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의 가치를 기록하는 노포 역사가, 『초빼이의 노포일기』 김종현 작가

김종현 작가는 노포를 잘 보존하고 활성화하는 외국의 사례를 보며 한국의 노포를 알리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초빼이’라는 독특하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필명을 쓰는 김종현 작가는, 그렇게 200여 군데 넘게 다닌 노포 중에서 70여 곳을 골라 『초빼이의 노포일기』라는 두 권의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서울과 인천은 물론 전국 곳곳의 노포를 취재한 결정체인 이 책만 있으면 어딜 가도 뭘 먹을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노포가 되기도 힘들고 노포로 살아남기도 힘든 시대. 『초빼이의 노포일기』는 그럼에도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노포의 장인들에게 보내는 전상서입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 ‘초빼이’ 김종현 작가를 만나 노포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계기부터 현대 사회에 노포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단순히 음식점을 넘어서 노포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노포가 일종의 역사적인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을지로에 용금옥이라는 서울식 추어탕집이 있습니다. 100년이 조금 안 된 노포입니다. 197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처음으로 북측과 접촉한 남북조절위 제3차 회의에서, 서울에 왔던 북한 대표단 박성철 부주석의 첫마디가 “용금옥은 잘 있습니까?” 였습니다. 가뜩이나 얼어붙었던 양측 대표단의 분위기를 그 한마디로 녹여 버린 것이죠. 제가 기억하는 가장 드라마틱한 아이스 브레이킹 사례이기도 합니다. 서로 적대시하던 양측의 공통 분모 역할을 ‘용금옥’이라는 노포가 해낸 것입니다. 이처럼 노포는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종현 작가의 『초빼이의 노포일기』지방편

Q. 이제는 역사가 되어 버린 노포를 회고해 주실 수 있나요?

여러 군데가 떠오릅니다. 몇 년 전 문을 닫은 을지로의 안성집은 돼지갈비를 맛있게 내던 집이었습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던 식당인데 을지로 지역 개발과 함께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인천의 오래된 순댓국집인 시정순대도 기억에 남습니다. 인천 순댓국집을 양분하던 두 집이 지금도 있는 이화찹쌀순대와 시정순대였습니다. 이화찹쌀순대가 맑고 가벼운 고깃국물 베이스의 순댓국이라면, 시정순대는 두텁고 묵직한 뼈 육수를 쓰던 곳이었습니다. 시정순대는 건물을 수리하는 듯하며 문을 닫고는 아예 영업을 그만뒀습니다. 몇 년 후 그곳 사장님 막내아들이 다른 곳에서 가게를 내셨는데, 그곳도 결국 문을 닫았고요.

마지막으로 책에도 쓴 하남 마방집을 들고 싶습니다. 옛날에는 말이 교통수단이었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말을 쉬게 하고 주인도 식사를 하고 숙박도 할 수 있는 ‘마방(馬房)’이 많았는데 지금은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하남 마방집은 진짜 마방을 운영하던 100년 넘은 한옥에서 영업하던 한식집이었는데요, 역시 재개발 이슈로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합니다. 가게 자체야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의 멋진 한옥을 살리지 못하고 허물어야 한다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경기도 하남 마방집에서 | ⓒ 김종현

Q. 음식의 맛 표현이 굉장히 생생합니다. 글은 어떻게 쓰셨나요?

음식을 먹으며 음식의 재료, 맛, 풍미 같은 것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서 글을 쓸 때 참고합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노포들은 이전에 한 번씩 들렸던 곳이라 그때 그 맛들을 기억하고 있기도 합니다. 얼마 전 목포의 장터식당이라는 곳을 10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음식을 먹자마자 10년 전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더군요. 워낙 음식 맛이 좋은 곳이라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것일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음식의 맛, 향, 식감 등 굉장히 복합적인 감각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미문으로 맛 표현을 잘한다고 해도 실제 입으로 맛보는 것과는 차이가 크니까요. 그때 제가 내렸던 답이 ‘공감’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이 있거든요. 우리가 공감대라고 부르는 그거요. 그래서 어떤 식당이나 맛을 표현할 때도 그 시간, 그 장소, 그 분위기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각자의 공통된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 하나를 먹어도 그냥 좋거나 싫다고 쓰는 게 아니라 전라도로 여행을 갔다가 이런 김치를 먹었는데 “그 김치에서 이런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었고 다른 지방의 김치의 이런 특성과는 다른,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더라.” 하는 식으로 씁니다.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가서 새로운 맛을 발견한 경험이 있을 테니 그 기억을 호출해 공감을 일으키는 겁니다.

