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7 LPBA 시즌의 막이 오른 첫날, '당구 여제'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5월 21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 김가영(하나카드)은 이유주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하며 준결승 티켓을 거머쥐었다. 단순한 8강 통과가 아니다. 1세트 2이닝에 11점을 모조리 쓸어 담는 퍼펙트큐로 경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이날 대결의 결말은 사실상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우승 후보 0순위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김가영이 LPBA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은 건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직전 2025-26시즌에만 우리금융캐피탈 챔피언십, SY 베리테옴므 챔피언십,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그리고 월드 챔피언십까지 네 개 대회를 연달아 석권하며 시즌 4승을 추가했다. 이로써 통산 18승. 여자 프로당구 역사에서 전례가 드문 지배력이다.
이번 2026-27시즌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김가영은 "가능하다면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빈말처럼 들릴 수 있는 문장이지만, 지난 시즌의 성적표를 보면 그것이 허풍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올 시즌 그가 공개적으로 선언한 목표는 두 가지다. 통산 20승 달성, 그리고 누적 상금 10억 원 돌파. 개막 첫 경기부터 4강에 안착한 지금, 두 목표 모두 현실적인 범주 안에 있다.
LPBA라는 무대 자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여자 프로 당구는 PBA 출범 이후 빠르게 팬층을 넓혀 왔고, 그 과정에서 김가영은 스타 플레이어를 넘어 리그의 얼굴로 기능해 왔다.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중계 시청률과 현장 관람 인원이 눈에 띄게 오른다는 것은 이미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날 경기 결과를 수치로 정리하면 이렇다. 1세트: 퍼펙트큐(2이닝, 11점 일괄 득점) 달성 후 세트 선취. 2세트: 11-6(9이닝) 승리. 3세트: 11-5(8이닝) 승리. 세트스코어 3-0. 이날 김가영의 애버리지는 1.737. 3세트 합산 기준으로 고른 공격력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특히 퍼펙트큐는 단순한 득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이닝에 해당 세트의 남은 득점을 모두 완성하는 것으로, 상대 선수에게 공격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리적 압박 효과가 크다. 세트 초반, 그것도 2이닝이라는 이른 시점에 이를 달성했다는 것은 이날 김가영의 컨디션과 집중력이 모두 최상위권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준결승 상대는 서한솔(휴온스)이다. 서한솔은 8강에서 일본의 히가시우치 나쓰미(크라운해태)를 3-1로 제압하고 1년 11개월 만에 4강 무대를 밟았다. 반대편 대진에서는 김민아(NH농협카드)가 용현지(웰컴저축은행)를 3-0으로 완파했고, 이화연이 김보미(NH농협카드)를 3-2 풀세트 접전 끝에 꺾으며 커리어 첫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이화연의 종전 최고 기록은 2022-23시즌 16강이었다. LPBA 준결승은 22일 오후 3시 진행된다.

김가영의 경기를 여러 번 지켜보면 한 가지 패턴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불안한 흐름을 억지로 바꾸는 선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흐름 자체를 만들어 내는 선수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퍼펙트큐를 통해 1세트를 선제 장악한 순간, 경기의 기세는 이미 김가영 쪽으로 기울었다. 이후 2세트, 3세트는 상대가 추격을 시도했지만 점수 차를 좁히지 못했다. 실력의 격차보다 더 무서운 건 '이미 지고 있다'는 심리적 무게다.
준결승 상대인 서한솔은 1년 11개월 만의 4강 복귀전이라는 점에서 모처럼 기세가 살아 있는 선수다. 오랜 공백 후 주요 무대를 밟는 선수가 오히려 부담 없이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필자는 김가영의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기량 때문만이 아니라, 김가영이 지금 이 시즌의 '루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개막전부터 준결승에 직행한다는 것, 그것도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올라온다는 것은, 몸과 감각이 이미 시즌 모드에 완전히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당구는 컨디션의 미세한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종목이다. 애버리지 1.737은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통산 20승 도전은 이제 구체적인 일정의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

팬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국내 당구 팬들 사이에서는 "김가영 결승 진출은 기정사실, 누가 상대가 되느냐의 문제"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동시에 이화연처럼 16강이 최고 성적이던 선수가 커리어 첫 4강을 밟은 사실도 화제다. LPBA가 단순히 김가영 혼자의 무대가 아니라 새로운 이름들이 치고 올라오는 경쟁 구도임을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오히려 김가영의 독주가 더욱 돋보인다. 도전자들이 성장할수록, 그것을 제압하는 챔피언의 가치는 높아지는 법이다.
22일 오후 3시, 김가영은 또다시 코트에 선다. 통산 19승과 결승 진출이 걸린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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