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은 김구를 비롯해
자신의 정치적 반대세력들을
깡그리 몰아서
숙청할 수 있는 사건을
조작하기로 하니,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조작 공안사건이었던
‘혁명의용군 사건’이었습니다.

김구 만큼이나
이승만 대통령이 벼르고 있던 정치인이
최능진과 서세충이었습니다.

최능진은 일제강점기 당시
안창호와 함께
흥사단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로,

안창호에 대한 존경심이 남달랐던 만큼
안창호의 심복이란 타이틀 덕에
최능진 역시
정치적 거물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의 치안부장을 맡았으며,
미군정에서도
최능진의 유능함을 알아보고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임명했죠.

미군정에서
최능진을 경무부 수사국장에 임명한 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고
소탕하라는 지시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최능진도 이북 출신이긴 하지만
강력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이때는 ‘반공주의자’라 함은 친일파이거나
친일파를 두둔해주는 사람들도 구도화되었지만
최능진은 반공주의자 경찰이면서도
확실히 한때 안창호의 심복답게
친일 경찰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습니다.

최능진은 친일경찰에 우호적이었던
이승만 세력과 경쟁할 수밖에 없었고,
최능진의 상관직인 경무부장
즉 오늘날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던 조병옥이
하필 이승만의 측근이어서
조병옥은 최능진을
경무부 수사국장에서 파면해버렸죠.

이후 5.10 총선 당시 최능진은 과감하게도
이승만과 같은 동대문구 선거구에서 출마하려고 했으나,
친이승만 세력들의 방해공작으로 출마하지 못합니다.

분노한 최능진은 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최능진의 이승만 당선무효 소청은 국회에서 기각되었지만
이승만은 최능진을 언제고
반드시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죠.

서세충 역시 독립운동가로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었으며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들어가 김구를 모셨습니다.
서세충도 해방 직후
친일파들의 횡포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규탄하던 인물 중 한 명이었고
이승만 세력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