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터뷰!) 영화 ‘경주기행’의 이정은 배우를 만나다

영화 ‘경주기행’은 8년 전 수학여행을 이후 돌아오지 못한 막내 경주를 위한 엄마 옥실(이정은),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가 가족여행을 빙자한 복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20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이정은을 만나 엄마 옥실의 캐릭터 해석과 촬영 비하인드를 들었다.이정은이 맡은 옥실은 동네 수선집 ‘옥패션’의 사장이자 네 딸의 엄마다.
여리고 다정한 남편 대신 억척스럽게 집안을 일구어낸 강한 엄마다. 막내 경주의 죽음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8년째 일상은 건사하지 못한 채 그놈이 복수만을 바라보고 있다.다음은 이정은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8년 전 시간이 멈춘 옥실

-‘경주기행’에 가장 먼저 캐스팅되고 오래 기다렸던 주역이다.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신수원 감독 영화 제작 현상이 여성 감독의 모범 사례로 알려졌는데, 김미조 감독이 ‘오마주’ 스크립터였다. 데뷔작 ‘갈매기’가 워낙 감독들 사이에서 유명해서 스크립터 하러 온 계획이 있었구나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마주’ 끝날 때쯤 시나리오 보낼 테니까 같이 하자고 하더라. (웃음) 수락하고 1년을 기다렸다. 상업 영화지만 적은 예산으로 진행될 것 같았다.
새로운 얼굴을 등용해야겠는데 신입이 해주기에는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옥실의 분량에 비해 딸들은 서포터 해주는 역할이라 (누구에게 쉽게) 권유할 수도 없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나 싶었는데 하나둘씩 하겠다고 연락 오고, 다들 시간 조정하면 된다고 하길래. 행운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더라. 캐스팅이 완료되자 급물살을 탔고 개봉까지 왔다. 무언의 힘이 밀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을 마친 후 2년의 후반작업으로 개봉일을 잡았다. 김미조 감독의 어떤 점이 믿음 갔나?
생존자 다큐나 책을 권하셨다. 보고서 일종의 글을 읽어봤다. 실제로 가족분들은 보복의 두려움도 있고, 사건도 잊고 싶어 하시더라. 영화처럼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영화가 사회적 인식을 바꿔 주기도 하고 소재로만 이용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도움 되길 바랐다. 상처받지 않고 공감의 눈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영화는 언론 시사 전에 하와이 영화제 때 보고, 후시 녹음 전 음악 없는 상태에서 보고, 총 4번 봤다. 볼 때마다 안 보였던 신도 보이면서 표정도 세심히 관찰되더라. 조연들의 연기까지 기가 막힌다는 것도 보였다. 완성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게 다들 후반 작업의 공들이면 달라진다는 말이 진짜였다. 몰입도를 높이는 건 후반작업의 공이다. 미조 감독님은 개봉에 미쳐 있는 사람, 옥실 같다. (웃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요즘은 감독이 정해진 시간에 모든 것을 실행하는 것도 능력으로 불리는데, 작품 이해도와 현장 진행력이 탁월한 분이시고 능력자다.
-옥실은 평범해 보이나 그렇지 못한 엄마다. 평범한 엄마와 다른 지점이 큰 부담일 텐데..
사실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 그렸던 순간과 일치할까, 내가 잘 구현할 수 있을까, 관객이 공감할까. 계속 의문이 들었다. 만약 당사자였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했고, 복수의 끝까지 가는 인물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배우는 안 가본 길을 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관객은 저의 익숙한 모습을 기억하니까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게 숙제다. 가보지 않을 길이라 수락하게 되었다.

-옥실을 어떻게 해석했나?
감정적인 부분은 아빠에게 두었고 옥실은 감정 절제를 선택했다. 옥실은 집에서 가내수공업 하는 사장이자, 가정의 리모컨을 쥔 경제권 실세다. 딸들에게 고르게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크다. 휴게소에서 잠시 없어진 동주(이연)에게 화낼 때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감정을 크게 표출하지 않고 다부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마지막의 분노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 섰다.
-딸들과 복수를 위해 여정을 나서는 평탄치 않은 기행이다. 멈춰버린 옥실의 시간이 외모에서도 느껴진다.
저는 옥실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실제 저의 큰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객사하였다.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이 밖에서 험한 일을 겪고부터 외출을 끊으셨다. 트라우마가 생긴 거다. 그래서 이 가족이 폐쇄적인 이유,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의 불안감, 이상하게 똘똘 뭉친 이유를 제 경험에 비추어 표현해 보고 싶었다. 같이 가자고 엄마가 꼬신 게 아니라, 자식들과 분리해 본 적이 없어 가족이면 당연히 함께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그래서 옥실은 외모 꾸밀 시간도 없는 거다. 무언가에 몰입했을 때, 다른 것에 신경 안 쓰는 모습을 표출하고 싶었다. 더벅머리에 옷도 잘 갈아입지 않는 모습, 오늘 안에 이 계획이 틀어지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 심취한 모습이다.
-복수를 따라온 딸들의 마음에 공감한 부분도 궁금하다.
부모 의견이 내 의견이고, 어디까지가 내 의견인가 고민하는 첫째 장주가 너무 이해된다. 본인 행복도 찾고 싶지만 불행에 빠진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마음이 공감된다. 엄마는 엄마의 길이 있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둘째 영주나 셋째 동주처럼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기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이해된다. 동주가 자기 태몽은 뭐였냐고 물어볼 때, 저도 오빠들에게 애정이 더 가는 것 같아서 대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엄마 보다 어른의 무게

