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관계 넘어선 '대러 외교' 공간 마련해야 [4강의 시선]

2026. 1. 1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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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한러 수교가 이뤄진 후 북한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대러 경제협력 강화는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졌다.

종전 후 미러관계의 재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러관계의 '완충 공간'을 독자적 외교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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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편집자주
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동조화 심화한 미러, 한러 관계
북극항로 등 완충지 모색하고
한국만의 '전략공간' 회복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알렉산드르 홀에서 열린 주러시아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제정식에는 작년 10월 부임한 이석배 주러시아 한국대사도 참석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한러 관계의 회복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AP=뉴시스

노태우 정부에서 한러 수교가 이뤄진 후 북한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대러 경제협력 강화는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 북방정책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미국 변수였다. 미러 관계의 악화가 한국의 대러 협력 공간을 제약하고 북방정책의 추진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한계가 반복됐다. 러우전쟁은 이러한 미러관계와 한러관계의 동조화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러나 최근 종전 논의가 구체화하면서 한러관계 복원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종전 후 미러관계의 재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러관계의 '완충 공간'을 독자적 외교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극항로는 한국이 미러 양국과 동시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핵심 전략 영역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북극항로에서 러중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중요한 위협으로 인식하며, 북극 지역의 희토류 등 광물자원 확보에도 관심이 많다. 미러 간 종전 협상 과정에서도 북극 협력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재명 정부도 북극항로 참여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쇄빙선 건조 역량을 지렛대로 미러 양국 사이에서 북극 협력을 주도할 실질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대북 제재의 틀 안에서 경제제재와 인도적 협력의 분리 시행을 논의해 볼 수 있다. 이는 무조건적 제재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기구와의 공조를 통해 투명한 제재 면제 원칙의 선제적 수립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접근은 대북 제재 실효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실질적 동력이 될 것이다.

셋째, 미·러가 공동 참여하는 ‘다자 대화 플랫폼’ 구축을 제안할 수 있다.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에서 협상 결과 도출을 위한 과거의 6자 회담 재개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소통형 실무급 다자 회의가 만들어진다면 급작스러운 갈등 상황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한반도 위기 관리 체제를 논의해 볼 수 있다. 북러관계가 군사 동맹으로 진화한 상황에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 군의 자동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급변 사태를 피하고 특히 러시아가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할 수 있도록 미국, 러시아와 협의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안보 대화는 종전 전이라도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북한 비핵화 대화 재개를 논의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없고, 완전 비핵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 자체의 성립이 어렵다는 회의론이 팽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완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되, 단기적으로는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한 단계적이고 관리형의 비핵화안을 한국이 주도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한·미·러 협의 없이 북미 대화를 러시아가 중재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소위 ‘코리아 패싱’의 우려도 없지 않다.

우리는 종전 이후 한러관계 정상화를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이를 위해 외교부 주도의 '관·민 합동 태스크포스'를 조속히 구성하여 가동할 것을 제안한다.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을 모색하는 데 정부가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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