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연휴를 맞아 넷플릭스가 공개한 [도적: 칼의 소리]는 1920년대 간도를 배경으로 한 ‘조선 웨스턴’ 장르물이다. 말을 타고 장총을 든 주인공들의 액션으로 채운 드라마라니,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보다 장소와 시기를 특정하고 우리 역사를 배경에 적극적으로 가져오면서 활극의 쾌감과 비극의 슬픔을 동시에 전한다.

[도적: 칼의 소리]속 간도는 “중국의 땅, 일본의 돈, 조선의 사람”이 모인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일본군 출신인 이윤(김남길)은 죽기 위해 간도를 찾아왔고, 이곳에서 마적에게 약탈당하는 조선인 마을을 목격한다. 이윤은 이들뿐 아니라 간도에서 일본군과 마적에 시달리는 조선인들을 지키기 위해 도적단을 꾸린다. 도적단이 자리 잡고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1920년, 독립군이 군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간도선 철도부설금을 탈취할 거라는 소문이 퍼진다. 도적단뿐 아니라 일본군, 마적, 일본 경찰까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 아수라장 속에서, 이윤은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희신(서현), 지독한 인연으로 얽힌 조선군 일본인 소좌 이광일(이현욱), 의뢰를 받고 자신을 죽여야 하는 언년이(이호정) 등과 만난다.
드라마는 1950~70년대 고전 영화 장르인 ‘만주 웨스턴’에 [놈놈놈]의 스타일을 가미했다. 무법천지 벌판 한가운데 자리한 큰 마을, 그곳의 중심에 있는 술집에서 벌어지는 숱한 싸움, 말타고 총쏘며 사람을 죽이는 인물 등 웨스턴에서 볼 만한 것들을 충실히 옮겨놓았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죽을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기는 피가 난무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과정 등 장르에 기대할 만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남녀 주인공이 함께 여행하며 감정을 쌓아가는 로맨스 요소나 주인공과 평생을 대립하는 빌런의 존재감도 있다.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낼 만한 건 다 갖추고 있다.
다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서사와 캐릭터를 정립하는 과정을 견뎌야만 한다. 하지만 이를 그냥 넘길 순 없는데, 노비 큰놈이가 일본군 이윤이 되고, 간도로 가서 도적단을 결성하는 이야기가 1900년대 초 조선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905년 갑오개혁, 1909년 남한대토벌 등 역사 수업에서 배운 굵직한 사건들은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립군이 일본군 상대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도 지나가듯 언급되는데, 이는 앞으로 간도의 조선인들에게 닥칠 큰 비극을 예고한다. 그래서일까? 이윤을 비롯해 어딘가 조금은 이상한 놈들의 총싸움, 칼싸움은 그저 경쾌하지만은 않고, 슬픔이 진하게 묻어있다.
이렇게 [도적: 칼의 소리]는 묵직한 배경 서사 위에 장르의 장치를 더했다. 이 결합이 어떤 부분에선 효과적이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은데, 가장 성공적인 부분은 액션 장면이다. 비주얼적으로 잔인한 장면도 있지만 ‘우리 편이 악인을 처단한다’라는 관점에서 주는 통쾌함도 크다. 또한 캐릭터의 개성과 관계의 변화를 크고 작은 액션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드라마 내내 대립하는 이윤과 언년이가 어느 순간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하는 장면에서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 결국 액션 장면의 연출과 배우들 연기가 장르 전형에 충실한 대본에 개성을 부여한 셈이다.

액션 장면뿐 아니라 드라마 전반적으로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는 정말 믿고 보는 배우 김남길뿐 아니라, 많은 배우들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이현욱은 이윤과는 평생 악연이 되었을 이광일의 찌질함, 비겁함, 무자비함과 희신을 향한 순애까지 다채로운 감정과 성격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호정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발견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을 하고 계략도 세우는 언년이를 정말 잘 소화한다. 감정 연기도 액션 연기도 모두 기억에 남는다.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란 아쉬움은 있지만, [도적: 칼의 소리]는 생소한 ‘조선 웨스턴’을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대규모 전투가 끝난 마지막회에도 이들의 서사는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마지막 장면으로 시즌 2를 예고한다. 만약 다음 시즌이 제작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특히 곧 이들에게 일본인이 간도의 조선 사람들을 학살하는 비극이 닥칠 것을 알기 때문에, 진짜 비극의 땅이 된 간도에서 이윤과 도적단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진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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