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한국인 첫 그라모폰상 2관왕…“가장 흥미로운 피아니스트”
“세상 모든 것이 연결…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표현되는 것”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이 세계적인 권위의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다.
임윤찬은 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이 시상식에서 첫 스튜디오 앨범 ‘쇼팽: 에튀드’로 피아노 음반 부문과 ‘젊은 예술가’ 부문을 함께 수상했다. 피아노 부문에서 이 상을 받은 국내 연주자는 임윤찬이 최초다. 클래식 음반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지녀 ‘클래식 음반의 오스카상’으로도 불린다.
1923년 영국에서 창간된 클래식 음반 월간지 ‘그라모폰’은 1977년 이 상을 제정해 11개 부문별로 해마다 수상자를 발표해왔다. 후보는 매년 그라모폰 평론가들과 음반업계, 방송계, 음악가들의 추천을 받아 분야별로 선정한다. 먼저 부문마다 6종의 음반을 선별한 뒤 3종으로 압축했다가 시상식에서 1장을 부문별 그라모폰상으로 발표한다. 피아노, 피아노 이외의 기악, 관현악, 오페라, 협주곡, 실내악, 합창, 현대음악, 고음악, 보이스 & 앙상블, 가곡 등 모두 11개 부문이다.
한국인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1990년 실내악, 1994년 협주곡)와 첼리스트 장한나(2003년 협주곡)가 이 상을 받았다.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은 1993년 12살 나이에 ‘젊은 예술가’ 상을 받았다. 역대 피아노 부문 수상자로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알프레드 브렌델, 머레이 페라이어, 우치다 미쓰코, 유자 왕 등이 있다.
그라모폰은 지난달 피아노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음반 3장 가운데 임윤찬이 2022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한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실황 앨범(스타인웨이 앤드 선스)도 포함했다. 한 연주자의 음반이 같은 부문에 2장이나 포함된 것도 그라모폰상 역사상 처음이다. 결과를 보면, 임윤찬이 영국 명문 음반 레이블 데카(Decca)와 전속 계약을 맺고 발매한 첫 음반인 쇼팽 ‘연습곡’ 앨범이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앨범을 단 한 표 차로 누르고 선정돼 사실상 자신과 경쟁한 모양새가 됐다.
그에 앞서 6장의 후보 음반 선정도 유자 왕(‘베르비에 페스티벌 데뷔’ 앨범), 표토르 안데르제프스키(‘바르톡, 야나체크, 시마노프스키’ 앨범) 등 쟁쟁한 피아니스트 선배들과 경쟁한 결과여서 더욱 값지게 평가된다. 지난해 피아노 부문 그라모폰상은 1975년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시마노프스키: 피아노 작품집’이었다.
이날 시상식에서 임윤찬은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연주했다. 피아노 부문에서 임윤찬에게 시상한 팀 패리 그라모폰 부편집장은 “임윤찬이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지켜보는 건 멋진 일일 것”이라며 “큰 대회 수상자는 오랫동안 커리어를 지켜나가기 쉽지 않은데, 그는 이를 뛰어넘었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도 그는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피아니스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윤찬은 수상 이후 소속사 목프로덕션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세상은 모든 것들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듣고 느낀 것들을 포함해 사소한 모든 것이 표현되는 것”이란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저희 부모님의 말투부터 제 눈으로 본 모든 것, 그리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 배운 것, 이 모든 것들이 제 음악에 녹아있다. 이런 큰 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제 가족, 선생님, 에이전시, 위대한 예술가들, 그리고 제 친구들이다. 저와 제 음악은 제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라모폰은 앞서 5월호에서 ‘이달의 앨범’으로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를 선정하며, “이 앨범이 그의 미래에 좋은 징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엄청나게 절제한 표현”이라면서 “유연하고 깃털처럼 가벼우며, 유창하고 열정적인 쇼팽”이라고 극찬했다. 지난해 9월에도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실황 앨범을 ‘이달의 앨범’으로 발표했는데, “격렬하고 까다로운 이 난곡을 기술적 완벽함과 시적 통찰력으로 연주하는 건 대단한 일인데, 안전망이라곤 없는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국제 콩쿠르 준결선에서 이를 해낸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호평했다. 당시 그라모폰의 찬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경륜 있는 피아노 애호가라면 이 음반 소장을 망설이지 않을 텐데, 리스트 음악을 한 마디도 견디지 못하는 ‘리스트 회의론자’들에게도 이 놀라운 피아노 연주를 놓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이날 시상식에서 대상 격인 ‘올해의 음반’ 부문은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의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이 차지했다. 힐러리 한은 기악 부문에서도 수상해 임윤찬과 함께 나란히 2관왕에 올랐다.
그라모폰은 클래식 음반에 관해선 최상의 신뢰도를 자랑한다. 이 잡지가 1977년 처음 시상한 그라모폰상도 단숨에 클래식 음반 분야에서 독보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역사는 짧아도, 대중성을 중시하는 미국 그래미상보다 음악성에 집중하는 그라모폰상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발매 당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클래식 음반도 그라모폰 수상 이후 판매량이 증가할 정도다.
임윤찬은 유럽 공연과 미국 뉴욕 필하모닉 협연 등을 거쳐 오는 12월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지휘 파보 예르비)과 국내에서 협연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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