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타코미디 정영준 대표 “버티며 맞은 5주년, 이 '다음'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 사옥 벽에는 새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자로 단 한 줄이 커다랗게 적혀 있다. '코미디는 계속 되어야 한다'. 어떤 장식 없이 간결한 구절이 어쩐지 비장해 보인다. 지금의 코미디가 원활하게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위기감, 그리고 이를 어떻게든 이겨내겠다는 엄숙한 각오가 그 몇 개의 단어 안에 얽혀 있는 것 같아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엉뚱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슬로건에는 뜻밖에도 상상치 못한 '반전'이 숨어 있었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메타코미디 정영준(44) 대표는 “그렇게 거창한 의도는 절대 아니다”며 “건물에 이사를 와 보니 벽면에 간판을 거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철거하는 것보다 새 간판을 다는 게 비용이 적게 든다고 해서 급히 만들어 내건 것”이라고 수줍게 고백했다. 간판의 의도를 제멋대로 해석해버린 행인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비장한 간판을 설치한 주인장의 대화가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아 한바탕 폭소가 이어졌다.
웃음이 잦아들 무렵, 정 대표는 “슬로건을 만든 이유는 현실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우리가 늘 생각해온 주제”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코미디언은 태초부터 생긴 직업이고, 코미디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다. 그렇게 인류의 멸망까지 계속될 존재다. 그 안에서 방법론을 찾고 있을 뿐, 코미디는 지속될 것”이라며 “우리는 코미디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사람들의 좋은 반려로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코미디 머스트 고 온'은 우리에게는 천명이라기보다 발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에 멈추지 않고 3월 중순 개원하는 '메타코미디 아카데미'로 신인 발굴에 나선다. 정 대표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모든 챕터는 다 완성했다. 이제는 고도화, 규모의 성장이 다음 목표”라면서 “더 고도화된 콘텐트, 많은 아티스트를 선보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차례”라며 힘줘 말했다.

“엔터 사업처럼 인재를 키우는 영역은 사기업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배우도, 가수도 사기업에서 뽑고, 만들고, 데뷔시키지 않나. 코미디만은 이런 과정이 방송사에 공채라는 개념으로 위탁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사기업에서 나서서 같이 짐을 짊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이걸 어떤 형태로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 고민했다. 가수처럼 연습생 체제를 해야 하나, 아카데미처럼 더 열어놓고 교육을 해야 할까 싶은 거다. 아카데미 형태를 선택한 것은 다양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코미디 특성 때문이었다. 다양함을 맞닥뜨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더 열린 형태의 아카데미 형식이라면 여러 괴짜들이 찾아와서 재미있는 활동들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Q. 아카데미 필요성은 느껴도 개원까지는 현실적 고민이 따랐을 것 같은데.
“예전에 이런 식의 아카데미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커리큘럼을 시스템으로 1년짜리 코스를 만들고 했던 시도는 거의 처음인 거 같다. 이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다. 한국의 학원들은 입시를 겨냥해서 수익을 발생시킨다. 이 아카데미는 입시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으니까 수익화가 가능할지에 대한 비즈니스적 고민도 분명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 당장 아카데미로 수익을 내기보다는 이 안에서 슈퍼스타가 탄생했을 때 메타코미디의 헤게모니가 조금 더 의미가 있을 것 같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일단 가보자 결정을 했다.”
Q. 커리큘럼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내부 아티스트 중에서 강사로 참여하는 분들이 있다면?
“내부 커리큘럼 막바지 작업하고 있다. 예상은 50명 내외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신다. 교육은 세 단계인데, 초반에는 발성-연기-작법 등 기본기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교육이다. 두 번째는 유튜브-만담-스탠드업-콩트 등 장르화 교육을 한다. 그 이후에는 체득의 단계다. 지금까지 했던 걸 본인 몸에 체화시키고, 기술을 갈고 닦아 예술로 승화시키는 단계다. 기초 단계는 외부 강사나 내부 작가 등이 담당을 하고, 장르 교육부터는 아티스트들이 맡는다. 콩트 부문은 신윤승 씨가, 유튜브 부문은 내부 리드 담당자가 맡는다. 만담 부문은 구정모 씨, 유튜브 예능 파트는 이재율 씨가 담당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이창호 씨, 정재형 씨 등 많은 코미디언이 후배 양성이란 아젠다에 관심이 많은 상태여서 간헐적으로 피드백 세션이나 특강에 참여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고무적인 지점들이 분명 있었다. 사실 창업을 할 때는 몰라서 발을 헛디뎌 보기도 했다. 그러다 가장 최근에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낀 사례는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곽범, 이재율, 이선민이 활약하는 걸 보면서다. 어마어마한 뿌듯함을 느꼈다. 이들을 각각 처음 만났을 때 지하 공연장, 카페 이런 데에서 만났다. 사무실도 없이 회사 콘텐트에 출연시키고, 다 함께 머리 싸매며 콘텐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이들이 코미디언으로서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더라. 그걸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길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아는 형님'은 오래 진행되어온 레거시 미디어 아니냐. 거기에 세 사람이 나가서 재미난 활약을 해준 것이 말할 수 있는 뿌듯함을 준 거다. 또 다른 순간은 2021년 피식대학의 'B대면데이트'가 터진 시기였다. 과거 CJ ENM에서 재직할 때 한 술자리에서 뒷 테이블 사람들이 내가 몸담고 있던 '응답하라 1997'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 '이게 콘텐트의 영향력이구나' 싶었다. 그걸 다시 느낀 게 'B대면데이트' 아닌가 싶다. 세간 사람들이 모두 다 '최준 봤어?' 이런 말을 하는 걸 봤다. 코미디를 벗어나 '국민 유튜브 콘텐트'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B대면데이트'의 성공을 보며 틀린 길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Q. 공연장이나 방송이 주 무대였던 코미디가 유튜브로 중심지를 옮기면서 주목을 받은 1세대 아니냐. 이런 변화가 지금의 행보에 영향을 미친 것인가.
