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의 마켓잠망경 <68>] 2026년, 투자 안전지대는 없다…‘누가 책임지는가’만 남겨라

올해 투자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리스크는 무엇일까. 금리일까, 정책일까, 기업 실적일까. 문제는 시장의 위험이 커진 것도, 시장이 불안해서도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과거에 안전하다고 여겼던 기준이 모두 붕괴했다는 데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최근 금값 폭락이다. 금은 금융 위기 국면마다 마지막 피난처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안전하다고 믿는 순간, 자산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안전 자산’이라고 일컫는 순간 그 안전성의 프리미엄이 가격에 이미 반영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의 대가’를 치렀다고 믿는 투자자는 오히려 안전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 역설은 주식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코스피 5000’이라는 구호는 많은 개인투자자를 다시 시장으로 불러들였다. ETF (Exchange Traded Fund·상장지수펀드)와 랩 상품 등 각종 투자 상품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흐름 자체는 긍정적이다. 금융 투자가 대중화되는 사회 분위기 역시 반가운 일이다. 다만 대중적 확산에는 성장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투자자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투자 기준을 학습하는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일반 투자자의 판단 기준은 ‘어느 펀드매니저가 유명하다더라’ ‘어느 운용사가 이름이 알려져 있다더라’ ‘어디가 과거 수익률이 높았다더라’ 식에 머물러 있다. 정보 출처 역시 지인, 커뮤니티, 유튜브 등 비슷한 채널에 집중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투자 구조가 점점 더 ‘안전하게 보이게끔’ 설계된다. 손실 방어 문구, 분산투자 강조, 안정적인 운용 전략 같은 표현에서 투자자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위험하다. 안전해 보이는 조건은 불확실성을 덮기 위한 장치일 뿐이며, 실제 리스크는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다고 믿는 순간, 위험은 시작된다.
이런 투자자의 착각을 가장 단순하게 이용하는 형태가 리딩방이다. 리딩방이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특정 주식 종목을 추천해서가 아니다. 더 위험한 점은 투자자가 ‘내가 정보를 골라서 듣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나는 남과 달리 좋은 정보만 골라 듣고 수상한 정보는 걸러 듣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기꾼이 정확히 노리는 것이 바로 그 착각이다.
실제로는 정보가 이미 왜곡돼 있고, 그 정보를 받는 투자자의 위치가 불리하게 설정돼 있다. 투자자는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능하도록 판이 짜여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리 분별을 하려 노력할수록, 오히려 사기꾼의 수법에 더 깊이 말려들 수 있다.
기관투자자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기관을 상대로 한 사기는 더 정교하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허약한데도 투자 구조만 그럴싸하게 짠다. 선순위·후순위를 나누고, 특수목적법인(SPV·Special Purpose Vehicle)을 여러 개 세우고, 법인을 끼워 넣는다. 구조가 복잡할수록 투자자는 ‘안전장치가 많아졌다’ 고 믿으며 더 현혹된다. 그래서 유명 운용사가 내놓는 금융 상품에 줄을 선다.
복잡한 투자 조건을 이해하는 데만 불필요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럴수록 더 매달린다. 투자 조건이 복잡하다는 것은 투자 리스크가 그만큼 복잡하게 많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런데도 투자자는 투자 대상을의심하기보다 이해되지 않는 그 투자 구조를 끝까지 붙든다. 사업 구조 자체는 지속 가능성이 없고 투자 구조만 그럴싸하게 설계된 경우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수치와 촘촘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정형화된 투자 조건은 투자자를 무방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형상 실적을 내세워서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구조로 자금을 조달한 사례는 흔하다. 2024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직후 실적이 곤두박질치며 회수가 어려워진 한 기업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매출과 외형을 급격히 키웠고, 시장에서는 성장성이 검증된 것처럼 비쳤다. 다수의 기관투자자가 이 회사가 발행한 전환사채와 상환전환우선주에 앞다퉈 자금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두 자릿수 내부수익률(IRR)을 보장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여기서 이미 의심이 시작됐어야 했다. 사업 모델이 정상적인 기업, 또 실적이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라면 그런 조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매출의 상당 부분이 정책 보조금에 의존했다면, 그 보조금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회사가 가장 먼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상장을 앞두고 재무제표와 회계 처리 하나하나에 극도로 예민해진다. 투자자와 거래소, 주관사, 감사인의 검증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시점에 연 복리 두 자릿수 수익률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전면에 내거는 회사가 과연 정상적일까. 상장 준비 기업이 가장 피하려는 표현이 바로 ‘수익률 보장’에 가까운 확약이다. 그 약속은 재무적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상장 과정에서 스스로 족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조건을 제시했다면, 이는 자신감이 아니라 비정상 상태임을 의미한다.
안타깝지만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투자자는 이 기업의 외형 성장과 화려한 수치에 열광했다. 회사가 구조적으로 사기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정부 보조금 축소나 정책 변화는 리스크 요인 정도로만 볼 뿐,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을 흔드는 변수로 보지 않았다. 결국 투자받자마자 보조금은 통째로 삭감됐고, 실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실적이 좋다는 이유로, 그리고 투자 구조가 정교하다는 이유로 사기 가능성을 배제해 버린 집단적 착각이었다.
투자 공식 붕괴, 남는 질문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를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렸다고만 치부하기엔 투자자의 과오가 더 크다. 투자자는 ‘하방을 막는다’는 명목 아래 투자 리스크 모두를 작은 기업에 전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그 회사가 수백억원대 투자금에 해당하는 리스크를 감당할 만한 체력이 있었느냐다. 이제 막 정부 보조금으로 매출이 급성장한 영세 기업에 큰 왕관을 씌우고, 그 위에 과도한 희망을 건 것은 아니었을까.
투자자가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내가 완벽한 투자를 골랐다’는 착각이다. 그러나 사기꾼이 노리는 지점이 정확히 그 대목이다. 투자자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부터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 ‘왜 이런 조건을 제시하지?’ ‘정상이라면 이 문구를 쓸까?’라는 질문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올해는 투자의 난도가 높다. 이제는 모든 투자 공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투자자는 온갖 안전장치를 풀고 단 한 가지 질문만 남겨야 한다. ‘이 투자는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 이 질문을 집요하게 놓지 않는다면, 다음 문제가 술술 풀린다. 투자자에게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지우는지, 리스크를 분담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회사는 과연 그 리스크를 질 만한 체급이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투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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