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스웨덴 대사관 앞 '무식한 퍼포먼스'
항의 아닌 '사건의 본질적 성격' 읽어냈어야
그들의 행동, 이념 아닌 "지적 무능과 나태"
지령받아 '빨갱이 몰이' 하는 실천력이라니
“대한민국 역사왜곡 작가 노벨상, 대한민국 적화 부역 스웨덴 한림원 규탄한다.”
며칠 전 대한민국애국단체협의회 등 5~6개 단체 회원들이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 펼쳐놓은 현수막에 적힌 글귀이다. 저들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품들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은 한국 현대의 ‘거짓 역사’를 세계적으로 공인하는 ‘부역행위’를 저질렀다고 강변한다.
한강의 소설 한 권이라도 읽었을까
그런데 아마도,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 중 한강의 소설을 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책을 읽었다면 저토록 무식하고 무도한 행위를 저질렀을 리 없다. 저 퍼포먼스에 앞서 ‘보수’를 자칭하는 몇몇 글쟁이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에 제주 4.3과 광주 5.18에 관한 ‘거짓역사’가 담겼다고 주장했다.

저들은 한강의 소설이 아니라 이런 ‘주장’을 전한 신문기사나 유튜브 영상만 보고 스웨덴 한림원을 ‘대한민국 적화 부역 세력’으로 규정했을 것이다. 보통의 지적 수준이나 지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히려 저들의 행동에서 제주 4.3과 광주 5.18의 본질적 성격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주 4.3평화공원에는 1만 4,600여 명의 이름이 적힌 석비(石碑)가 늘어서 있다. 정부가 피해자 유족들의 신고를 받아 수집한 제주 4.3당시 군경과 서북청년단원들에게 피살된 사람들의 명단이다. 일가족 전원이 참살당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실제 피해자는 신고된 사람보다 훨씬 많은 2만 5천~3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제주도 인구는 20만 명 미만이었다.
갓 돌 지난 아이조차 죽음으로 내몰려
석비에는 ‘○○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적힌 갓 돌 지난 아기도 있다. 확인된 피살자 중 10살 미만의 아동만 700명에 달한다. 당시 군경과 서북청년단원은 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부역’ 혐의를 두었다. 그들은 아이 아버지가 산에 있는 ‘좌익 무장대’와 내통했거나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했다. 그들은 아이 부모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먼저 아이를 죽였다.
그들은 빨갱이, 빨갱이와 내통한 자, 빨갱이와 내통할 가능성이 있는 자, 빨갱이와 내통할 가능성이 있는 자의 처자식과 부모까지 죽이는 것이 ‘애국’이라고 믿었다. 이승만 정부는 그런 믿음을 장려했다. 세월이 흘러 가슴 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았던 피살자 유가족들의 한(恨)이 터져 나왔을 때, 그들은 “빨갱이는 죽여야 해”라는 믿음과 “어린아이가 빨갱이냐?”는 질문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 잔당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남경에서 대학살을 자행하고 패륜적인 731부대를 운영했던 군국주의 일본군 출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자기 기억 일부를 지움으로써 자기의 과거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이 ‘수정된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수정될 수 없는 진실, 왜곡될 수도 없는 진실
광주 5.18 관련 증거자료들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여기에는 당시의 군과 정부 기록, 사법부의 재판기록, 국회 청문회와 진상규명회의록,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의 관찰 및 조사 기록, 국내외 언론의 취재기록과 사진 및 동영상 기록, 시민들이 제작·배포한 유인물, 국가의 피해보상 자료 등이 포함된다.
사실 5.18의 ‘진상’은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먼저 알았다. 전두환 일당은 국내 언론은 통제할 수 있었으나, 외국 언론에까지 ‘사실왜곡’을 강요하지는 못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사람들은 외국 언론이 진즉에 보도한 기사와 사진조차도 보기 어려웠다.
‘왜곡된 사실’만을 알던 한국인 대다수가 비로소 ‘진상’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일이었다.

1988년 국회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가 설치된 이후 여러 차례의 관계자 조사가 진행되었고, 민자당 김영삼 정권 때에는 5.18과 전두환 일당의 내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결정문과 대법원 판결문만 읽어보더라도 전두환 일당을 비호하는 자들이 억지로 꾸며낸 ‘북한군 개입설’ 같은 것을 믿을 수는 없다. 제주 4.3과 광주 5.18과 관련된 한국 정부와 국회, 사법부의 기록 및 세계인의 기억을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하는 짓이야말로 ‘역사왜곡’이다.
한강 소설을 읽지도 않고 한강을 ‘좌익’으로 몰고 스웨덴 한림원에 ‘부역’ 혐의를 씌우는 자들이 제주 4.3과 광주 5.18을 왜곡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좌익 혐의와 부역 혐의를 씌웠던 서북청년단의 정신은 이들 마음에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있다. 지적 무능과 나태야말로 악(惡)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지적 무능과 나태’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16년 뒤인 1961년, 예루살렘에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한나 아렌트는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으로 예루살렘에까지 가서 이 재판을 방청했다. 그가 법정에서 본 아이히만은 ‘희대의 악마’가 아니라 ‘무서울만큼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죄’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자기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적 무능과 나태’였다. 그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어린아이까지 죽이라는 지시가 온당한지 부당한지 따질 줄을 몰랐다. 히틀러가 ‘악’으로 규정하면 ‘악’이라 믿었고 나치가 죽이라고 지시하면 누구든 죽였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물은 한나 아렌트는 세계적 석학이 되었으나, ‘인간성’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은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명을 세계에 떨쳤다.
노벨문학상은 인류의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데에 기여한 문학인에게 주는 상이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은 모두 현실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옳고 그름의 경계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남루한 통념을 깨고 비상(飛翔)하는 인간 의식을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진실을 직접 알아보려는 노력은 조금도 기울이지 않는, 지적으로 무능하고 나태한 자들이 ‘지식인’ 행세를 하고, 지적으로는 그들보다 더 무능하고 더 나태하면서 ‘실천력’만 가진 자들이 그들의 ‘지령’에 따라 ‘빨갱이 몰이’와 ‘빨갱이 사냥’에 나서는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이런 자들이 나라의 ‘주류’를 자임하는 형국이다.
‘인간성’에 대해 고민할 줄 모르는 자들, ‘인간성’ 보다 ‘이념’을 앞세우는 자들, ‘권력화한 이념’이 제시하는 언어 말고는 ‘자기의 언어’를 만들어 쓸 줄 모르는 자들, 이런 자들에게는 ‘상’이 아니라 ‘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인류의 합의사항이다.
지금 한강과 스웨덴 노벨위원회를 비난하는 자들은, 인류보편의 ‘인간성’ 자체를 적대함으로써 스스로 ‘인류의 적( 敵)’임을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인 전우용 교수는 우리 시대의 역사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 현안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역사학자다. <우리 역사는 깊다>, <내 안의 역사>, <민족의 영웅 안중근> 등의 저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