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수집 등도 ‘돈’…커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려 [안현덕의 LawStory]
증거 수집 등 입증까지 피해자 몫으로
급증한 檢미제사건 향후 경찰이 맡아
사건 지연에 변호사 비용까지 늘면서
범죄자 판 치는 세상 만들어질 수 있어

검사 출신 A변호사 사무실에 최근 30대 남성이 찾아왔다. 해당 남성은 “성추행 혐의로 억울하게 고소를 당했다”며 무죄를 입증해 달라고 의뢰했다. 증거로는 한 건물의 폐쇄회로(CC)TV 자료 2건을 제시했다. 이는 해당 남성이 형사사건 전문인 A 변호사를 찾아오기 전에 다른 변호사에게 400만원을 주고 확보한 것이었다.
A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업무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들도 유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있다”며 “이들이 변호사들에게 의뢰하는 부분이 기존 재판 대응에서 증거 수집, 합의 등까지 확대되면서 (형사 사건으로 인한) 비용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헀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 이후 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형사·사법 대응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미국식 형사·사법 체계의 도입으로 변호사들이 맡을 형사상 역할이 확대되면서 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법적 비용도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형사·사법 체계의 변화→경찰 업무량 급증→변호사 업무 확대→국민의 법적 대응 비용 급증’을 막을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이달 중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개소를 위한 준비단 출범 등 본격 활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사의 보완수사권 존폐 여부도 조만간 결정된다.
정부가 중수청·공소청 개청을 위한 준비 작업에 본격 착수하는 셈이지만, 여전히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의 출범과 함께 검사의 보완수사권마저 폐지될 경우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변호사 수임료 등 법적 대응 부담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수사 종결권 확보로 경찰의 업무는 크게 늘었다. 이는 수사 지연, 경찰의 소극적 수사 대응이라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게다가 검찰에 쌓이고 있는 미제 사건들이 검찰청 폐지 이후 이첩·보완수사 요구 등 형태로 넘어오면서 향후 경찰의 ‘업무 과중’은 일상이 될 수 있어 향후 수사 환경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도 경찰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피해자나 가해자들에게 스스로 증거를 찾아와 제시하라는 요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검사의 보완 수사 요구 내용을 (경찰이) 그대로 (피해자 등이 선임한) 변호인에게 보여주고, 대응하라는 믿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만큼 형사 사건에서 변호사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들도 부담해야 하는 법적 비용이 늘고 있다”며 “말 그대로 ‘돈이 있으면 제대로 법적으로 대응하고, 없으면 피해를 봐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식 형사·사법 체계가 국내에 본격 도입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보완수사권 폐지 시에는 공소청 검사가 보완 수사를 요구한 사건을 앞서 수사한 경찰이 그대로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구조로 향후 확증편향성에 대한 부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 때도 제대로 된 변호사를 선임한 이들은 대응이 가능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수백억원의 사기 사건의 가해자는 비싼 수임료를 지불하고 사건 대처가 가능하다. 반면 재정적 피해로 한 푼이 아까운 사기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변호사 조력을 받지 못해 피해 회복 등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당 변호사는 이어 “검찰이 남긴 미제 사건은 대부분 경찰이 떠맡아야 하는 구조로 향후 사건 수사 지연이 일상화될 수 있다”며 “이는 범죄자들만 판을 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현덕 법조전문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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