경남 진주시 천황식당의 진주비빔밥 | ⓒ 김종현

Q. 현존하는 식당에 관한 솔직한 평가를 남기는 데 부담은 없으셨나요?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요.

사실 노포는 200여 군데 넘게 다녔지만, 취재를 하고서도 쓰지 못한 집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천에 아주 오래되고 유명한 해장국집이 있는데, 가게를 이어받은 사장님의 서비스 마인드를 보고 실망한 나머지 글 쓰는 것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위생 의식에도 문제가 있었고요.

그런 특별한 경우 외에는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쓰며 가급적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록합니다. 제 글의 주목적 중 하나가 좋은 노포를 좋게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거든요. 물론 조금 아쉬운 부분, 다른 노포에서는 더 좋은 방식을 사용하는데 여기는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싶을 때 한 번씩 사족을 달기도 합니다.

반대로 너무 좋은 곳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가 대체로 칭찬에 인색하잖아요. 오히려 누가 잘하면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경우가 많지요. 저는 잘하는 집에는 잘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조금 과하게 칭찬할 때도 있습니다. 책에서 동해시 덕취원 같은 식당은 제가 좋아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속 문장까지 인용하며 상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80년이 넘는 노포 중국집에 대한 제 나름의 오마주였습니다.

‘초빼이’ 김종현 작가

Q. 출간 후 책에서 다룬 노포를 다니시며 책을 선물하고 계시지요. 어떤 취지인가요?

노포의 사장님들은 항상 외로운 분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오랜 노포의 대를 잇는다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숭고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출판 계약서를 쓸 때부터 책이 나오면 노포 사장님들을 찾아가 “좋은 음식을 먹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드리고 책을 선물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공감이라는 게 별거 아니거든요. 노포를 찾아 책을 드리는 일은 사실 칭찬과 위로의 일환입니다. 아니, 제가 감히 그분들을 칭찬하고 위로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으니 오히려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분들이 지금껏 오랜 시간을 버티며 맛있는 음식을 지켜주신 덕분에 저 같은 사람도 생겨날 수 있었으니까요.

Q. 최근 『초빼이의 노포일기』 북토크를 여셨지요. 역시 노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을 것 같은데 북토크와 뒤풀이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굉장히 이상한 북토크였습니다. 사실 제 북토크 이전에 다른 작가분들의 북토크 정보도 찾아보고 이야기도 들었는데, 제 북토크만 유일하게 ‘남초’ 북토크였다고 하더라고요. 단 한 분의 여성 독자분만 참여하셨어요. 게다가 더욱 특이한 것은 요식업 업계의 관계자분들도 굉장히 많았고, 지역 문화운동을 하시던 분들도 계셨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노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같은 생각을 공유하시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3차까지 뒤풀이를 했는데, 북토크에는 참석하지 않고 뒤풀이에만 참석한 분이 30% 정도 있었어요. 그것도 굉장히 재밌었다고 생각된 부분이었습니다. 오히려 뒤풀이 자리가 북토크 시간보다 노포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의견들을 나눌 수 있었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수원시 행궁길 수원만두의 군만두 | ⓒ 김종현

Q. 현재까지 130여 편의 노포 일기를 쓰셨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초빼이의 노포일기』는 제 첫 책으로, 책을 내면서도 불티나게 팔릴 것 같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랍고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무명작가의 첫 책이 두 권으로 나오는 것도 드문 일인데, 음식 에세이 분야에서 판매 순위 1,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믿기지 않더라고요. 그것도 드라마로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을 제치고 말이죠.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출간한 얼론북이란 출판사는 유명한 여행 작가인 최갑수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사실 대표님도 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런 뜻하지 않은 반응에 이미 다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음 책의 방향성과 기획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 몇몇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음식과 노포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쓰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글과 별개로 노포일기의 콘텐츠 일부를 숏폼 동영상으로 제작해 SNS에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워낙 초보적인 수준의 편집이라 부끄럽지만, 다양한 채널로 독자분들을, 저와 같은 초빼이들을 만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제 책에 실린 노포의 사장님들을 찾아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인터뷰·인물 촬영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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