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실내체육관의 공기는 마치 챔피언 결정전 5차전의 마지막 순간처럼 뜨겁고도 무거웠다. 현대건설과 한국도로공사, 리그 1·2위를 다투는 두 거함의 맞대결은 단순한 정규리그 한 경기를 넘어 올 시즌 여자배구의 왕좌가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는 거대한 분수령이었다.

결과는 현대건설의 세트 스코어 3-2 승리였다. 1, 2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3, 4세트를 내주며 벼랑 끝까지 몰렸던 현대건설은 마지막 5세트에서 기어코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점 2점을 챙겼다. 이제 1위 도로공사와의 격차는 단 2점이다.
하지만 코트를 뒤덮은 것은 승리의 환호성만이 아니었다. 승점 2점의 뒤편에는 부상이라는 잔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이는 남은 시즌의 판도를 완전히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로 부상했다.

이날 경기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4세트였다. 현대건설은 4세트 초반 점수 차가 벌어지자 주전 세터 김다인과 주포 카리 등을 대거 벤치로 불러들였다. 겉으로 보기엔 무기력한 패배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는 강성형 감독의 냉철한 ‘버리기’ 전략이었다.
체력이 바닥난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고 5세트 단기전을 준비한 이 판단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힘을 비축한 카리와 자스티스는 5세트 결정적인 순간에 도로공사의 블로킹 벽을 뚫어냈고, 마지막 순간 한미르의 서브 에이스는 그 마침표를 찍었다.

반면 도로공사는 4세트를 압도적으로 따내고도 기세를 5세트까지 잇지 못했다. 모마라는 확실한 주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부처에서 터져 나온 범실과 체력 저하가 발목을 잡았다. 배구는 결국 기세의 싸움이지만, 그 기세를 뒷받침하는 것은 냉정한 수 싸움이라는 점을 증명한 경기였다.
현대건설의 5연승 기쁨도 잠시, 5세트 초반 코트 위에는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비명이 울려 퍼졌다. 도로공사의 아시아쿼터 타나차가 착지 과정에서 발목을 크게 다치며 들것에 실려 나간 것이다.

타나차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현장을 찾은 팬들뿐만 아니라 상대 팀 선수들의 마음까지 무겁게 했다. 특히 타나차가 밟은 발의 주인이었던 카리는 경기 후에도 미안함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스포츠의 세계는 승패가 갈리는 비정한 곳이라지만, 동료 선수의 부상 앞에서는 적군도 아군도 없었다.
도로공사 입장에서는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다. 주포 강소휘가 허리 부상으로 100%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타나차까지 시즌 아웃급 부상을 당했다는 것은 선두 수성에 심각한 빨간불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1패 이상의 타격, 아니 올 시즌 농사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대위기다.

현대건설은 이제 턱밑까지 추격에 성공했다. 국가대표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윤이 시즌 아웃된 최악의 상황에서도 카리-자스티스-양효진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위력은 여전했다. 특히 아시아쿼터 자스티스의 영입은 현대건설 신의 한 수가 되고 있다.
하지만 도로공사의 몰락을 기뻐하기엔 현대건설 역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 도로공사의 모마 역시 경기 후반 발목 통증을 호소했다. 주축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은 비단 도로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6라운드 막바지에 다다른 V리그 전체의 고질적인 체력 문제와 직결된다.

남은 5경기, 이제 기술과 전술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누가 더 부상 없이 버티느냐, 누가 더 두터운 뎁스를 활용해 주전들의 체력을 안배하느냐가 우승컵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다. 현대건설의 파죽지세가 도로공사의 수성을 무너뜨리고 대역전 우승이라는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늘 경기는 왜 여자배구가 겨울 스포츠의 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세트 스코어, 몸을 던지는 디그,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까지.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지만, 현장의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혈투였다.

승점 2점 차이는 한 경기 결과에 따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거리다. 현대건설은 추격자의 입장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도로공사는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부상 악재라는 가장 큰 적을 만났다. 심리적 우위는 이미 현대건설 쪽으로 기운 듯 보인다.
부상으로 쓰러진 타나차의 눈물이 헛되지 않으려면 도로공사는 남은 경기에서 잇몸으로라도 버텨야 한다. 반면 현대건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고삐를 죌 것이다. 2026년 봄, 수원과 김천을 오가는 우승의 향방은 이제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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