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고용' 일본처럼 안착하려면…"선택지로 단계적 접근을"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 착수…정년 연장 vs 재고용
"日고령자 고용 정책,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 아냐"
"청년 반발·인건비 부담 없어…임금체계는 노사가"
일본 그대로 적용은 어려워…"선택지 열어 제시를"
[도쿄=뉴시스] 강지은 기자 =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 않게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고령자 고용 정책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고령 사회'(14% 이상)에 들어선 지 7년 만으로 같은 기간 미국이 15년, 일본이 10년 걸린 것과 비교하면 매우 빠른 것이다.
특히 이 속도라면 2030년에는 인구 4명 중 1명이, 2039년에는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생산연령인구(15~64세)도 2019년을 정점으로 매년 감소해 2050년에는 2019년 대비 3분의 1 이상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성장 잠재력은 약화되고, 산업 현장의 인력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의미다.
그간 정부는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 등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가속화하는 초고령 사회와 고령층의 다양한 고용정책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고령층의 근로희망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오랜 기간 노동시장에 남기를 희망하는 만큼 이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에 정부는 올해 초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4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초고령 사회에 대비한 계속고용 문제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다뤄줄 것을 요청했다. 경사노위는 지난 7월 전문가들로 구성된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출범하고 관련 논의에 착수했다.
현재 고령자 계속고용 방식으로는 재고용과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일본의 '65세 고용확보조치'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고용 방식을 둘러싼 노사정 간 입장 차이가 현격한 상황이다. 노동계는 안정적인 고용 방식인 정년 연장을, 경영계는 기업의 부담 등을 이유로 퇴직 후 재고용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영계는 2016년 급격한 정년 연장으로 인해 산업 현장에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2013년 법 개정 당시 300인 이상 기업의 60%는 55세 또는 58세를 정년으로 뒀다. 하지만 약 2년6개월 만에 정년이 2~5세로 연장되면서 일부 고령층이 조기 퇴직하거나 청년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오래 일한 직원이 임금을 많이 받는 연공성 위주의 임금체계와 그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이유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와 경영계가 주장하는 재고용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고용 불안만 가속화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 8월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과 연계해 2033년까지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내용의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대한 국민 청원을 제출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은 63세이지만, 2033년에는 65세로 연장된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도 정년 연장에 힘을 실으면서 관련 논의에 불이 붙는 모양새다.
이처럼 노사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앞서 65세 고용확보조치를 의무화한 일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결론적으로 일본은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65세 고용확보조치에 세 가지의 선택지를 도입, 점진적으로 안착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또 일본은 노동 관련 정책을 다룰 때 노·사·공으로 구성된 노동정책심의회를 거치는데, 고령화 등 사회적 환경을 함께 공유하고 논의하면서 고령자 고용 확보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슈쿠리 아키히로 후생노동성 고령자고용대책과장은 "이 과정에서 우리가 신경 쓴 것은 고령자 고용확보조치를 기업에게 과도하게 부담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며 "해당 조치를 바로 의무화한 것이 아니라 노력 의무를 거쳐 단계적으로 실시해 충격을 완화시켰기 때문에 노·사·공이 합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청년층 반발도 크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은 고령자 고용 정책이 청년층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최대 노동조합 '렌고'(Rengo)의 답변도 마찬가지다. 렌고 관계자는 "청년층이 고령자 고용 확보 조치에 대해 자신들의 취직할 기회가 박탈된다고 하는 목소리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고령화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일본은 50대 후반이 되면 부장, 과장 같은 직책에서 물러나 그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는 이른바 '직책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다. 고령자 확대가 청년층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후배에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고령자 고용 정책에 대한 청년층의 큰 불만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고령자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어떨까. 이에 대해 슈쿠리 과장은 "고령자를 고용한다 해도 인건비에 큰 마이너스 요인은 없다"고 했다. 렌고 관계자도 "근속연수가 많아도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성격을 줄이고 있어서 기업의 인건비가 과도하게 부담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경영계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을 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임금 등 처우의 경우 법으로 규정할 사항이 아닌, 개별 기업 노사가 교섭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를 의무화했지만, 해당되는 고령 대상자에 대한 별도의 처우 규정은 없다. 다만 기존의 직무를 바꾸는 등의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침은 마련해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본의 고령자 고용 정책과 추진 과정을 높게 평가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고령자 고용 정책은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점, 기업의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점, 고용제도뿐 아니라 연금제도와 맞춰 같이 가는 점에서 커다란 특징이 있다"고 했다.
오학수 일본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박사도 "일본의 고령자 고용 정책은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르면 다음 달부터 국내도 계속고용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노·사·정 대화 참여를 중단했던 한국노총이 최근 전격 복귀를 선언하면서 사회적 대화 재가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및 임금체계 개편 등 다양한 의제가 산적한 가운데, 첫 안건은 정년연장 등 계속고용 논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논의 과정은 사회적 합의를 이룬 일본과 달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일본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가 큰 만큼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오 박사는 "우리의 경우 정책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나라라는 측면에서 일본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민연금 개혁안의 경우 '맹탕' 논란이 일면서 이와 함께 연계해 바라봐야 할 계속고용 논의는 당분간 답보 상태에 놓일 수도 있다.
오 박사는 아울러 "자율성도 좋지만 (정부가)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일본처럼 (고령자 고용확보조치) 선택지를 열어둬 각 기업에 상황에 맞게 선택하고 단계적으로 고령자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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