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꿀매 먹으러 김포랑 대전 갔다왔던 필붕이 기억하냐?

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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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대구다 시발꺼




때는 바야흐로 엇져녁


아는 사람한테 꿀매를 물어다 주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장터를 뒤져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핫셀 120mm Makro-Planar'

핫셀 부자 렌즈 셋의 트릴로지 40 80 120중 그 120이었다.

마크로 렌즈지만 마크로 기능은 개나 줘 버리고, 화질로 승부를 본다는 그 상남자 렌즈.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를 마음에 품어왔다.


카메라 중독증 환자들의 증세 중 하나는, 지금 당장 필요하거나 살 생각이 없더라도 관심 가던 매물이 올라오면 일단 들어가 본다는 것이다.

나도 중증이므로 무심히 게시글을 클릭했다.

그리고 본 글자.

'50만원'


내가 잘못 보는가 싶었다.

120미리를 150미리 가격에?

부르주아의 포트레이트 렌즈를 프롤레타리아 가격에?

연락을 아니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남들보다 먼저 '안녕하세요~ 핫셀 120미리 팔렸나요?'를 보내야 한다.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을 뚫고 지하에 머무른 지 오래지만 그따위건 고려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단 질러야 한다'

판매자한테 답장이 왔다.

문자 답장이 아니라 전화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지만, 일단 받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핫셀 사신다고요? 지역이 어디신데요? 나는 대굽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서울인데, 제가 내일 내려 갈게요."

"내려온다고? 대구로? 내일요?"

"네 내려가서 직거래 할게요. 저는 택배거래를 안해서요. 그게 편하지 않겠습니까? 렌즈 상태는 괜찮죠?"

"아---- 렌즈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내가 아껴서 썼어요. 내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사협 등록된 지 nn년이 넘었고......"

역시 예상대로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었다.

하 씨발 거기다 '사협 등록 작가', '지역 사진 협회 지부장'...

거래가 영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깨끗한 120미리를 50에 파시는 분이라면 대한민국사진대전 수상자라도 괜찮다.

KTX 푯값이 비싸다.

할인 혜택을 받는 시간대를 찾아보았다.

5시 27분 서울역 출발.

동대구엔 7시 20분쯤 도착 예정이다.

그래 뭐.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오전에 거래하고 카페같은데 가서 자소서 쓰다가 점심먹고 올라오면 된다.

판매자분도 아침에 일찍 거래하는 거 좋다고 동대구역에서 7시반에 만나기로 했다.

기차표를 발권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새로 렌즈를 사면 테스트를 해봐야 하니까 500cm 바디셋 챙기고

새로운 동네에 가니까 서터릿도 찍을 겸 지랄삼도 챙기고

자소서 써야되니까 노트북도 챙기고.

바리바리 싸둔 가방을 오도바이에 실어 두고 이른 잠을 청했다.

오늘 아침, 4시 반에 일어나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어제 먹다 남은 피자를 데워 먹고 기차를 탔다.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2시간 밖에 안걸리고.

이것저것 좀 깔짝거리다 보니 대구에 도착했다.

잠시 라운지에 앉아 판매자분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출사 조끼를 입고 아이보리색 부니햇을 쓴 분이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누가 봐도 나를 찾고 계셨다.

어제 전화로 강의 시도를 했던 것과는 다르게 첫인상이 매우 신사적인 분이었다.

커피 한잔을 권했으나 사양하셨다.(사줬으면 돈존나아까웠을뻔)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렌즈를 받아들었다.

오! 첫인상은 나쁘지 않다. 호환 후드에 정품 필터, 깨끗한 외관~

이거 렌즈알을 기대해볼만 하다.

뒷캡을 열고 후레쉬를 비췄다.

아씨발.

헤이즈다.

존⃫나⃫ 많은 양의 헤이즈다.

곰팡이다.

존⃫나⃫ 많은 양의 곰팡이다.

싱글벙글 하던 표정이 급속도로 썩어들었다.

그런 내맴도 몰라주고 판매자분은 싱글벙글 "렌즈 깨-끗하지요?"라는 대사를 던졌다.

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

수리하는 상상을 해봤는데, 수리점 사장님이 '이건 다는 못지워요' 하시는 장면이 떠올랐다.

'손절' 해야한다.

판매자께 말씀드렸다.

판매자는 차가운 방 안에 있다가 밖에 나와서 낀 성에라고 했다.

오늘 대구 아침기온이 17도였다.

"내가 사진작가 협회 사람인데"로 시작하는 강의가 막 시작되려 했다.

두말 안하고 "죄송합니다. 저는 못 사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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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가 져서 일단 동성로쪽으로 와 봤다.

뭉티기 먹고 싶었는데 뭉티기는 커녕 아침에 연 가게가 드물었다.

그래서 따로국밥 먹으러 갔다.

이거 11000원이었는데 돈존나아까웠음.

야 대구사는 필붕이들아 이거 걍 선지국이던데?

그래도 선지 자체는 내가 먹어본 선지중에 제일 신선했었음.

이따 점심때쯤 올라갈건데 올라가기 전에 간단히 뭐 하고갈만한거 추천받는다.

딱히 없다그러면 걍 동성로에서 즉석야호코나 하다갈래.

긴글 읽어줘서 고맙고 읽어준 게이들은 개추나 박아주라

꿀매 못먹어서 생긴 아픔은 개추로 달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