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말 안 하면 알 수 없는 돈, '대학생 원룸 관리비'의 비밀
주택 관리비 공개제도
세부 내역 공개 의무 부여
대학생 거주하는 오피스텔
주택 아니어서 의무도 비켜가
빈틈 해소할 제도 만들어야
# 월세 부담만 덜어낸다고 대학생들이 주거비 걱정을 떼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관리비 때문이다. 몇몇 집주인은 임대료를 끌어올리기 위해 관리비를 슬쩍 인상하기도 한다.
# 문제는 그런 관리비가 베일에 싸여 있는 경우가 숱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3년 9월 관리비 세부 내역 공개까지 도입했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집주인이 설명하지 않으면 관리비를 숨길 수 있는 예외규정 탓이다.
자취하는 청년들에게 중요한 건 월세만이 아니다. '또 다른 월세'로 불리는 관리비는 생각보다 큰 무게로 다가온다. 임대차보호법으로 임대료 상승을 규제하는 '선'이 생겼지만 몇몇 집주인은 관리비를 높이는 방식으로 사실상 임대료를 인상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관리비를 충분히 납득할 만하느냐는 거다.
의문과 빈틈을 채워주는 제도는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9월 1일 '중개대상물 표시광고 세부기준 고시' 개정안을 기준으로 "10만원 이상의 관리비를 내야 하는 부동산이 인터넷 공간에 전월세 광고를 진행할 땐 관리비 세부 내역을 밝혀야 한다"고 정했다. 여기서 세부 내역은 공용관리비, 수도요금, 전기요금 등이다.
제도의 효과는 괜찮았다. 개정 고시 덕분에 아파트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웠던 관리비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빈틈과 맹점은 여전하다. 특히 대학생이 많이 거주하는 원룸과 오피스텔엔 문제가 적지 않다. 제도적 개선을 꾀했는데, 왜 그런 걸까.
답을 찾기 전에 대학가 일대의 원룸 관리비의 실태를 알아보자. 부동산 매물광고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 3'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서울 주요 10개 대학가(경희대ㆍ고려대ㆍ서강대ㆍ서울대ㆍ성균관대ㆍ연세대ㆍ이화여대ㆍ한국외대ㆍ한양대ㆍ가나다순)의 원룸 평균 관리비는 7만9000원으로 1년 전보다 11.3% 올랐다.
그중에서도 평균 관리비가 가장 높았던 곳은 이화여대 일대였다. 지난해 8월 이화여대 일대 원룸 관리비는 10만원이었지만 올해는 49.0% 오른 14만9000원에 달했다. 이화여대 평균 월세 역시 74만원으로 주요 대학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이렇게 비싼 월세와 관리비를 합치면 이화여대 원룸의 거주비는 90만원에 육박했다. 대학생이 내기엔 부담이 큰 금액임에 분명하다. 스테이션3 관계자는 "월세가 오르지 않아도 평균 관리비가 오르면 대학생 세입자의 체감 월세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관리비 부담을 설명했다.
문제는 값비싼 원룸 관리비가 합당한 수준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개정 고시안에 따르면 관리비가 10만원 이상인 경우 공동주택(아파트)이든 원룸이든 오피스텔이든 세부내역을 고시해야 하지만 예외가 있어서다.
공인중개사에게 집주인이 수도비ㆍ전기비 등 관리비 세부내역을 설명하지 않을 때다. 집주인이 공인중개사에게 관리비의 세부내역을 제출하지 않으면 예비 세입자로선 매물을 제대로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다. 관리비에 부당한 금액을 슬쩍 녹이더라도 세입자가 확인할 수 있는 길도 없다.
혹자는 "집주인이 거절하면 아파트도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100호 이상의 공동주택 관리비 내역의 공개를 규정한 법은 따로 있다. 2015년에 제정해 2016년 시행한 공동주택관리법이다.
이 법을 근거로 300세대 이상 혹은 승강기가 있는 15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은 관리비를 외부에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참고: 원래 대상은 300호 이상의 공동주택이었지만 10월 25일부터 100호 이상으로 확대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K-apt공동주택관리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아파트의 관리비 항목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일반관리비, 수선유지비, 개별사용료, 장기수선충당금 월 부과액이다. 일반 관리비에는 청소ㆍ경비비ㆍ소독비ㆍ승강기 유지비ㆍ사물인터넷(IoT) 설비 유지비 등이 속한다. 수선 유지비는 수선비·시설유지비·안전점검비·재해예방비·위탁관리수수료 등이다.
이 일을 외주에 맡겼을 때도 비용을 상세히 표기한다. 개별사용료에는 난방·급탕·가스·정화조 등의 이용료가 들어간다. 건물보험비 등도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장기수선충당금은 공동주택의 장기 관리를 위한 비용이다. 관리비 내역서만 봐도 정확히 어떤 내역에서 관리비가 얼마나 필요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집주인의 한마디로 관리비 내역을 볼 수 없는 원룸과 오피스텔과 완전히 다른 법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대학생들이 주로 살고있는 원룸과 오피스텔의 관리비는 여전히 확인하기 어렵다. 집주인이 설명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오피스텔의 규모가 100호를 넘어도 마찬가지다. 법망 확충이 필요하다."
2023년 9월 이후 부동산광고시장감시센터가 '관리비 표기 미흡'으로 신고받은 건수는 계도기간을 포함해 403건이었다. 그사이에 원룸 관리비는 계속해서 올랐고 청년들에겐 더 큰 부담을 줬다. 법까지 개정하고 고시 내용도 바꿨지만 여전히 고가 관리비 문제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전히 불투명한 '제2의 월세' 관리비는 사용한 만큼 내는 돈이 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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