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끝까지 저항"…집단행동 구체적 일정은 제시 안해(종합)
'투쟁' 외치면서도 "마지막 행동 위한 투표 일정, 정해진 바 없어"
2020년 증원반대 때 '총파업' 선언 후 집단휴원 나섰던 것과 달라
서울대 교수, 전공의들에 "'대리싸움' 부추기는 비겁한 사람에 넘어가면 안돼"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추진에 반대하는 의사단체 대표자들이 비상회의를 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한다면 전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집단행동 등 마지막 결정을 하기는 원치 않으며,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대화를 하자는 등 유화적 제스처도 취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전국 시도 의사회의 장 등이 참여하는 대표자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이와 같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전국 의과대학 정원 2천명 증원을 즉각 중단하라며, 이 같은 정책이 의학 교육을 부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의료비를 폭증시키고 미래세대에 이로 인한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증원과 함께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료 선택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옥죌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김택우 비대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정책 원점 재논의라는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14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주실 것이라 믿는다"며 "과거 2000년 의약분업 사태와 비견될 정도로 비상시국이며 의료계 전체가 똘똘 뭉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성민 대의원회 의장은 "정부가 국민 생명을 볼모로 여론을 등에 업고 의사들을 굴복시켜 말 잘 듣는 '의료노예'로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며 "의사들도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다. 정부는 우리를 범죄자 취급 말고 의료 정책을 논의하는 파트너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주수호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정부는 2천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하는데, 정부가 의사들의 말을 듣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대화를 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가 끝나고 비대위를 포함한 200여 명(경찰 추산)의 참가자들은 의협 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가두 행진했다.
김택우 위원장은 집회 중 발언에서 "(정부가) 화 난 아들·딸들을 달래주지 않고 회초리, 몽둥이를 든 다음 안 되니까 이제 구속 수감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며 "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있고 대화로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 잘못된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의협은 내달 3일 여의도에서 전국 의사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다. 집회 신고 인원은 2만명이다.
주수호 위원장은 "'마지막 싸움'이라는 현장 분위기가 있다"며 "정부랑 한번 제대로 이야기를 해보자는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이날 의협이 '엄포'를 놓았지만, 집단행동의 구체적 일정은 제시하지 않아 정부의 강경 대응에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주수호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집단행동 등 대응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는 집단행동이라고 말한 바 없고, 마지막 행동을 위한 투표 일정은 정해진 바 없다"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최소한의 인내로 병원을 지키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에는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 결정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를 타개하고자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 의협의 강경한 투쟁과 상당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당시 의협은 즉각 '총파업'을 선언하고 개원의들의 집단 휴원을 추진하면서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달라진 모습에 대해 일부에서는 2020년과 달리 윤석열 정부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부는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업무개시명령에 끝내 불응하면 '의사면허 정지·취소' 등을 단행한다는 강경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무부는 복지부에 검사 1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과거 의협 집행부로 근무하며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던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23일 SNS에 글을 올려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하면서 "의료계 선배들이 무언가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권 교수는 "의료계 선배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여러분 스스로 결정하고 피해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여러분이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을 부추기거나 격려했다면 그분들은 여러분을 앞세워 '대리 싸움'을 시키고 있는 비겁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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