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 너머의 색채적 존재론, 신이철 작가

<안현정의 아트픽> 안현정 미술평론가(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실장)가 추천하는 작가입니다.

안현정(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오일파스텔을 손끝으로 문지르는 감각은, 마치 흙을 만지며 형태를 잡아가는 도자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손의 촉각, 재료의 반응, 예측 불가능한 흐름. 신이철 작가의 작업은 바로 이 손끝의 감각을 통해 회화와 도예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도예는 늘 ‘흙’이라는 물질성과의 협업이었다.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입히며, 불 속에서 예상과 예측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은 작가에게 하나의 ‘감각적 세계’로 체화되었다. 신이철의 전시 《Zero to One》은 그러한 공예적 훈련의 토양 위에, 평면 회화라는 전혀 다른 땅을 일구고자 한 시도이다.

그것은 단지 재료의 전환이 아니라, 조형 언어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고, 회화와 공예 사이에 존재하는 통상적 경계를 해체하려는 채집된 변이의 변주다.

신이철 작가는 전통적인 도예의 규율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도자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표면의 정제와 형식미보다는, 오히려 흙이 가진 유동성과 불확실성, 유약의 흐름과 농도 차이가 만들어내는 우연성에 주목한다.

이 특성은 작가가 회화라는 장르에 진입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발현된다. 《Zero to One》에 출품된 평면 작업들은 단순한 캔버스 회화가 아니다. 그것은 도자의 손끝 감각이 물감과 매체에 옮겨지며, 평면 위에서 다시 입체적 리듬으로 확장되는 순간의 기록이다. 그 회화들은 완성보다 ‘생성’에 가깝고, 구상보다 ‘에너지’에 가깝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이철의 작업은 단순히 장르 간 혼합(hybrid)을 넘어서, 새로운 예술적 문법을 생성하는 창발적 시도로 읽힌다. 도자 재료의 유기적 감각을 화려한 색채와 페인터리한 제스처로 번역한 그의 평면작업은 일종의 감각적 언어 실험이다. 특히 회화적 즉흥성, 붓질의 에너지, 드로잉의 생동감은 그가 익숙했던 조형적 고요함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역설을 제시한다. 작가는 말한다.

“재료는 길을 제시하되, 예술가는 그 길을 넘어서야 한다.” 이는 곧 이번 전시의 핵심적 태도를 응축한 선언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인 《Zero to One》은 단순한 창작의 시작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0이라는 무의 상태에서 1이라는 생성의 순간으로 도약하는 창조의 에너지, 즉 nothingness to being이라는 미학적 서사이자, 창작 주체로서의 자기 갱신의 메타포다. 흙이 가진 원형적 물성과 색채의 비물질적 감각이 만나는 지점, 그것은 단지 공예의 확장이 아니라, 회화의 또 다른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이다.

신이철은 이미 도자 분야에서 감각적 형상과 색채의 자유를 통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한 작가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익숙함을 해체하며 ‘다시 그리기’를 택한다. 평면이라는 공간 안에서 흙과 유약이 보여주던 유동성, 그 통제 불가능한 우연의 미학을 붓과 안료로 다시 실험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대공예의 가능성을 회화적으로 재정의하는 순간이며, 물질과 이미지 사이를 넘나드는 이중 언어의 창조다. 《Zero to One》은 신이철 작가의 회화적 출사표이자, 장르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시대에 작가가 선택한 ‘예술적 존재론’이다.


Happy being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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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flower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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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 mutation (변이채집), 도자설치 -2

Collecting mutation (변이채집), 도자설치

이미지의 박제술, 회화와 도자를 연결한 초기작, 2005

이미지의 박제술, 회화와 도자를 연결한 초기작, 2005-2

이미지의 박제술, 회화와 도자를 연결한 초기작, 2005-3

이미지의 박제술, 회화와 도자를 연결한 초기작, 2005-4


신이철 작가


신이철 홍익대 교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도예전공)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워싱턴 주립대학교 도예과 석사학위를 받은 후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 조교수를 역임했고 베이징 Cup One Space, 아부다비 Art Hub Gallery, 부티크 모나코 미술관, 시애틀 하워드 하우스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Korea Tomorrow, 세라믹스-클라이맥스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청년타임스 정수연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