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려줌] <마거리트의 정리> (Marguerite’s Theorem, 2023)

'마거리트'(엘라 룸프)는 고등사범학교 수학 박사 과정생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이자 동급생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 '유일'이라는 타이틀은 '마거리트'와 다른 학생들 사이에 미묘한 구분선을 긋는 듯 보이는데, 지도 교수 '베르네르'(장 피에르 다루생)는 여성 인재가 드무니 '마거리트'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며 은근한 압박이 가미된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언제나 모든 관심의 중심에 있는 '마거리트'는 예외적 존재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연구에만 몰두한다.
하지만 '마거리트'는 전문가들이 참석한 중요한 세미나에서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공개 발제 중 예상치 못한 오류를 범하게 되고, 도망치듯 학교를 떠난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 우연히 보게 된 '골드바흐의 피라미드'의 무한성에 매료된 '마거리트'는 그 순간부터 수학계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인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꿈을 가진다.
그렇게 '마거리트'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해 촉망받는 수학도로 성장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쌓아온 모든 시간을 부정당했다고 느끼며 무너져 내린 것.
정돈되고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이성'의 세계를 뛰쳐나와 무질서와 온갖 감정이 난무하는 '비이성'의 세계로 넘어온 '마거리트'는 자신이 세상을 향해 세웠던 벽을 허물고 사랑과 우정, 가족의 화합 등 변화를 마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전부였던 '수학'을 뿌리친 후 위태로워 보이는 '마거리트'에게 찾아온 시련은 곧 새로운 경험으로 전환된다.
'마거리트'는 자신과 전혀 다른 성향의 하우스 메이트 '노아'(소니아 보니)를 만나 그동안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었던 육체적 욕구에 호기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탐험하는가 하면, 꿈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밀린 월세를 메꾸기 위해 마작 판이라는 의외의 곳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수학적 꿈과 조우한다.
여기에 파리 고등사범학교 시절 라이벌 '루카'(줄리앙 프리종)가 다시 나타나면서, 두려움과 경계를 넘어서 '마거리트'는 서투르지만 진솔한 관계를 맺게 된다.
2023년 76회 칸영화제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 초청작 <마거리트의 정리>는 상처받고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는 '마거리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마거리트의 정리>는 <그로운 업스>(2008년)로 61회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공식 초청되면서 이름을 알린 안나 노비옹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은 "작업에 들어갈 때면, 항상 내가 경험했던 감정이나 나를 호기심으로 이끄는 감각에서부터 시작한다"라면서, "내가 20살 정도 됐을 때 아파서 6개월 정도 은둔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건강을 회복하긴 했지만, 그사이에 내 또래 친구들과 엄청난 격차가 생긴 것 같았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그 아이들의 태도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깥세상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이 상태를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안나 노비옹 감독은 '그랑제콜'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느라 종종 세상과 단절되는 학생, 특히 여성 수학자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안나 노비옹 감독은 프랑스 수학자 아리안 메자르 교수를 만나, 각본 단계부터 긴밀하게 협업해 3~4년에 걸친 작업을 이어갔다.
감독은 "아리안 메자르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수학을 예술의 시선으로 표현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에 엘라 룸프, 장 피에르 다루생, 줄리앙 프리종 등 주연 배우들은 촬영을 앞두고 고등사범학교를 방문해 박사 과정 학생들과 몇 달간의 트레이닝을 진행, 실제 수학자를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를 발휘한다.
이 밖에도 영화는 '마거리트'가 사는 집의 벽을 검은 페인트로 칠해 상형문자를 연상케 하는 다채로운 수학 공식으로 빼곡히 채우거나 마치 공식이 '마거리트'를 사로잡는 듯한 몽환적인 연출을 선보이는 등 수학을 하나의 미장센으로 활용하며 색다른 영상미를 전한다.
한편, <마거리트의 정리>는 "한계를 뛰어넘어 창조하고", "한발 물러나 관점을 바꾸라"는 작품 속 대사처럼, 실패와 도전을 통해 자아의 확장과 성장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도 하나의 명쾌한 정답보다 유난히 길고 험난한 풀이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은유한다.
관객 역시 객관적인 공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풀이와 해법이 스스로에 관한 아름다운 증명에 이르는 길임을 발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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