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원픽'에서 '먹튀 논란'까지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율주행·소프트웨어 전략을 총괄해온 송창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 겸 포티투닷(42dot) 대표가 전격 사임했다. 정의선 회장이 직접 삼고초려해 영입하고, 그룹의 미래차 구상을 함께 설계한 핵심 참모였다는 점에서 "정의선의 남자"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러나 3년여 만에 남은 것은 '성과 없는 수조원대 수업료'와 '수천억 차익을 남기고 떠난 외부 인재'라는 뒷말이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정 회장의 뒤통수를 친 것 아니냐"는 격한 표현까지 등장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 실리콘밸리·네이버 거친 '스타 개발자'의 화려한 이력
송창현 전 사장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전산학 학사와 퍼듀대 대학원 전산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DEC, HP,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애플에서는 시니어 서버 성능 엔지니어로 일하며 글로벌 빅테크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국내에선 2008년 NHN(현 네이버)에 영입돼 성능고도화랩장, 기술혁신센터장, 리서치연구센터장 등을 거쳐 네이버 CTO와 네이버랩스 대표이사를 지냤다. 검색·지도·로봇·자율주행 등 네이버의 핵심 기술 프로젝트를 이끌며 "국내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네이버를 나온 그는 2019년 자율주행·모빌리티 스타트업 포티투닷(옛 코드42)을 설립했다. 초기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은 시드 투자자로 참여했고, 정 회장은 이 스타트업을 그룹 미래 모빌리티 전략의 퍼즐 조각으로 점찍었다.
>> 포티투닷 인수와 '파격 겸직'… 정의선의 전폭 지원
2021년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서비스를 묶은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본부를 신설하며, 파격적으로 외부 스타트업 CEO를 본부장으로 데려오는 결정을 내렸다. 송창현 대표는 포티투닷 대표를 유지한 채 현대차 TaaS 본부장에 올랐다.
2022년 현대차·기아는 포티투닷 지분 약 80%를 인수하며 사실상 경영권을 확보했다. 공시 기준 인수 금액은 약 4500억원으로, 기업가치는 5700억원 규모로 평가됐다. 이 과정에서 송 전 사장은 자신이 보유한 구주를 매각해 약 1500억원 수준의 현금을 손에 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내부의 '겸직 불가' 원칙도 예외가 됐다. 정의선 회장은 그룹의 기존 룰을 깨고, 송 전 사장이 포티투닷 대표와 현대차 사장(AVP 본부장)을 겸직하도록 허용했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환의 키맨(Key man)"이라는 판단에서였다.
>> 'SDV·자율주행 총괄 사령탑'으로 군림
포티투닷 인수 이후 송 전 사장의 위상은 그룹 내에서 더욱 높아졌다. 그는 현대차·기아의 소프트웨어·자율주행 조직을 총괄하는 AVP(첨단차플랫폼) 본부장으로 승격됐고, 차량 개발 구조를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디커플링(분리)' 방식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을 주도했다.
기존 차량 개발이 기계·전자·파워트레인 중심이었다면, 송 전 사장은 이를 "소프트웨어 플랫폼 위에 하드웨어를 얹는 구조"로 바꾸자고 강하게 주장해 왔다. 그의 제안에 따라 R&D 조직 개편이 진행됐고,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전략 슬로건도 "SDV 전환"으로 재편됐다.
테슬라, 메르세데스-벤츠, 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을 내세우는 가운데, 현대차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정 회장은 송 전 사장을 "그 흐름을 따라잡을 유일한 카드"로 본 셈이었다.
