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흉기’ 책임 외면한, 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DTG 데이터 탐사보도③]
지난 11월1일 경남 하동군 국도 직전터널 출구에서 승용차와 25t 화물차가 정면충돌해 승용차 운전자가 숨지고 화물차 운전자가 다쳤다. 같은 날 남해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화물차 3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1t 트럭 운전자가 죽고 25t 트럭 운전자가 다쳤다. 11월7일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괴산나들목 인근에서 화물차 3대와 승용차 1대가 연쇄 추돌해 25t 화물차 운전자가 숨지고 다른 차량 운전자 3명이 다쳤다. 같은 날 충북 옥천군 군북면 국도에서 25t 화물차가 도로 옆 경사지로 추락해 운전자가 사망했다. 같은 날 익산-장수고속도로 익산분기점에서 대형 트레일러 트럭이 급커브 길에서 넘어져 운전자가 사망했다.
2022년 11월 첫 주에만 일어난 화물차 사고들이다. 매일 눈 뜨고 일어나면 이런 소식들이 ‘어제의 사건사고’ 단신 뉴스 속에 담겨 세상에 전해진다. 화물차 사고는 흔하다. 그리고 치명적이다. 지난 10년간 일어난 화물차 교통사고를 지도 위에 나타냈다(아래 〈그림 1〉 참조).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총 29만9446건이 발생했다. 그중 6436건이 사망사고다. 1년에 643.6건, 하루 1.8건꼴이다. 올해 상반기 전국 고속도로에서의 사망 교통사고 64.8%가 화물차에 의해 일어났다.
화물차 사고는 왜 발생할까? 21t 윙바디 트럭을 몰며 수도권 일대에서 화물운송을 하는 허재혁씨(29)는 지난 9월 어느 날 오전, 경기도 화성시 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앞차를 추돌했다. 허씨도 분명 빨간불 정지신호를 보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과 달리, 허씨는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 앞차를 들이받았을 때에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졸음운전이었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운 상태였다.
허씨는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 트럭 안에 머문다. “스스로를 혹사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 속에서 하루 3~5시간만 자며 600㎞ 이상을 주행한다. 허씨의 일은 ‘시간 엄수’가 가장 중요하다. 출발지에서 상차 지연이 있었든 없었든, 가는 길 도로가 막히든 아니든, 하차지에서 닦달하는 도착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끔 밤에 운전하다 보면 술 마신 것처럼 멍해진다. 형체의 실루엣만 보이거나,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이 갑자기 눈앞에 확 다가오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멈추어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러면 시간을 못 맞추니까요. 시간을 못 맞추면 화주나 운수업체에서 페널티를 줘요. 찍히면 다음 배차에서 불이익을 받고요. 그러니 달릴 수밖에요.”
화물차 기사 94% “졸음운전 경험 있다”
허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사IN〉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협조를 얻어 지난 10월13일부터 11월1일까지 화물차 기사 2만5000여 명(1433명 응답)에게 운행 형태와 휴식, 사고 경험 등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다수 운전자들이 심각한 과로와 휴식 부족을 호소했다(〈시사IN〉 제792호 ‘요일도 밤낮도 없는 24시간 365일의 노동’ 기사 참조). 설문조사에서 ‘화물운송 중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 경험이 있는지’도 물었다. 94%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41%는 ‘자주 있다’고 답했다(〈그림 2〉 참조). 응답자의 68.8%는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과 집중력 저하로 교통사고를 낼 뻔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8.2%는 실제 사고로 이어진 적이 있었다(〈그림 3〉 참조).
위험천만한 줄 알면서도 졸음운전을 감행하는 이유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물량을 소화하지 않으면 차후에 배차(일)를 주지 않음. 그래서 졸음을 감수하고 해야 함(연령대 20대·차종 12t 트럭)” “신체적으로 극한임에도 납품 시간에 맞춰 일을 하다 보니 졸음운전에 노출되는 경우가 있지만 차 할부 및 생계를 위해 갈 수밖에 없어서 걱정이 큼(40대·26t 트레일러)” “적은 운송비 때문에 한두 탕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워 한 탕이라도 더 하기 위해 과로, 과속, 과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50대·25t 탱크로리)” 등의 대답이 나왔다.
사고가 나면 화물차 기사들은 무엇을 잃게 될까? 14.5t 윙바디 트럭을 모는 화물차 기사 박종현씨(49)는 11월8일 현재 11주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트럭 할부금을 충당하려면 밤낮 중 한 번만 일해선 답이 안 나와” 주야간 ‘투잡’을 뛰던 중 사고가 났다. 상대편 차량 운전자 역시 과로하던 화물차 기사였다. 8월27일 새벽 1시쯤 상차지에서 짐을 싣고 나오던 도중, 어둠 속 국도변에 후미등을 끈 채 세워둔 18t 트럭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 트럭 운전자는 하차 순번을 기다리며 쪽잠을 자던 중이었다.
