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1991년 '고급차 시장' 도전하기 위해 만들었던 세단 모델

사진 출처 = 네이버 카페 '남자들의 자동차 경기llK8RRS 님'

1990년대 초반, 국내 자동차 시장은 격동과 경쟁으로 물들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고급 세단의 자존심을 세우기 바빴던 이 시기에 기아 는 고급 세단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위해 일본 마쓰다와의 기술 제휴를 바탕으로 한 모델을 내놓게 된다. 그것이 바로 1991년에 등장한 ‘포텐샤(Potentia)’다. 포텐샤는 마쓰다 루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기아는 이를 통해 고급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포텐샤는 국내 시장에서 기아 플래그십 세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후륜구동 구조와 넉넉한 휠베이스, 정숙한 주행 성능은 고급차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마쓰다의 주행 감각을 그대로 빼다 박은 세팅은 포텐샤의 운전 감각을 독보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러한 특성은 훗날 일부 매니아들이 드리프트 차량으로 활용하게 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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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당근마켓'
넓은 폭 과시했던 라인업
기아 특유의 기술력 집착

기아 포텐샤가 시장에 등장한 1992년의 시대상을 살펴보면, 자동 변속기를 장착했다는 'AUTOMATIC' 또는 V형 6기통 엔진을 탑재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V6' 등이 과시되었던 시대다. 이런 시대에 2,200cc급 4기통 엔진과 3,000cc급 6기통을 아우르는 폭넓은 라인업을 필두로 시장에 등장한 포텐샤는 정통 세단의 프로포션과 특유의 각진 디자인을 매력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쓰다 원판 모델답게 주행 감각이 매우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후륜구동 특유의 밀어주는 승차감과 부드러운 회전 질감을 가져 고급 세단에 걸맞은 승차감을 제공하는 데에 모자라, 낭창거리기 바쁘던 당대의 세단을 압도할 탄탄한 하체가 압권이었다고 한다. 당시 기술력으로 둘째라면 서러웠던 기아와 마쓰다의 합작이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카페 '남자들의 자동차 동탄ll페라리 사랑남 님'
사진 출처 = 네이버 카페 '남자들의 자동차 smk 님'
기술 도약 꿈꾸던 순수 기아
하지만 IMF 앞에선 속수무책

포텐샤가 출시된 1992년은 기아가 기술 제휴를 통한 도약을 꾀하던 시기였다. 프라이드와 캐피탈에 이어 후륜 고급 세단인 포텐샤는 라인업의 정점 역할을 맡으며 브랜드의 선봉에 섰다. 이 차량은 정치인이나 전문직 종사자 사이에서 제법 호응을 얻었으며, 당시 기준으로 수입차 수준의 고급 내장재와 옵션이 장착되어 있었다. 전자동 공조 시스템, 전동 시트, 고급 오디오 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빠르게 변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아는 경영난에 봉착했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뉴 포텐샤를 시장에 등장시켰다. 도어 패널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외부 패널을 바꾸는 수준의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했지만, 끝내 등장 당시의 위상을 찾지 못하고 2002년에 조용히 단종되었다. 이 자리는 후대에 K7이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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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X 'AKB48 Girl Group Kami-Oshi Support'
순수 기아 시절, 진지했던 열망
색 바랬지만 낭만 있는 세단

포텐샤는 고급 세단의 외형을 지녔지만, 그 안에는 제대로 된 승차감을 향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다. 기술력에 모든 것을 쏟아붓던 순수 기아 시절의 열정이 녹아든 차라는 말이다. 탄탄한 승차감을 가진 고급 세단의 개념이 자리 잡은 시기가 10년 내외라는 것을 고려하면, 시대를 많이 앞서갔던 차라고 할 수 있겠다.

출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이제 도로 위에서 포텐샤를 보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시대를 앞섰던 세단인 포텐샤의 향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언젠가 도로에서 포텐샤를 마주친다면 90년대의 낭만에 흠뻑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비록 늙고 색이 바랜 포텐샤라도, 그 진가가 대단했던 차라는 것은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