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도시 여행, 나오시마 & 오기지마
예술의 바다 세토우치해에서 만난 두 섬.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예술 작품들은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했던 듯, 섬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예술이 흐르는 섬
사람들은 닿지 않는 것에 열망하고, 숨겨져 있는 것에 궁금증을 품는다. 너무 드러나 당연한 것보다 수고로움을 거쳐서 만나는 것을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다카마츠 여행 중 한 번 더 관문을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세토우치해의 섬들이 그렇다. 페리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야 발을 디딜 수 있는 아름다운 섬들. 나오시마와 오기지마에 흐르는 예술이 더 비밀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바다 위에 일렁이는 물비늘을 헤치고 페리가 달린다. 섬에서 섬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서.
다카마츠와 닿은 세토우치해에서 3년마다 벌어지는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흔적을 남긴다. 작품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큰 의미는 섬에 또 다른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방문한 나오시마와 오기지마는 서로 다른 매력을 지녔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 두 섬 모두 예술이 흐르는 아름다운 섬이다. 다른 점은 쉽게 동창생으로 비유해 보자. 나오시마는 도시에서 전학 와서 늘 반장을 도맡아 하던 당당한 친구라면, 오기지마는 시골 소년처럼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놀라운 노래 실력을 가진 친구다. 둘 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임에는 분명하다.
현대미술의 중심이자 섬 자체가 예술작품이라 칭송받는 나오시마는 미야노우라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자 나오시마의 상징인 <붉은 호박Red Pumpkin>이 그 존재감을 발산한다. 마치 등대가 배를 부르듯 사람들은 그 주위로 모여든다. ‘만지지 마시오’라는 푯말 뒤에 숨어 있던 작품들과 다르게 사람들은 그 호박 속에 들어가기도, 기대기도 한다. 쿠사마 야요이는 이 작품을 두고 ‘우주의 끝에서 찾아온 붉은 태양의 빛이 나오시마 앞 바다에서 붉은 호박으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 빛이 이토록 많은 이들을 불러들이는 힘일지도 모른다.
옆으로 시선을 옮기면, 나오시마 파빌리온이 등장한다. 27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오시마의 28번째 섬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하얀 섬. 250개의 스테인리스 망이 섬 모양으로 얽혀 있다. 야외 작품 외에도 나오시마에는 거장의 흔적이 많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자연과 예술의 조화를 테마로 설계한 작품인 베네세하우스 미술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이름을 건 이우환 미술관 등. 대가들의 손길이 남은 이곳은 세토우치해의 예술을 대표하는 섬이라 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나오시마를 제대로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항구 근처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고,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춰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나오시마를 바라보는 것이다.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언덕 위를 수놓은 모습이 오기지마의 첫인상이다. 일본 섬마을의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만큼,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을 올라야만 오기지마의 진정한 얼굴을 볼 수 있다. 15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마을이 숨겨둔 작품은 정직한 걸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셈. 나른한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오기지마의 품으로 향한다.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 야마구치 케이스케의 작품, <걷는 방주Walking Ark>가 나온다. 4개의 산이 바다를 향해 걷는 모습인데, 노아의 방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작품을 만들던 시기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고, 작품에도 슬픔과 염원이 묻어난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도요타마히메 신사에 닿는다. 오기지마의 뷰포인트이자 늘 고양이들이 머무는 곳. 도리이 너머로 눈부신 절경이 펼쳐진다. 오기지마는 멀리서 보면 작은 섬일 뿐이지만, 그 속에는 이토록 다채로운 장면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