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밥그릇에 루이비통 리드줄 … 펫 휴머니제이션의 이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가족 같은 마음에 전하는 사랑이 반려동물에게는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 반려견을 진짜 위하는 애정에서 출발한 것인지, 단순한 이기심에서 비롯한 것인지 곰곰이 되짚어보자.
2 돌체앤가바나 애견용 향수 '페페’
3 에르메스 방석
4 에르메스 밥그릇
5 몽클레르 패딩
최근 대만에서 한 여성이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기 위해 30만 대만달러(약 1280만 원)의 사례금을 내걸어 화제가 됐다. 반려견을 찾은 후 보호자는 뉴스 인터뷰에서 거액의 사례금을 건 이유에 대해 "반려견이 10년 이상 함께한 가족과 같아 그만한 비용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반려견을 자연스럽게 가족이라 부르는 이유는 깊은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에서 '유대감’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공통된 느낌을 뜻한다. 영어에서 반려견과 보호자의 유대감을 'bondage’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마치 접착제 '본드’처럼 두 존재가 정서적으로 강하게 결속돼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같은 정서적 유대감은 오늘날 '펫 휴머니제이션’ 문화로 발전됐다. 반려동물과 유대감을 쌓아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며, 단순히 동물과 보호자의 관계를 넘어 동반자로 인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인의 81.6%가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비반려인 중에서도 46.9%가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미국수의학협회의 '2022 반려동물 소유 및 인구 통계’ 조사에서도 반려인의 96%가 반려동물을 가족이라 생각하며, 그중 82%는 반려동물 생일파티를 열어준다고 답했다.
좋은 건 함께하고 싶어서
나아가 반려동물 의류가 럭셔리화되면서 '펫셔리(펫+럭셔리)’라는 새로운 트렌드도 나타났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 자리한 한 반려동물용품 편집 숍은 고급 소재를 활용한 프리미엄 의류를 판매하는데 월 매출이 1억5000만 원에 이른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도 반려동물 산업에 너나없이 뛰어들었다. 에르메스는 반려동물 전용 밥그릇과 방석을 선보였으며, 몽클레르는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커플 룩으로 입을 수 있는 패딩을 출시했다. 루이비통은 모노그램이 새겨진 펫 칼라와 리드줄을 판매한다. 럭셔리 브랜드는 대개 고객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이에 소비자는 자신이 입은 것과 같은 브랜드의 반려동물용품을 구매하면서 브랜드를 통한 자기과시나 정체성 확립을 반려동물에게 투영한다. 펫셔리 시장이 최근 반려동물 산업을 넘어 패션 산업에서도 빠르게 확산하는 배경이다.
반려동물 장례 산업 역시 최근 각광받는 '펫코노미(펫+이코노미)’의 하나다. 과거에는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 사체를 폐기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반려동물을 위해 장례식을 열고 운구차로 화장터까지 이동하는 등 인간 장례와 유사한 절차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지어 반려동물 부고 문자를 보내거나 장례 후 유골을 보관하는 등 장례 문화도 점차 다채로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던 상조 회사들이 반려동물 상조 서비스를 추가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사랑 혹은 이기심
지난 8월 돌체앤가바나가 대형 패션 브랜드 최초로 출시한 반려견용 향수 '페페’를 두고도 논란이 불거졌다. 수의사, 동물행동 전문가 등과 상의한 뒤 만들었다고 하지만 문제는 이 향수가 반려견을 괴롭게 한다는 반응이 나온 것. 영국 왕립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의 수석 과학 책임자인 앨리스 포터는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개는 후각을 이용해 주변 환경과 사람, 그 안에 있는 다른 동물과 소통하고 상호 작용한다"며 "향수나 스프레이 같은 강한 향이 나는 제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경제력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소비도 부작용으로 꼽힌다. 고가의 사료, 의류, 장신구 등에 대한 과도한 지출은 보호자에게 재정적 부담을 준다. 문제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질 경우 가장 먼저 외면받는 것은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반려동물 유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장기적 계획과 책임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단순히 유행에 따라 입양하는 경우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실제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4가구 중 1가구에 이를 정도로 반려동물 양육이 보편화하면서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나만 개 없어’라는 불평까지 들리곤 한다. 이로 인해 반려동물을 마치 필수템처럼 여기며 충동적으로 입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반려동물 양육은 생각보다 어렵고,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입양 전 충분한 준비와 인식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펫 숍에서 반려동물을 손쉽게 구매하거나 입양 센터에서 신중하지 않게 데려온 후, 경제적 부담이나 훈련 문제로 인해 죄책감 없이 유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유행이나 감정에 휩쓸려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행위가 유기 동물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이별 후 큰 심리적 충격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반려동물에 대한 과도한 정서적 의존은 인간관계의 유지와 발전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극심한 정서적 충격을 야기할 수 있다. 그 결과 우울증, 불안, 상실감 등이 심화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반려동물이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삶의 행복을 높여준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여러 연구와 논문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따라서 반려동물을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며 생활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여기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행위가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인지, 과도하지는 않은지 따져보고, 동물 복지와 인간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펫 휴머니제이션은 반려동물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긍정적인 문화다. 그러나 이를 실천할 때,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과잉 행위나 무책임한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관계는 상호 존중과 배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반려동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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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펫포레스트 루이비통 에르메스 몽클레르 페이스북
이경희 사단법인 반려동물지속가능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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