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주로 이용되는 임대 방식에 월세와 전세가 있습니다. 월세는 집을 빌린 세입자(임차인)가 집을 빌려줄 집주인(임대인)에게 일부 보증금을 맡긴 뒤 매달 일정 금액의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이고,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임대료 지급 없이 매우 큰 금액의 보증금을 맡기는 방식입니다.
두 방식 모두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데, 얼핏 생각하기에 전세 제도는 꽤 이상합니다. 세입자는 무엇을 믿고 집주인에게 집값의 절반 가까이 되는 큰돈을 맡기는 것이고, 집주인은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받았던 그대로 돌려줄 보증금만 받고 집을 왜 빌려주는 걸까요?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투자해서 월세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면 합리적이나 손실을 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전세는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빌려준 뒤 이익을 취하는 월세나 자동차 렌트, 은행 대출 등과는 대단히 다른 방식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전세 제도처럼 운용되는 나라는 대단히 찾기 어려운데, 그나마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 제도와 같은 사례 정도가 있긴 합니다.

우리나라 전세 제도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때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때 당시 대부분 사람은 농업에 종사하며 자급자족했는데, 가끔 돈을 꾸거나 토지, 집 등의 부동산 매매와 같이 큰 금액이 오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돈을 빌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금융기관이 없었고, 부동산 정보 앱과 공인중개사도 없었습니다. 현대와는 많이 달랐기에 이에 맞춰서 독특한 대출 방식과 거래 방식이 생겼는데, 하나는 전당이고, 하나는 환퇴입니다.

전당은 물건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 뒤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갚지 않으면 담보의 소유가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넘어가는 방식입니다. 당시 전당의 대상은 대체로 토지, 가옥과 같은 부동산이나 배와 같은 고가의 물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환퇴는 토지를 판매한 사람이 원하면 일정 기간 내(*보통 몇 년) 금액을 환불해주고 토지를 되찾는 조건이 붙은 환불보증 계약입니다.
일부 연구자는 이러한 전당이나 환퇴가 전세의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전세와 일부 비슷한 부분은 있으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전당의 목적은 대출인 거래입니다. 따라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 부동산이나 물건 소유권 등이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온전히 넘어가는데, 전세는 집 사용이 목적인 거래이므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도 세입자는 집 소유권을 완전히 받지 못하기에 성격이 다릅니다.

또 환퇴는 판매액을 환불받는 조건으로 다시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부분에서 전세와 얼핏 비슷하나 가옥이 아니라 주로 토지 매매시에 이루어지는 계약이라서 성격이 다릅니다.

어쨌든 우리가 생각하는 전세와 유사한 형태의 임대차 계약은 늦어도 18세기에는 확실히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각 군영이 장교들의 거주처를 제공하기 위해 값을 내어 세를 얻었다가 장교가 해직되면 세를 돌려받거나 이후 다시 사용될 것을 생각하여 유지한다. 장교가 빌려서 들어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장교에게 집을 제공하기 위해 군영이 세를 내고, 사용 목적이 끝나면 세를 다시 돌려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고죄로 처벌받은 죄인 최수만에게서 압수한 가옥에 세가 걸려 있어서 정부가 거주자에게 배상해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압수한 가옥에 류심이란 사람이 세를 내고 살고 있다가 제삼자인 이홍이란 사람에게 세를 받고 그 집을 내주었는데, 최수만의 집이 압수당한 후 이홍은 류심에게 소송을 걸어 세를 돌려받기로 판결받았습니다.

하지만 판결이 난 시점에 류심은 이미 사망했고, 그 아내는 원래 살던 집을 이홍에게 주고 길바닥에 나앉게 됐습니다. 정부에서는 이를 딱하게 여겨최수만의 가옥을 매각한 뒤 그 금액에서 최수만이 원래 세로 받은 금액을 류심의 아내에게 지급해주었는데, 요즘으로 따지면 변제를 해주었습니다.
분명하게 이러한 방식의 임대차계약을 전세라고 표현한 최초의 기록은 국권피탈 직후인 1910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조선관습조사보고서(朝鮮慣習調査報告書)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옥 임대차에는 전세와 월세 두 종류가 있고, 전세는 조선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는 가옥 임대차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대차시에 세입자(차주)가 일정한 금액을 집주인(가주)에게 위탁하고 별도로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가옥 반환 시에 그 금액을 반환받는 것이며, 기간은 통상 1년"이라고 했습니다.

즉,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세 제도가 광범위하게 운용되고 있었고, 여러 유사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중 세입자의 권리가 확실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영역도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갚지 못해도 권리를 입증할 수 없으면 집을 보호받을 수 없었던 것과 전세금 미반환 시 세입자의 권리를 '~한 것 같다'와 같이 추정하여 쓴 것으로 봤을 때 그러합니다.
이러한 전세 제도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존재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환경 때문입니다. 한국은 광복 직후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고도의 경제 성장은 통화 팽창과 고금리를 동반하는데, 인구까지 팽창하면서 집값도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목돈은 있으나 집을 사기 어려운 세입자들은 추가 대출 없이 집수리비와 월세를 아낄 수 있는 전세를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부동산 수익률은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제공하는 금리를 웃돌았고, 때로는 그 이상의 수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집주인 입장에서는 은행의 비싼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대출을 받기보다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활용한 레버리지 투자가 합리적이었기에 전세를 선호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고, 계약만 잘 지켜지면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만족할 수 있었기에 하나의 임대차계약 방식으로 지금까지 유지된 것인데, 계약이 지켜지지 않거나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회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여기까지 한국에서 전세 제도가 어떻게 유래됐는지와 유지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김한빛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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