>> 남은 것은 '성과 없는 수조원 수업료'
그러나 화려한 간판과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은 포티투닷 인수, 자율주행·SDV R&D, 조직 전환 비용 등을 감안하면 1조50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테슬라·중국 빅테크와 비교되는 수준의 고도 자율주행 서비스나, 완전히 새로운 수익 모델은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일부 시장 분석에서는 "현대차의 자율주행 내재화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는 냉혹한 평가까지 나온다. 포티투닷이 개발해 온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모빌리티 플랫폼이 상용화 단계에서 흡인력 있는 레퍼런스를 만들지 못했고, 그룹 내 협업도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 "성과 없이 보상만 챙겼다" 내부의 반감
송 전 사장에 대한 내부 시선은 시간이 갈수록 차가워졌다. 사내 익명 커뮤니티 등에서는 "성과도 없이 구주 매각으로 수천억을 챙겨 갔다", "외부 스타 인사에게만 과도한 보상이 돌아갔다"는 불만이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현대차가 포티투닷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송 전 사장이 약 1500억원 수준의 차익을 거뒀다는 추정치는 이런 반감을 더욱 키운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그룹 내부 인재들이 "성과 중심 인사 기조 속에서 구조조정과 압박을 감내하는 사이, 외부에서 온 스타 CEO는 '실패한 프로젝트'를 남기고 현금만 챙겼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는 전언도 나온다.
>> "정의선 뒤통수 쳤다"는 말이 나온 배경
이번 퇴진이 더 큰 파장을 낳는 이유는, 송 전 사장이 단순히 '실패한 외부 인재' 수준을 넘어, 정의선 회장이 직접 발탁한 핵심 참모였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포티투닷 초기 투자 단계부터 송 전 사장을 신뢰하며 장기 플랜을 함께 그려왔다. 그룹 내 겸직 금기까지 깨며 그를 사장단 전면에 내세웠고, 자율주행·SDV 전략 전권에 가까운 권한을 부여했다.
그런 인물이, 자율주행 사업의 성과 논란과 함께 인사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레 "회장과의 면담을 통해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고 밝히며 회사를 떠났다. 업계와 시장 일각에서 "정 회장의 체면만 구긴 채 외부 인사가 수천억을 들고 떠났다", "뒤통수를 맞은 것 아니냐"는 강한 표현이 실명 기사에까지 등장하는 이유다.
>> 송창현이 떠난 뒤… 현대차 자율주행, 원점 재검토
송 전 사장의 퇴진은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SDV 전략이 근본적인 재검토 단계에 들어갔다는 신호로 읽힌다.
우선 AVP 본부와 포티투닷의 후임 구성이 관심이다. 그룹은 자율주행·소프트웨어 개발 과제를 재정비해, 일부는 전통 R&D 라인으로 되돌리고 일부는 글로벌 빅테크·전문업체와의 협력 모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이 '성과주의 인사' 기조를 강화하면서, 그룹 핵심 조직의 경영진 물갈이도 본격화됐다. 국내사업본부, 제네시스사업본부 등 주요 라인이 교체됐고, 전동화·소프트웨어·서비스 분야에서 실질적 실적을 증명한 인사들을 중용하는 방향으로 인사가 재편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자율주행을 독자 내재화해 글로벌 선두권에 오르겠다는 꿈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는 평가와 함께, "현실적으로 테슬라·중국 IT 공룡과의 기술 격차를 인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 남은 질문들… '배신자'인가, '실패한 실험'의 상징인가
송창현 전 사장을 둘러싼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현대차의 막대한 투자와 조직 혼란만 남기고 수천억을 쥐고 떠난 사람"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다. 정의선 회장의 신뢰를 등에 업고, 그룹의 룰까지 바꾸게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회사에 도움보다 부담을 더 많이 안겼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 제조업 대기업이 실리콘밸리식 소프트웨어 조직 문화를 소화하지 못한 실패"로 본다. 외부 스타 인재에게 권한은 줬지만, 내부 저항과 조직 정치, 기존 개발 체계와의 충돌을 관리하지 못한 채 '사람 한 명'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는 시각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이 현대차그룹에 두 가지 숙제를 남겼다는 점이다.
첫째, 자율주행·SDV 전략을 어디까지, 어떤 속도로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재설계다. 둘째, 외부 스타 인재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내부 인재 육성과 조직 문화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기술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다.
정의선 회장의 '원픽'이자, 그룹 미래차 전략의 상징이었던 송창현 전 사장의 퇴진은 그렇게 현대차의 미래차 실험이 맞닥뜨린 현실의 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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