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사람은 어찌해도 죽는다’는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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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정부, 유통업계, 캠핑업계가 공동으로 자살 예방을 위해 번개탄을 오프라인 매대에 진열하지 않고, 구매 요청이 있을 경우 꺼내 판매하는 '비진열 판매'를 도입한다는 뉴스였다. 사실 이와 같은 번개탄 판매 제한을 통한 자살 예방 정책은 지난 20년간 정권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된 것이고, 이와 유사한 정책은 홍콩,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이다.
이 때문에 총기 접근을 제한하거나 번개탄 구매, 고층 건물, 교량 접근을 어렵게 하는 '수단 제한'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권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자살 예방 전략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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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의 10분’ 개입의 중요성

“자살을 막는다며 겨우 내놓은 대책이 번개탄 판매 금지냐?”
지난달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정부, 유통업계, 캠핑업계가 공동으로 자살 예방을 위해 번개탄을 오프라인 매대에 진열하지 않고, 구매 요청이 있을 경우 꺼내 판매하는 ‘비진열 판매’를 도입한다는 뉴스였다. 또한, 온라인으로 번개탄 검색 시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를 안내하는 배너와 문구가 최우선으로 노출되는 것이 협약에 포함되었다. 사실 이와 같은 번개탄 판매 제한을 통한 자살 예방 정책은 지난 20년간 정권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된 것이고, 이와 유사한 정책은 홍콩,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이 언급될 때마다 이는 여론의 냉소에 직면하곤 했다. 누리꾼이나 정치인뿐 아니라, 심지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자살을 막으려면 번개탄을 막고 다리 난간을 높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쉽게 말하곤 한다.
실제로 자살은 정신 건강 문제 외에도 사회경제적·구조적 요인의 영향 또한 크게 작용하므로, ‘사는 세상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맞는 말이다. 또한 직관적으로, ‘죽으려는 마음을 먹으려는 사람에게서 수단을 빼앗는다고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죽을 사람은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죽을 길을 찾는다”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미신이며, 연구들은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에, 특정 수단이 차단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은 급격히 낮아진다. 자살 충동은 매우 짧은 시간(대개 1시간 이내, 평균 10~20분)에 급격히 고조되었다가 사라지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시간에 개입하면 충동이 완화되고, 결과적으로 추가적인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도 줄어든다. 이 때문에 총기 접근을 제한하거나 번개탄 구매, 고층 건물, 교량 접근을 어렵게 하는 ‘수단 제한’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권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자살 예방 전략 중 하나로 평가된다.
홍콩은 자살 수단 제한 방법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다. 고층 건물의 난간을 높이고 번개탄 구매를 어렵게 하는 한편, 지역사회 기반의 예방 정책을 병행한 결과, 2000년 이후 20년에 걸쳐 자살률을 약 40% 가까이 낮추는 데 성공했다. 현재 홍콩의 자살률은 한국의 절반 이하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스크린 도어를 설치한 이후, 지하철 선로에서의 자살이 90% 이상 감소했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정신 건강 위기가 문제로 대두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은 자살률 또한 전세계적으로 상승하고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난 10년에 걸쳐 선진국들은 대부분 자살률이 낮아지거나 정체된 수준이다. 이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범정부 차원의 자살 예방 노력, 두터워진 복지망과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이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예외인 두 국가가 바로 한국과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자살률이 30% 이상 증가했다.
미국에서 자살률을 낮출 수 없는 근본적 원인은 총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이 들려오는 미국이기에 상상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정작 총기 사망의 58%는 자살로, 타살(약 38%)보다 훨씬 높다. 또한 전체 자살 사망의 절반 이상이 총기에 의해 발생한다. 총기는 치명성이 매우 높아 자살 시도 시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90%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총기 규제 없이 미국의 자살률을 의미 있게 낮출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아니요’라고 답할 것이다.
이제 ‘총기’를 ‘고층 건물’로 바꿔보자.
한국은 어디에서나 고층 건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라다. 고층에서의 투신은 치명률이 매우 높다(약 70~80%)는 점에서 총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총기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층 건물이 치명적인 자살 수단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로 국내 자료를 보면, 전체 자살에서 투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5% 안팎으로 두번째로 흔한 자살 수단이다. 또한 이 문제는 청소년에서 훨씬 더 두드러진다. 최근 증가세가 뚜렷한 청소년의 자살률 흐름 속에서 위기에 처한 청소년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고층 건물로의 접근 제한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발의한 ‘생명의 울타리 3법’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법안은 ①기존 건물 옥상에 추락 방지 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②교량 투신 방지 시설 기준을 강화하며, ③번개탄, 부탄가스 등 자살 위해 물건의 청소년 대상 온라인 판매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더 근본적으로는 전문 상담교사 배치 등 청소년의 정신 건강 회복을 위한 대책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자살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심리사회적 요인이 얽힌 복합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이를 심근경색에 비유해보자. 심근경색 역시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에서 더 높은 발병률을 보인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기 어렵고, 비만·당뇨·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 더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대응에는 사회경제적 개입, 생활 습관 개선, 1차 의료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응급 상황에서의 즉각적 처치 없이 심근경색 피해를 막을 수는 없다.
자살 예방도 마찬가지다. 사회경제적 정책과 함께, 건강한 정신을 위한 생활 습관, 정신 건강 의료 서비스 접근성 강화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죽음을 막고 시간을 벌어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개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바로 수단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자살률 감소를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설정한 정부라면, 더 과감하게 앞장서야 한다.

나종호 | 미국 정신과 전문의이자 중독 정신과 전문의. 아픔을 고백하면 약점 잡기보다는 함께 공감해주고, 그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저서로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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