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일한 호텔에서 날아온 고소장”…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씨 인터뷰

전지현 기자 2023. 3. 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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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4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무료 조식 행사를 연 고진수씨(50). 세종호텔지부 제공

일식조리사 고진수씨(50)는 20년간 근무했던 호텔 주방이 아닌 호텔 앞 텐트로 출근한다. 고씨는 세종호텔이 2021년 12월 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를 이유로 식음료사업부를 폐지하며 해고한 12명 중 한 명이다. 1년 넘게 복직 투쟁을 이어 온 그는 지난 2일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와 관련해 조사할 것이 있다는 전화였다.

고씨와 해고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24일 호텔 앞에서 ‘무료 조식 서비스’ 행사를 가졌다. 세종호텔은 식음료사업부 폐지 이후 조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텐트에 있는데, 아이 손잡고 호텔에서 나온 외국인 손님이 편의점에서 우유랑 빵을 사들고 들어가더라고요.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16일 기자와 만난 고씨가 말했다.

복직 투쟁을 알릴 겸, 호텔 손님들에게 좋은 기억을 선사할 겸 작년 11월 처음 시도해 본 무료 조식 행사는 반응이 좋았다. 호응에 힘입어 호텔의 대목인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도 고씨와 동료들은 조식에 나가던 오믈렛·써니사이드업·샌드위치·소시지 등을 호텔 앞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말이 고씨는 놀랍지 않았다고 했다. “노조 지부장을 맡고 있는데, 이미 경찰에 가서 들락거릴 일이 많아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16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 농성장에서 만난 고진수씨(50).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그는 남대문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 전지현 기자

고씨가 의아한 건 혐의 내용이다. 세종호텔은 관련 전단지를 행사 전날 호텔 내부에서 배포한 시민단체 활동가를 고소했는데, 호텔에 함께 들어가지도 않은 고씨가 ‘공동 정범’으로 함께 고소된 것이다. 호텔 측은 활동가가 12월23일 농성 천막을 다녀간 것을 문제삼았다. 호텔 측은 “회합을 했다. 해고자 복직의 유일한 이해당사자는 고 지부장”이라며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공동정범”이라고 소장에 적었다.

고씨는 “터무니 없고 기가 막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이전에도 두 차례 같은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고, 이브 날은 오히려 사람이 너무 몰릴까봐 걱정했다고 했다. 그는 “활동가 분이 안에서 더 알리기 위해 노력한 건 본인의 의지에 따른 연대 활동이었을 텐데...”라며 복잡한 심경을 보였다. 고씨는 “과거에도 호텔이 노동조합 활동을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한 적이 있다”며 “호텔은 사실상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데, 노조 활동에는 유독 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최소 15년 이상 호텔에서 일해온 해고노동자들은 오랜만에 조식을 준비하며 “이 일이 정말 나에게 소중한 일이었구나. 옛날엔 반복되는 일상이라 그걸 몰랐다”는 말을 서로 나눴다고 했다. “조식을 받아가신 분들이 기뻤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고씨는 말했다.

해고노동자들은 “관광객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고, 4성급 호텔인 세종호텔이 등급을 유지하려면 식음사업장 운영을 재개해야 하는데도 호텔이 호텔 영업을 정상화하고 있지 않다”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인정해 세종호텔 측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불복해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지난 15일 호텔 앞 농성장엔 3번째 철수 계고장이 날아왔다.

고씨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일터를 정상적으로 지키기 위해”라고 했다. “코로나 이전엔 200명이 넘는 정규직이 일하던 곳이 이젠 사람도 줄고 비정규직도 늘었다”며 “정규직으로 노조하기도 어려웠는데, 비정규직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도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힘을 내봐야죠.” 고씨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조사를 받으러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향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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