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인 박준이 달리 말할 여유 없이, 7년 만에 내놓은 시들 [.txt]
‘더 많은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시적 태세·시감, 전작과 다른 ‘2막의 박준’

시인 박준의 세번째 시집 제목은 ‘마중도 배웅도 없이’다. 첫번째 시집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 두번째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이다. 하나의 절에서 하나의 구로 시집 제목이 물기도 없이 압착되었다. ‘먹었다’던 과거에서 ‘있겠다’는 미래로 오간 시인은, 바야흐로 그 어떤 과거를 배웅하거나 그 어떤 미래도 마중하지 않는다는 듯 새 시집의 제목으로 표상된다. 이별, 사랑, 슬픔, 소외, 산 자들이 흘린 말, 죽은 자가 남긴 말은 박준의 말하자면 ‘시의범절(詩儀凡節)’로 빛을 얻질 않았던가.
어제오늘의 상처를 편지에 적었다가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장마’) 읊는 두번째 시집의 표제시대로다. ‘글이 도착할 즈음 장마를 볼 수도 있겠다’가 바른 독법일망정 ‘글이 도착할 즈음 새로 적었다’로 소요하는 게 시거니와, 훗날 내가, 편지를, 보게 될 당신에게 이미 당도하여 편지를 적었다는 마음의 현재를 포착하고 세공하는 일이 박준이 전념해 온 시적 “소란”이다. 그가 애용하는 시어 ‘소란’을 차용하자니, 30만 독자가 사본 두 시집의 본색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토록 말갛고 곡진한 소란에도 불구하고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들”(‘손금’)이 있더란 사실이다. “끝을 각오하면서도/ 미어짐을 못 견디던 때” “무엇이든 한움큼씩/ 쥐고 보던 시절”(‘은거’)의 급습이랄까. 아무렴 세번째 시집이 회한과 자책으로 시작하는 까닭 되겠다.
“나의 슬픔은 나무 밑에 있고/ 나의 미안은 호숫가에 있고/ 나의 잘못은 비탈길에 있다// 나는 나무 밑에서 미안해하고/ 나는 호숫가에서 뉘우치며/ 나는 비탈에서 슬퍼한다// 이르게 찾아오는 것은/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된다”는 8행짜리 여는 시의 제목은 ‘지각’이다. 과거를 마중하고 미래를 배웅하는 어떤 일은 제아무리 서두르고 수선을 부려도 늦고 말더란 자각이다.
두번째 시집으로부터 7년 사이 사건으로 보자면 죽음들이 있다. 10년 전 시인의 결혼과 3년 전 득녀와는 대비되는, 개별적으로 소중한 죽음을 시로도 “달리 말할 여유나 재간 없고 속절없이”(10일 한겨레 인터뷰) 치렀다. 죽음에 뒤따른 이주가 또 있다. 시간과 공간은 단절하고 전거는 불가피하다. 그 단층 내지 절리의 정동이, 이 시집을 압축하는 한 단어로 꼽힐 법한 ‘멀(어지)다’로부터 파생한다.
시적 화자는 “눈앞에 있는 것이 세상 전부처럼 여겨지는 시간을 다시 보내고 있”(‘쪽’)다. “응시도 미루고 외면도 거두어들이면서 헤매기만 하”여 “속절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과 애를 쓰며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의 사이가 이참에 아주 멀어지기를 영영 아득해져서는 삶의 어느 장면에서도 한데 놓이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약 기운에 “멀리서 온 것과/ 더 멀리 떠나야 할 것이/ 한데 뒤섞”(‘아침 약’)인다. “두고 와야지/ 마음먹었던 것을// 깜빡 잊고 가방에/ 다시 담아”(‘새로운 버릇’) 온다.
위기를 서정으로 묽게 한 전작들과 달리 서정의 위기를 곧이 띄운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의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묻게 될 것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밝힌바 “타인의 슬픔을 더 많은 타인들의 슬픔으로 쓰는 것” “과거에 행복했던 순간을 아주 잘 기억하는 것”이 시인의 알심이라면, 정작 시인 자신에겐 왜 미치지 못하는가. 시단의 아이돌로도 불릴 만큼 많은 독자와 어울렸던 ‘소란’은 이렇게 소진하는가.

답 역시 ‘멀다’에 있어 보인다. ‘멀다’가 공간적 감각이라면 더 오래 가보아야 하고, 시간 감각이라면 더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 2008년 등단 이후 출간한 어떤 글의 모음보다, 박준은 ‘기다림의 서정’을 이참에 궁구하는 듯하다. 그간 박준의 여러 시는 “당신”으로 촉발되고 적분되었다. ‘기다림’은 역설적으로 당신을 “너”로 미분한다. 오래 보고 오래 다가가자니 결결이 아득했던 존재들이 단 하나의 존재로 적중되거니와 “너”의 잦은 등장이 새 시집의 또 다른 차이다. 종국에 “너”는 “나”를 향한다. 죽음의 개인사와 더 흔해진 사회적 죽음의 결과이니, 더 많은 타인들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쓰는 격이다.
“(…)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처음 든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 네가 나를 찾을 필요는 없어 내가 너를 찾을 거야”(‘미아’)라는 시의 위치가 눈에 밟힌다. 첫 시 ‘지각’에게 보란 듯 옆쪽에 배열됐다. 마중도 배웅도 전신은 실상 기다림임을 시인은 ‘믿음’으로 표명한다.
필연, 윤회와 같은 관념이 여러 시에 엿보인다. 관념이 된 시와 시가 된 관념의 거리야말로 멀다. 평자들은 이미 박준의 시에서 소월, 만해, 백석, 허수경을 보아왔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선 박준이 더 보인다 하겠다. 전작들과 닿은 ‘세상 끝 등대’ 연작의 5번째가, 두번째 시집 ‘능곡 빌라’에 이은 ‘능곡빌라 3’이 새로 담겼다. 떠나온 집의 전사며, 잃기 전의 어떤 이야기가 전편들에 있다.
시집 뒤엔 산문 한편(‘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도 수록됐다. 여전히 큰 호응 속에 전국 강연을 다닌 각지의 자취이거나 스스로 내몬 낯선 공간의 감각이다. 그중 서산편 “저녁이 밤이 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만으로 하루가 충분해질 때가 있다” 식이 근래 박준의 ‘소란’일 터. 그것은 얼마나 적막하고 어둡고 무력한가 물어야 바른 독법일진대 그것은 얼마나 고요하고 환하고 무한한가 시집에서 소요한다. 어스름 시어 뒤에 가려진 시인의 사연들은 잠시 모른 채 둬도 될 일, 조금 기다리면 될 일이다.
“모르는 동네에서 이발을 한다 먼저 온 사람이 거울 앞에 앉아 있다 조금 기다려줄 수 있냐고 주인이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어 보였다 잘린 빛들이 바닥을 구르는 오후에 몸을 기댄다 이 동네 사람이냐는 말을 듣고서는 근처에 산다고 답을 했다 이제 스스로 떠나온 곳을 멀다 하지 않기로 한다”(‘동네’)
이 동네와 이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선한 믿음은, 갈라지고 파열하는 이 사회에서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박준 시집의 결코 변치 않는 차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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