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임금인상 투쟁이 '공갈'이라는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 6월부터 7월 말까지 파업을 했던 금속노조 거제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를 고소하면서 혐의 중 하나로 '공갈미수'를 기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사측이 노측을 공갈죄로 고소한 건 아주 이례적인 일로, '노조 무력화를 위한 고소 남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 7월 "파업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하청노조를 경찰에 형사 고소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상대 '공갈미수죄' 주장 고소
뉴스타파가 확보한 거제경찰서 수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7월 대우조선 하청노조 간부들의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며 업무방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공갈미수, 특수절도, 공동감금, 공동재물손괴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확인 결과, 이는 모두 대우조선의 고소에 따른 것이었다. 거제경찰서 측은 "고소장 이외에 경찰이 추가로 혐의를 인지해 수사한 건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언론 보도로 알려진 대우조선의 하청노조 고소 이유는 '업무방해죄' 뿐이었다.
취재진은 공갈미수 혐의에 주목했다. 뉴스타파가 접촉한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노사 분규 중 사측이 노조를 공갈죄로 고소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우조선은 하청노조의 어떤 행위가 공갈미수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경찰 수사 자료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피의자들은 하청노조에서 요구하는 교섭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고소인 회사(대우조선해양)의 업무를 방해하면서 선박 진수의 지연을 시키겠다고 말하며 제1독(dock)에서 건조 중인 선박 내부에 위험한 물건인 시너 1통(1.5리터)을 휴대하여 들어가 50억 원에 해당하는 불법적인 임금 인상 등을 주장하며 이 금액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로써 피의자들은 50억 원에 해당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피해자를 공갈했으나 고소인 회사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며 미수에 그쳤다.
- 경찰 수사자료
형법상 공갈죄는 '협박이나 폭행으로 타인을 억압하여 자신 혹은 제3자가 불법적인 재산상 이득을 얻게 하는' 범죄다. 여기에 대우조선의 주장을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만들어진다. '하청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회사 업무에 지장을 준 것'은 협박 혹은 폭행이고, 임금 인상은 '불법적인 재산상 이득'이다. 그리고 하청노조의 이런 협박 혹은 폭행으로 겁을 먹어 돈을 빼앗기게 된 '타인'은 대우조선이다.
법률 전문가들, "공갈죄 성립 어렵다"
대우조선 주장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비합법적이라고 지적했다. 형사법 전문가인 양홍석 변호사는 "공갈은 외포심, 즉 타인을 겁 먹게 해서 재물이나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범죄다. 대기업인 대우조선의 사업주가 하청 노조원 1~2명이 농성장에서 (위험물질인) 시너를 소지했다는 것만으로 공포심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 노조의 파업이 원치 않는 사업상 손해, 사회적 비난을 야기할 순 있지만, 이 때문에 공갈죄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보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직고용·하청을 포함해 2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거느린 대우조선의 사장이 수십 명의 하청 노조원이 파업과 농성을 한다고 '강제적으로 돈을 내놔야 할 정도로 겁을 먹었다'고 볼 순 없다는 뜻이다.
노동법 전문가인 최종연 변호사도 "대우조선은 하청 노조원이 시너를 소지하고 한 번 뿌렸다는 게 엄청난 협박인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대우조선이 그걸 보고 '무서우니까 임금 올려줘야겠다'고 했겠느냐. 하청노조 측이 교섭장 안까지 시너를 들고 가서 위협했으면 몰라도 농성장이나 독에서 잠시 가지고 있었다고 공갈이라고 하는 건 인과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미 경찰 조사를 받은 하청노조 측도 어이없는 혐의라는 입장을 보였다. 강인석 부지회장은 "노조에서 임금 30% 인상 요구를 원청인 대우조선에 했고, 원청은 고소하면서 이 금액을 50억 원으로 산출했다. 그런데 이 금액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불분명하다. 경찰 조사에서도 '50억 원 산출 근거가 뭐냐'고 물었는데, 경찰도 웃고 말았다. 경찰도 납득이 안 간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강 부지회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노조는 당연히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고, 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곳이 대우조선 원청입니다. 협력업체가 임금 인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당연히 하청노조에서는 원청에 대해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게 마치 공갈 협박하는 것처럼 비춰진다는 것은 노조에 대한 몰상식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 강인석 / 금속노조 거제고성통영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10년치 법원 판례 확인..."임금인상 요구에 공갈죄 적용은 매우 이례적"
앞서 설명한 대로 노사 분규 과정에서 사측이 노조를 공갈죄로 고소하고, 이로 인해 실제로 유죄가 선고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뉴스타파가 최근 10년간 법원 판례를 확인(공갈·노동조합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2016년 건설타워크레인 노조 간부들의 노조원 채용 요구와 이에 따른 사업주 압박 행위가 공갈죄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례가 유일했다. 당시에도 무리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뉴스타파와 인터뷰한 법률 전문가들도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에 공갈죄를 적용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금 인상은 노조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회사 업무에 일정 부분 지장을 주며 쟁의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공갈죄를 적용한다면, 이는 노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노동법 전문가인 이용우 변호사는 "노사관계에서 또는 단체교섭 과정에서 형법상 범죄, 특히 공갈죄까지 제기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며 매우 부적절하다.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혐의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은 무리한 고소를 남발하는 이유는 결국 형사적인 방식으로 하청노조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대우조선의 발상이 노동3권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공갈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입니다. 사업주의 원활한 경영 활동과 사업장의 안전은 보호 목적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갈죄를 인정한다고 하면 우리 형법 체계상 맞지 않을 뿐더러 사실상 노동3권 행사를 상당 부분 박탈하는 결과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회사에 일정 부분 피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조 쟁의 행위의 일환이라면, 그건 회사가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합니다.
- 양홍석 변호사
업무방해와 공갈미수 혐의 이외에도 대우조선은 하청노조를 고소하며 특수절도, 공동감금, 공동재물손괴 혐의도 적용했다. 하청노조가 대우조선 조선소 내 비닐, 발판을 이용해 농성장을 차린 것은 특수 절도고, 하청노조의 파업 설치물에 손을 댄 원청 직원과 3시간 정도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 것은 공동 감금이라는 주장이다. 양홍석 변호사는 "단순히 개인 대 개인으로 피해를 입힌 게 아니라 노동조합의 활동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예 죄 성립이 안 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인 불법 행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용우 변호사는 "대우조선은 하청노동자들과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70억 원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혐의도 인정되기 어려운 형사 고소를 남발하는 건 부적절하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만큼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오히려 일반 사기업보다 더 극악한 방식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대우조선 측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하청노조를 공갈미수 혐의로 고소한 이유가 무엇인지, 범죄 성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지 등을 물었다. 대우조선 측은 "지난 취재 시에도 회사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답변할 게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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