자체를 인정하고 ‘독자 수출 가능’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던 것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에이피알1400 노형의 독자 수출 가능성 검토’ 보고서의 주요 내용 갈무리

한편 보고서에는 그간 한전·한수원 등이 원전 수출 때 원천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에 보장해온 ‘보상 조건’도 담겼다. 한국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기술 도용을 문제삼았는데, 그 해결 방안으로 한전·한수원 등은 웨스팅하우스와 2010~2020년 기간으로 사업협력협정(BCA)을 맺었다. 협정의 내용에는 “컨버스천엔지니어링 기술이 적용된 한국기술 등에 대한 수출통제”가 포함되었으며, 원전 수출 등 “해외시장에서 웨스팅하우스 공급범위”를 “원전계측제어시스템·냉각재펌프 100%, 핵연료제조 50% 등”으로 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0년 협정 만료 뒤 양쪽은 새로운 협정 체결을 논의했으나 보상 범위에 대한 의견차가 컸고, 이후 지식재산권 분쟁이 불거졌다.

원자로 설계 전문가인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체코 원전 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산업부 장관까지 미국에 날아가 지식재산권 문제를 논의한 건 원전을 독자적으로 수출할 정도의 기술자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또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 없이 수출 실적에만 매달려 ‘지식재산권 문제는 없다’고 치부해온 태도가 되레 원전 수출에서 우리나라 쪽을 더 불리하게 만든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는 “보고서 존재 사실을 확인해주기 어렵고,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중재 중인 사항이라 언급을 안하는 게 원칙”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한전·한수원 역시 “웨스팅하우스와 법적 분쟁 중이고, 사업협정의 경우 양사 간 비밀유지 조항이 있다”며 관련 답변을 피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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