상대편 운전자는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박씨는 발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 찌그러진 차체에 몸이 끼인 채 119에 직접 구조 요청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 속 발뒤꿈치 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의사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 일에 복귀하기 힘들다고 했다. 몸도 상했지만 생계 수단도 잃었다. 2억원 넘게 주고 산 트럭 할부금을 매월 300만원씩 갚아가며 일하던 중이었다. 생계 수단이기도, 빚의 원천이기도 한 트럭에 4000만원 수리비 견적이 나왔다. 수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1억원 넘게 손해를 보고 트럭을 팔았다. 10년 이상 트럭 운전만 해온 박씨는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꾸릴지 뾰족한 수가 없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늘 교통사고를 두려워하며 일한다. 설문조사 응답자 98.6%가 “운행 중 교통사고가 걱정된다”라고 답했다. 67.5%는 “매우 걱정된다”라고 답했다(〈그림 4〉 참조).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많은 경우 자신의 몸이 상하는 문제보다 생계 문제를 들었다. “일을 못하게 될 경우 먹고사는 문제가 막막해짐(30대·25t 트랙터)” “사고가 나면 당장 생활을 할 수가 없고 빚만 남는 상황. 힘들지만 일을 해야 할부를 넣을 수 있는데 사고가 나면 그 할부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사고가 나면 먼저 가족을 생각해야 하는데 할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40대·25t 카고).”
본의 아니게 대형 참사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도 크다. “나의 생명과 재산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 두렵다(40대·덤프 트레일러)” “내 실수로 사고 나서 죽는다면 나 혼자 죽고 싶지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20대·12t 트럭)” “내가 다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다치는 문제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다(40대·21t 윙바디)” “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인생·가족 송두리째 바꾸는 큰 문제(40대·9.5t 윙바디)” “저는 위험물 운전자이기에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커서 항상 걱정된다(60대·17t 유조차)”.
한국 화물운송 노동시장의 독특한 구조
화물운송 노동시장은 사고가 나기 매우 쉬운 구조다. 화물차 기사 입장에서 안전 운행을 할 유인은 없고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할 동기는 차고 넘친다. 영업용 일반화물(5t 이상) 트럭의 92.5%는 지입제로 운행된다(2021년 화물운송 시장 동향 연간보고서). 해외 많은 국가에서는 화물차 운전자가 일반 회사원처럼 운송회사에 고용돼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며 회사 소유의 트럭을 몬다. 한국은 대부분의 화물차주들이 개인이 소유한 화물 차량을 통해 화주와 개별 운송계약을 맺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러 단계에서 ‘지입 넘버(영업 화물차 번호판)’ 판매나 일감 주선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중간 운수업체가 많은 것도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이다.
운전자들은 대부분 1억~2억원에 달하는 화물 차량과 영업용 번호판을 할부로 구매하면서 화물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매달 차 할부금과 지입료를 나눠 갚고 유류비·차량 유지비를 충당하면서 추가 수익까지 낼 만큼 운송 건수를 늘리지 않으면 바로 적자가 발생한다. 초기 매몰비용이 큰 화물차 기사들은 주로 대기업인 화주업체와 그 사이의 운수업체 앞에서 쉽게 ‘을’이 된다. 운송 단가를 후려치면 후려치는 대로, 도착시간을 무리하게 당기면 당기는 대로, 과적을 요구하면 요구하는 대로 ‘갑’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그만큼 수익이 깎인다. 안전 운행을 할수록 경제적으로 손해가 나는 구조다.
26t 트레일러를 모는 신 아무개씨는 운행 중 트럭에 결함이 있다는 걸 발견해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일단 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정비를 하다가 혹 시간이 지체돼 납품 일정을 맞추지 못해서 (화주·운수) 회사 측에서 불이익을 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5t 트럭 기사 이 아무개씨는 과적에 따른 사고 위험이 걱정되지만 종종 과적 운행을 피하지 못한다고 했다. “화주사나 운송사가 과적을 요구할 때가 많고 이를 거부하면 일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화물차 운전자는 고정 일감이 없는 일명 ‘탕바리’의 과속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거 먹을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딱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배차 콜이 뜨면 그 일감을 잡기 위해 서로 치킨게임 경쟁을 벌인다. 순번을 빨리 잡으려면 어떻게든 빨리 달려서 다른 차들을 제쳐야 한다. 이런 문제를 막을 제도가 하나도 없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오롯이 개인이 책임을 떠안는다. 생계의 중단, 본인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타인에 대한 물질적·정신적 책임이 모두 ‘개인사업자’인 화물차 기사의 몫이다. 화주나 운수업체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발주한 작업에 의해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가 나든, 얼마나 많은 화물 기사가 과로사하든 신경 쓰거나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것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개선할 동기도 유인도 없다. ‘도로 위 흉기’로 불리는 과로·과속·과적 화물차들은 이런 과정에서 생겨났다.
덜 일하고 더 쉬어야 안전해진다는 걸, 화물차 기사들 스스로 모르지 않는다(〈그림 5〉 참조). 무엇이 바뀌어야 그게 가능해질지도 당사자들이 잘 알고 있다. “안전운임제로 일정 수입이 보장되면 휴식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휴식시간이 늘어나면 건강과 안전은 따라올 것이다(40대·25t 카고)” “전 차종 화물 노동자를 노동법 테두리 안으로 넣어야(50대·25t 트럭)” “현재 대한민국 물류운송 시스템은 적은 운임으로 정해진 시간에 여러 횟수로 운송해 매출을 올리는 시스템이다. 기업이 영업이익을 창출하기에는 합리적인 시스템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 목숨이 좌지우지되고 있다. 근본적인 시스템이 바뀌어야 화물차 노동자와 도로 위를 같이 달리는 국민의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화물차 바퀴를 멈출 만한 힘이 없다.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 시사IN x VWL 특별기획 화물차를 쉬게 하라 - DTG 데이터로 본 365일 24시간의 노동: https://truck.sisain.co.kr/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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