-공효진, 박소담, 이연과 호흡 맞춰본 소감이 궁금하다.
효진이는 엄마의 오른팔답게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실제로도 챙긴다. 방송, 영화 현장은 저보다 선배라 능수능란하다. 연기 온 오프도 확실하고 즉흥적인 연기도 잘해서 많은 감독이 찾는 든든한 내 편이다. 결혼하고 달라진 얼굴도 보기 좋다.
소담이는 영화에서처럼 어려운 딸은 아니다. 영주는 집에서 뒷받침만 잘해줬으면 뭐든 될 아이인데, 묶어 놓는 기분이라 만만치 않았다. 실제 소담이는 무서운 아이다. (웃음) 딕션이 좋아서 똑똑한 인물 표현을 잘하는데 가끔 매서움이 드는 대사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타율이 높다. 아프고 나서는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연이는 처음 만났는데 실제로 외동딸이라 애교가 많고 사람들의 장점을 잘 파악한다.
선배들의 장점을 흡수하고 싶다고 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연극 판에서 제가 무섭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경계했었는데 지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저도 성장하는 중이라 이들의 성장을 보면서도 많이 배웠다. 배우가 캐릭터와 일체감을 두는 것도 좋지만 간극을 메워가는 성장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막내 경주 역의 황현정과 ‘소년심판’에서 판사와 소년범 사이였다. ‘경주기행’에서 모녀 사이로 재회했다.
현정이가 어릴 때 사진을 다 복사해서 어떻게 자랐는지 히스토리를 전해줬다. 현정이의 전사를 알아두니까, 엄마와 딸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 되었다. 실제 현정이네 집에 갔었다. 엄마한테 애교도 많이 부리는 딸이더라. 물론 어머니는 제가 관찰하고 있는 걸 모르셨겠지만, 모녀의 모습이 저와 경주의 롤 모델이 되었다.
-벌레도 못 잡는 모녀가 살인까지 계획한다. 사적 복수의 결말 호불호도 있을 텐데..
우리 영화는 사적 제재를 권장하고 미덕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 사건을 바라보고 치유의 다양한 방식을 바라보는 영화다. 복수란 여정 안에서 숨겨둔 층위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가족끼리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꼽자면 무엇인가?
요한 씨와 산에서 벌이는 대부분의 장면이었을 거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대답은 안 하고 어려운 장면이라 마음이 힘들었다. 실제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사이여서 다행이었다. 모든 것을 받아 준 요한 씨에게 감사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은 대역 없이 액션을 처음 해봤다는 거다. 여러 작품에서 맛보기 액션, 아줌마 액션, 막 싸움은 해봤지만 이번처럼 무술 감독님의 지도 아래 모든 장면을 소화해 봤다.
연극할 때 장진 감독님이 키도 작고 체구도 안 커서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무술 감독님이 여성 배우들이 신뢰하는 분으로 소문났는데, 마치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처럼 ‘할 수 있다’고 하시면 저도 모르게 하고 있더라. (웃음)

-‘아버지의 집밥’에서는 변요한과 다정한 모자 사이로 등장한다.
영화의 분위기를 전환할 강력한 사람이 온다고 해서 들떴는데 노 개런티인지는 몰랐다. 촬영할 때도 너무 무서워서 장주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간 적 있었다. 요한 씨는 뭐든 만들어올 사람이라 백상현 역할에 걱정 없었다. ‘아버지의 집밥’은 숏 드라마고 사이좋은 모자로 나온다. 극장에 걸릴 줄 몰랐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었다. 가장 바쁠 시기였는데 그 에너지를 연기에 쏟고 그 와중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서 놀랐다. (웃음)
-이정은이 연기하는 ‘엄마’는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엄마’로 불릴만한 중년 배우가 우리나라에 많다. 엄마를 잘 표현하려는 것보다, 다음 세대로 넘기지 않고, 우리 세대에서 어떻게든 잘 처리해 보려고 한다. ‘백번의 추억’의 전근대적인 엄마도 있었지만, 이 시대의 어른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너무 자식에게만 집착하는 걸 보면 이유가 궁금해서 탐구하게 된다. 앞으로도 후대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경주기행’을 선택할 관객에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전해 준다면?
‘경주기행’은 여성 서사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형제나 집안의 가장이라고 이해 못 할 이야기는 아니다. 진심이 닿으면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촬영하고 늘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아쉬운 장면, 반성 되는 것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경주기행’은 볼 때마다 눈물 포인트도 다르고 조연들의 연기도 좋다. N차 관람하시면서 세심한 포인트를 찾아보기 좋은 영화다.
글: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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