“유튜브에서 'B대면데이트'나 매드몬스터 같은 프로젝트가 마일스톤을 기록했고, 그 이후 유튜브에서 활약하던 코미디언들이 유튜브를 벗어나 레거시 미디어로 진출해 좋은 반응을 얻는 걸 보며 확장성을 체감했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스낵타운(이재율, 강현석), 김동하 등 공연에 대한 목표가 큰 친구들이 많은데 이들의 기술이 점차 갈고 닦아지면서 규모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김동하가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라이프 고스 온'을 통해 서울 블루스퀘어 SOL트래블홀(약 1300여 석)을 가득 채우는 걸 보면서 시대에 맞게 가고 있다고 느꼈다. 코미디는 종합 예술이고, 기본 소양을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는 뾰족하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카데미 과목에 공연, 예능, 유튜브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잘 기능만 한다면 제2의 이재율, 이선민, 김동하를 발굴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코미디언의 숙명이라 생각한다. 코미디는 말로 하는 예술이고, 말은 듣는 상대에 따라 전부 달라지지 않나. 취향이라는 것은 굉장히 예민하고, 개인적이고, 사유적이라 생각한다. 코미디 취향도 그렇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코미디가 나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걸 목표로는 삼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코미디가 지역 방어 식으로 존재해야지, 일 대 일로 마크를 하다 보면 어려움에 봉착할 거라 생각한다. 이건 재능과도 관련이 있다. 음악은 데스메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또 어떤 사람은 그걸 소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나. 코미디에도 이 같은 방식이 적용되는 거다. 그럼 이게 존재하면 안 되는가 묻는다면, 그래도 소수의 취향인 사람이 있다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코미디도 재능에 따라서 많은 사람을 겨냥한 것도, 일부 취향을 겨냥한 것도 있다. 정말 여러 형태가 즐비하게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신만의 코미디 취향을 즐길 수 있는 터전으로 메타코미디를 만들고 싶다. 이게 사실상 장기적인 꿈이다. 아카데미로 온 사람들이 자신의 지향점, 재능을 알아서 어떤 형태의 코미디를 어떻게 해가야 할지를 우리와 함께 찾아갔으면 하는 거다.”
Q. 회사 사옥 벽면을 채운 '코미디 머스트 고 온'이란 슬로건을 인상 깊게 봤다. 코미디가 계속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코미디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구절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는 서로 말이 조금씩 다르다. 다만, 이 간판을 세울 때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일본 영화를 오마주 했다. 저는 코미디언이 태초부터 생긴 직업이라 생각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우르르 까꿍' 하면 아이가 까르르 웃지 않나. 그것 또한 코미디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 웃음을 주고 싶다는 건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공연이든, 매체든 형태가 계속 바뀔지언정 이 역할은 인류의 멸망까지 계속될 거라 생각한다. 우린 그 안에서 방법론을 찾고 있는 것뿐이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도를 어떻게 잘 전달할지 등을 고민하며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면서 사람들의 인생에서 반려로서 코미디가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거다. '코미디 머스트 고 온'은 천명이라기보다는 발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걸 우리에게 계속 숙제처럼 안겨주는 말이다.”

“엔터테인먼트의 기본은 '노바디(Nobody)'를 '썸바디(Somebody)'로 만들어가는 일련의 선이라 생각한다. 케이팝 대형 엔터테인먼트들이 연습생을 성장시켜 데뷔시키고, 공연하는 그 일련의 생태계가 바로 엔터테인먼트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한 챕터가 비어 있었다. 이제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챕터는 다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고도화, 규모의 성장이 다음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산해내는 콘텐트들도 고도화되고 더 많아져야 한다.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 중이다.”
Q. 규모 성장에 대한 목표가 있다면 코미디언이 아닌 타 영역 아티스트들도 영입할 의지가 있나? 코미디 장르를 주로 소화하는 배우 등이 영입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원래도 희극 연기를 하는 배우에는 관심이 워낙 많았다. 언젠가는 키워 내기도 해야겠지만, 문제는 희극 드라마가 한국에서 많지 않을뿐더러 배우 매니지먼트는 또 다른 영역이지 않겠나. 제대로 된 아젠다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스티브 카렐처럼 코미디언으로 시작해서 배우가 된 경우가 있지 않겠나. 'SNL 코리아'에도 김원훈 등은 코미디언이지만, 배우들이 고정 출연하기도 한다. 경계는 그때마다 다르다. 본인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경우는 '범 코미디'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런 배우들이라면 언제든 함께하고 싶다.”
Q. 올해로 메타코미디 설립 5주년을 맞는다. 행보를 지켜보는 대중에 한마디 남기자면?
“올해 7월에 만 5년이 된다. 많은 사람이 회사가 5년이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는 건 아니게 된다고, 그에 따른 묘한 안정감이 생긴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 자체를 더 즐기면서 하게 된다고 조언해줬다. 그래서 5주년이 되기만을 기다리면서 버텨왔다. 이놈의 안정감은 언제 오나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안정감은 없고, 쉴 틈 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며 발을 구르고 있다.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우당탕탕 재미있는 일, 혹은 시끄러움을 만들어 내면서 한국, 그 너머 글로벌 코미디 세계에 뿌리내리면서 열심히 나아가도록 노력을 해볼 작정이다. 그 행보에 있어서 응원은 아니더라도 어여삐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유지혜 엔터뉴스팀 기자 yu.jihye1@jtbc.co.kr
사진=메타코미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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